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위’로 재편…정책·감독 분리
이재명정부의 새 금융 감독 체계 윤곽이 드러났다.
핵심은 ‘정책’과 ‘감독’의 완전한 분리다. 2008년 출범 이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온 금융위원회를 17년 만에 해체하고, 금융 감독 기능을 중심으로 한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이 골자다. 금융 소비자 보호 기능은 별도 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독립시켜 격상한다. 금융 산업 ‘진흥’과 ‘감독’이라는 상충하는 두 가지 기능을 한 지붕 아래 뒀던 기형적인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이재명정부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정책은 재정경제부, 감독은 금감위로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금융위원회 기능을 세 갈래로 쪼개는 것이다.
금융 산업 육성 등 정책 기능은 재정경제부로 이관한다. 과거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위원회를 합쳐 금융위원회를 만들었던 2008년 이전으로 회귀하는 셈이다. 금융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경제 부처에 맡겨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금융 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원과 통합해 ‘금융감독위원회’로 재편한다. 현재 금융위가 가진 금융사 인허가, 검사·제재 등 감독 권한을 모두 넘겨받는다. 금감위는 정부조직법에 따른 중앙행정기관 지위를 유지하며, 금융감독원은 금감위 지휘를 받는 집행기구 역할을 맡는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감원은 행정기관이 아니어서 강제 조사·제재 등 행정 권한을 행사하려면 권한을 부여하는 주체가 필요하다”며 “신설되는 금융감독위원회가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감원에서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독립·격상한다. 금감위 산하에 두되, 독립적인 기구로 운영해 금융 소비자 보호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대규모 금융 소비자 피해 사건이 잇따르면서 감독기구에서 소비자 보호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점을 반영한 조치다.
왜 바꾸나?
“정책과 감독 분리 시대적 과제”
금융 감독 체계 개편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금융위가 금융 산업 ‘진흥’이라는 정책적 목표와 금융 시장 ‘안정’이라는 감독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이해 상충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면 감독 기능이 약화하고, 감독을 강화하면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딜레마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에서도 ‘금융 정책과 금융 감독 분리’를 국정 과제로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금융 분야 학자들로 구성된 ‘금융 감독 개혁을 촉구하는 전문가 모임(금개모)’은 “저축은행 사태부터 최근의 라임·옵티머스 사태까지 많은 금융사고는 잘못된 금융 산업 정책이 금융 감독을 압도한 데서 비롯됐다”며 “금융 감독이 정부 경제 정책에 휘둘려 기본 원칙까지 저버리는 구조적 문제점을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 산업 정책 권한은 정부 경제부처가 갖고, 금융 감독 기능은 독립적인 기구에 맡겨야 한다는 취지다. 이재명정부는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 17년 만의 대수술이 결정됐다.
기대효과는
감독 독립성·소비자 보호 강화
정부가 기대하는 가장 큰 효과는 금융 감독의 독립성 확보다. 정책 기능이 분리되면 신설되는 금융감독위원회는 오롯이 시장 감독과 건전성 유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
금융 소비자 보호 기능 강화도 중요한 기대효과다. 금감원 내 일부 조직이었던 금융소비자보호처가 독립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격상되면 위상과 권한이 크게 강화된다. 독립적인 예산과 인력을 바탕으로 금융사의 불완전판매나 불공정 약관 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소비자 피해 구제에도 신속하게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과 감독, 소비자 보호 기능이 명확히 분리되면서 각 기관 책임 소재가 분명해지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금융 정책 실패의 책임은 재정경제부에, 감독 부실 책임은 금융감독위원회에 묻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금감위원장·금소원장 유력
조직 개편이 현실화하면서 금융당국 수장들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재로서는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마친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초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최근 취임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초대 ‘금융소비자보호원’ 원장을 맡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이억원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금융위 해체론에 대한 질문에 “후보자 신분에서 개편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지만, 야당에서는 “해체할 조직에 위원장을 왜 임명하느냐” “철거반장이냐”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조직 개편이 확정되면 이 후보자는 금융위원장이 아닌, 새로운 조직의 수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하게 될 전망이다.
잘 돌아갈까?
‘컨트롤타워 부재’ ‘입법 난항’ 우려도
물론 이번 개편안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금융권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가장 큰 걱정은 금융 정책과 감독을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느냐는 것이다. 두 기능은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인위적인 분리가 오히려 비효율과 혼선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등 긴급 상황 발생 시 정책과 감독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하는데, 컨트롤타워 부재로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을 금감원에서 분리하는 것을 두고도 실효성 논란이 있다. 금융사에 대한 검사·감독을 통해 방대한 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금감원과 분리될 경우, 정보 접근성이 떨어져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 오히려 소비자 보호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비판도 제기된다.
개편안이 실제 실행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특히 정무위원장이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이라는 점에서 야당 협조 없이는 법안 처리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개편안 내용이 일부 수정되거나 시행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6호 (2025.09.10~09.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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