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논하기에는 일러···투자 멈출 생각 없는 빅테크 [스페셜리포트]
닷컴 버블 수준 S&P PER
“1990년대 인터넷 버블 넘어설 수도”
AI 거품론이 불거지며 S&P500지수에서 정보기술(IT) 섹터를 따로 모아놓은 대형기술주지수(SPLRCT)는 최근 하락세로 돌아섰다. 월가의 투자 심리를 보여주는 ‘공포·탐욕지수’는 최근 한 달 전 72에서 56으로 급락했다. AI 관련 비관적 소식이 쌓이면서 고점 부담을 느끼던 투자자가 매도에 나선 탓이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매그니피센트 세븐(M7)을 제외한 고평가 종목 약세가 두드러지며 AI 버블의 논란이 주가에 영향을 끼쳤다.
AI 투자 열풍이 1990년대 말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는 샘 알트먼 CEO 주장이 틀린 말도 아니다. ‘닷컴 버블’을 예견한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은 지난 8월 13일 투자자에게 보낸 메모에서 M7을 제외한 S&P500 기업 493곳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22배로, 역사적 평균을 크게 웃돈다고 지적했다. 닷컴 버블 붕괴 직전(25배)에 거의 근접한 수치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 역시 올해 초 파이낸셜타임스(FT)에 “현재 월가 사이클은 1998~1999년 닷컴 붕괴 직전과 매우 유사하다”며 “세상을 바꾸고 성공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과 투자가 성공하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토르스텐 슬록은 한발 더 나아가, 현재의 AI 붐이 1990년대 인터넷 버블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조달러 투자 예고한 오픈AI
하지만 샘 알트먼 CEO 발언을 뜯어보면 현재 시장 반응이 “과도하다”고 평가할 만한 부분도 있다.
일단 그의 경고 대상은 AI 패러다임 전체를 향한 게 아니다. 일부 AI 스타트업의 과도한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지적했을 뿐이다. 샘 알트먼 CEO는 “몇몇 AI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은 말도 안 되고(insane) 비이성적인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소위 말하는 부실·과대 평가 기업은 걸러내고 경제적 해자를 가진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는 취지다.
샘 알트먼 CEO가 언급한 ‘진실의 조각(kernel of truth)’도 같은 맥락이다. 시대를 흔들 새로운 패러다임을 진실의 조각에 비유하며 현재 AI 시장이 처한 상황을 과거 닷컴 버블 때와 비교했다. 그러면서 “돌이켜보면 인터넷은 분명한 패러다임이자 확실한 가치가 존재하는 진실의 조각이었지만, 일부 사람들이 지나치게 흥분해 과열돼 버블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AI 패러다임은 분명히 가치가 있지만 이를 둘러싼 거품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앞서 일부 AI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을 지적한 것과 동일한 논리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계산된 발언’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종목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AI 버블 논쟁’ 보고서에서 “샘 알트먼의 고백은 패배 선언이 아닌 계산된 선전포고”라고 강조했다. 이번 메시지는 명확한 이중 구조로 단기적으로 옥석 가리기가 진행돼 수많은 추격자가 도태될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 주요 분석 기관들은 AI 스타트업 80%가 향후 3~5년 내 사라질 것으로 본다. 한 애널리스트는 “샘 알트먼의 발언은 강력한 자신감 표출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샘 알트먼이 AI 거품론을 주장한 동시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의 근거다. 그는 “가까운 시일 내 인프라 구축·건설에 수조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 시장에서도 계산된 발언이란 판단에 고개를 끄덕인다.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는 “오픈AI 역시 최근에는 스타트업 지분 투자나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인 편”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봐도 AI 스타트업 시장에 전체적으로 밸류에이션 거품이 껴 있는 단계”라며 “오픈AI 역시 이 때문에 투자 시 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내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온 발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오픈AI가 스타트업 인수에 나섰으나 실패했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오픈AI는 지난 4월 AI 코딩 스타트업 윈드서프 M&A를 계획했다. 30억달러 투자 의사를 밝혔지만 가격 차이 등으로 협상은 진전 없이 무산됐다. 결과적으로 윈드서프는 경쟁사 ‘구글 딥마인드’ 품에 안겼다. 딥마인드는 일부 지식재산권(IP)과 핵심 직원만 영입하는 방식을 채택해 윈드서프와 24억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거품 논하기에는 이제야 3년 차
투자 멈출 생각 없는 빅테크
거품론을 논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2022년 11월 오픈AI 챗GPT 공개를 AI 패러다임의 시작점이라고 본다면, AI 패러다임은 시동을 건 지 3년이 채 안 된 상태다. 문남중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 지속 기간은 각각 18년과 15년 정도”라며 “현재 3년 정도 된 AI 혁명 지속 기간을 감안하면 AI 버블을 논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AI 스타트업 최고개발책임자(CTO)도 “생성형 AI가 불러온 혁신은 이제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고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산업과 사회에 확산될 시간 여유가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AI 거품론 근거로 떠오른 MIT 보고서를 두고도 “부정적인 면만 강조돼 거품 논란이 불거졌다”며 “예를 들어 보고서를 보면, 생성형 AI(LLM)를 구독 중인 기업은 40%에 불과한데 업무에 활용 중인 직원은 전체 90%다. 직원이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LLM을 쓴다는 것”이라며 “불과 2~3년도 안 된 AI 붐이 얼마나 빠르게 산업 현장 실무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빅테크가 여전히 뭉칫돈을 쏟고 있단 점도 AI 거품론을 반박하는 근거다. 대부분 빅테크는 올해 실적 발표 자리에서 설비투자(CAPEX) 가이던스(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특히 예년과 달리 실질적 수요 증가로 인한 불가피한 설비투자 확대라는 점이 눈에 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메타다. AI 조직 개편 가능성이 전해지며 AI 거품론의 불씨가 됐지만 설비투자 가이던스는 상향했다. 메타는 2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연간 설비투자 가이던스 하단을 기존 640억달러에서 660억달러로 높였다. 메타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수잔 리는 “지금은 AI 미래를 위해 본격 투자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도 설비투자 가이던스를 상향했다. 알파벳은 2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연간 설비투자 가이던스를 750억달러에서 850억달러로 높였다. 알파벳은 “클라우드 제품과 AI 서비스와 관련해 빠르게 늘고 있는 수요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다. 7~9월 설비투자 가이던스로 300억달러를 제시했다. 시장 컨센서스(237억달러)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에이미 후드 마이크로소프트 CFO는 “무작정 집행하는 예산이 아니다”며 “백로그(backlog·일종의 수주잔고)를 기반으로 책정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수요 증가로 투자 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5호 (2025.09.03~09.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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