"이 바닥이 워낙 그런 곳"... 강미정 폭로가 드러낸 국회 갑질 DNA

김성은 2025. 9. 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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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위계질서 속 반복되는 악순환, 시스템 개혁 없이는 해결 불가능

[김성은 ]

 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갑질의 가장 무서운 특성은 대물림된다는 점이다. 권력의 위계질서 속에서 갑질을 당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받았던 대우를 자신보다 권력 서열이 낮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재현하곤 한다. 권위 있는 인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갑질을 마치 '조직 내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탓이다. 권력자의 갑질에 침묵하고 방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아예 동조하는 단계에 이르면 갑질은 더 이상 일탈이 아닌 조직의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국회는 바로 이런 조직이다.

내부의 위계 질서는 바깥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견고하다. 선배 의원들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칫 정치적 경력에 타격을 줄 수도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모 다선 의원이 신참 후배 의원을 사적으로 자택으로 불러들여 '설거지'를 시켰다는 일화는 종종 회자된다. 사실 여부를 떠나 국회에서는 "이 바닥이 워낙 그런 곳이지"라며 어깨를 으쓱하는 게 현실이다.

국회의원 간에도 이럴진대 보좌진은 말할 것도 없다. 입법부 소속 국가 최고위직인 국회의원과 그에게 전적으로 종속되는 보좌진의 지위 격차는 극심하다. 보좌진 인사에 전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과의 권력 격차로 인해 보좌진은 부당한 행위를 당하더라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부당함이 일상처럼 반복되다 보니 문제 제기 자체가 의미 없는 일로 여겨진다. 고립될까 봐 입을 꾹 다무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갑질 문제는 잠깐 잠잠해지나 싶으면 어김없이 고개를 든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모두 당내 성비위와 갑질 문제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다. 2022년 박완주 당시 민주당 의원은 보좌관을 강제추행했다는 의혹으로 제명됐고, 최근 2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2021년 당 행사에서 자신이 앉을 자리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직자의 정강이를 차는 등 폭행을 저질렀다. 당직자들은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송 위원장은 형식적 사과 후 탈당했다가 4개월 만에 복당했다.
 강미정 조국혁신당 대변인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내 성비위 고발 및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최근 강미정 전 조국혁신당 대변인 사태는 정치권의 고질병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강 전 대변인은 성비위 사건 접수 후 5개월이 지나도록 피해자 지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동지라 믿었던 이들의 성희롱, 성추행,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초년생 당직자들도 비슷한 피해를 겪었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혁신당은 가해자 2명에게 '제명'과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내렸지만, 강 전 대변인은 결국 탈당을 선언하고 말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2차 가해 양상이었다. 강 전 대변인에 따르면 피해자를 도운 조력자는 '품위유지 위반' 징계를 받고 사직서를 냈으며, 성비위 문제를 여성위 안건으로 올렸던 의원실 비서관은 당직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조직과 완전히 결별할 각오를 한 사람뿐이다. 자신의 경력이나 미래를 포기하고 그야말로 무덤을 팔 각오 없이는 권력에 맞서기 어렵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우의 시체'를 밟고서라도 한 걸음씩 전진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수십 년째 되풀이되는 정치권 갑질을 언제까지 개인의 '희생 정신'에만 맡겨둘 것인가.

국회의 갑질 문화를 뿌리째 뽑아내려면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해자 한두 명 솜방망이 처벌하고 끝내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시스템 자체를 갈아엎어야 한다. 일회성 처벌을 넘어 투명성과 견제 장치를 강화하고,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낸 내부 고발자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제도를 구축하지 않는 한, 갑질의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침묵의 벽에 갇혀 신음하는 약자들의 목소리다. 권력이 소용돌이치는 입법부 한복판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입을 열지 못하는 이들의 소리 없는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아우성이 메아리 없이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 김성은 인권연대 칼럼니스트는 현재 서울신문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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