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김장배추도 못 심었다... 말라버린 강릉 농작물 '초비상'

진재중 2025. 9. 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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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극심한 가뭄에 말라버린 대파·옥수수·고추... 곳곳에서 '이러다 농사 망한다' 곡소리

[진재중 기자]

 알곡이 차야 할 시기지만, 옥수수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말라버렸다. 노랗게 변하고 바싹 타들어간 옥수수 잎은 밭 전체를 뒤덮으며, 가뭄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 진재중
강원도 강릉 구정면 일대, 햇볕이 작열하는 들녁에 대파가 시들고 말라가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늦가을 옥수수 잎은 바짝 말라들었고 고추와 배추 등 다른 채소들도 물 부족 탓에 병들고 타들어가고 있었다.

지난 6일 <오마이뉴스> 기사 "강릉 물 부족, 이제는 시민이 나설 때다"(https://omn.kr/2f7yr)에는 이러한 댓글이 있었다.

"물만 먹고 살 수 있나요! 말라버린 농작물의 피해도 살펴 주십시오. 시들고 병들고 타 죽고, 농민들 손발이 배배 꼬였습니다. (중략) 망연자실 하늘만 바라보다 그마저도 포기한 채 넋을 잃고 있습니다."

댓글 속 호소가 과장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8일 현장을 찾았다. 기자가 직접 본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들녘은 절망 그 자체였다. 대파를 재배하는 한 농민은 주저앉아 "비가 조금만 내려도 살 수 있는데, 이대로 가면 올해 농사는 다 망칩니다. 하루하루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집니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농민들은 손발이 묶인 채 하늘만 바라보며, 농작물이 타들어가는 광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예년 같으면 이미 대파를 수확하고 김장 배추 모종을 심어야 하지만, 올해는 대파 수확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8000평에 달하는 대파밭이 가뭄과 물 부족으로 말라 노랗게 변해 있었다. 김장 배추를 심어야 할 시기임에도, 흙만 드러난 메마른 밭이 이어지며 농민들의 절박함과 걱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 진재중
 이미 수확을 마치고 김장 배추를 심어야 할 대파밭인데, 가뭄과 물 부족으로 수확을 미룬 모습. 흙만 노랗게 변해 있었다.
ⓒ 진재중
"일찍 수확한 감자도 수확량 50% 이상 줄었다"

상황은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옆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자 장현동은 더욱 심각한 모습이었다. 가을 수확을 앞둔 옥수수밭은 이미 고사 직전에 놓여 있었다. 노랗게 변한 옥수수 잎은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고, 맺혀야 할 열매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 농민은 "손주들 용돈도 주고 생활비에 보탬이 되길 바라며 옥수수를 심었는데, 비가 오지 않아 모두 말라 죽어가니 한숨만 나온다"며 푸념 섞인 목소리를 냈다.

강릉시 장현동에서 농사를 짓는 김대규(79) 도 절망감을 토로했다. 그는 "이곳뿐 아니라 대부분의 밭작물이 고사 직전이고, 그나마 일찍 수확한 감자도 수확량이 50% 이상 줄었다"며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고, 시민들이 먹을 물도 부족한데 농작물에 물을 달라 요구할 수도 없어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옥수수밭은 잡초로 가득 차 있었고, 정작 알곡이 맺혀야 할 옥수수 열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든 잎과 자라지 못한 옥수수 사이로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있다.
ⓒ 진재중
일부 밭에서는 수확해야 할 고추가 시들고 병들어 땅에 떨어져 있었다. 이미 누렇게 변한 고추들은 병든 채 흙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배추 모종 역시 말라비틀어져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잎이 시들어 색이 바랜 채 밭에 주저앉아 있었다. 병든 작물 주변에는 메마른 흙먼지가 바람에 흩날렸고, 모종을 심으려 갈아놓은 밭고랑마저 갈라져 흙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강릉시 장현동에 사는 김두기(73)씨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비가 내리지 않고 농업용수 공급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농사는 포기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까지 강릉시는 무엇을 했느냐"며 불만을 쏟아냈다.
 고추가 여물기도 전에 떨어지고 병들어가고 있다
ⓒ 진재중
 바짝마른 배추모종
ⓒ 진재중
"물이 없으면 일상도 생계도 위태롭다"

농작물이 걱정돼 밭을 찾은 한 농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어, 그저 하늘에서 비가 내려주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메마른 밭을 둘러보던 또 다른 농민은 "농사 지으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강릉은 저수지가 많은데 진작 대처를 했어야지,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농업용수를 공급하지 않으면 농작물은 그대로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시 행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밭과 논을 바라보는 농민. 메마른 밭고랑과 시든 작물들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농사와 수확에 대한 불안과 절박함이 얼굴에 묻어난다. 하루하루 가뭄 상황을 지켜보며 하늘에서 비가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 진재중
 모종을 심기 위해 밭을 갈아놓았지만, 심을 모종은 찾아볼 수 없고 메마른 흙먼지만 날리고 있다. 갈아놓은 밭고랑은 금이 가고 흙먼지가 흩날려, 농민의 애타는 마음과 가뭄의 심각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 진재중
강릉시 구정면에서 벼농사를 짓는 엄기천(79)씨는 벼가 영글지 못할까 걱정이라며 "어떻게 지은 농사인데 마지막에 꼭 필요한 물을 대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벼가 여물지 못하면 1년 농사가 수포로 돌아간다. 농민들의 이런 애타는 마음을 행정이 알기나 하는지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마을 입구 다리 위의 화분과 가정집 화단의 화초까지 모두 시들어, 이번 가뭄이 밭과 논을 넘어 주민들의 생활 주변까지 피해를 미치고 있음이 확인됐다. 주민들은 "이제는 물이 없으면 일상과 생계 자체가 위태롭다"며 가뭄의 심각성을 호소하고 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벼를 만지는 농부. 곡알이 차야 할 시기이지만 물이 전혀 공급되지 않아 벼가 제대로 여물지 못할까 애타는 마음이 손끝에 묻어난다. 하루하루 논을 살피며 물길이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지만, 농업용수가 끊긴 현실은 농민의 마음을 더욱 절박하게 만든다.
ⓒ 진재중
 곡알이 차야 할 시기지만, 물이 전혀 공급되지 않아 농민들의 마음은 애타기만 하다. 논둑에서 벼를 만지며 상태를 살피는 농부의 손끝에는 걱정과 절박함이 묻어난다. 벼가 제대로 영글지 못하면 1년 농사가 무너질 수 있어, 하루하루를 가슴 조리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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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단과 주변 작은 식물들까지 메말라, 이번 가뭄의 심각성이 마을 일상 곳곳에까지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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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용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끊긴 상태다. 오봉댐의 물을 생활용수로 공급하기 위해 농업용수로의 물길이 차단되면서, 흘러야 할 물은 바짝 말라 있었다. 밭과 논에 필요한 물은커녕, 생활용수조차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강릉 전역의 농민과 주민들은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강릉시는 극심한 가뭄에 대응하기 위해 제한 급수와 긴급 생수 지원을 시행하고 있지만, 농촌 현장에서는 이미 농작물 피해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농업용수가 끊긴 논과 밭에서는 농민들의 절박한 마음과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히며, 수확을 앞둔 시기에 우리의 목숨과도 같은 농작물을 살리기 위한 물 공급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오봉댐에서 농업용수 공급이 차단되면서, 농업용수관로는 바짝 말라 있었다. 흘러야 할 물이 끊긴 관로는 메말라 금이 가 있고, 밭과 논에 필요한 물이 전혀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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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버린 용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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