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밥 한 끼 챙겨줬는데..." 방글라데시 청년 입양한 '천사 엄마'

용인시민신문 2025. 9. 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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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다'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①] 정은자씨 가족 이야기

[용인시민신문 임영조]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용인에서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정은자씨는 10년 여전 방글라데시 출신 남성을 아들로 입양했다.
ⓒ 용인시민신문
"제가 처음 만난 건 2005년이었어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서 식당을 할 때였죠."

인터뷰의 주인공 정은자씨는 용인에서 오래 식당을 운영해 온 여성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쟈키 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방글라데시 청년이 회사의 부당한 폐업으로 월급조차 받지 못하고 거리에 내몰린 사건이 계기였다.

"밥 한 끼 챙겨주고, 옷 한 벌 사준 게 시작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아들처럼 느껴졌어요. 어느 날은 한국 직장 동료들과 함께 식당에 왔는데 너무 안쓰러워 보였어요. 그날 명함을 주며 꼭 한 번 다시 찾아오라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찾아왔어요. 먹을 수 있는 거라곤 닭고기밖에 없다고 해서 한 상 차려주니 그 이후로 수시로 찾아왔어요. 올 때마다 조그마한 선물을 챙겨 왔는데, 그런 인연이 결국 입양까지 이어졌어요."

정식 입양은 10여 년 전에 이뤄졌다. 성인 외국인을 입양하는 것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행정 절차만 1년 넘게 걸렸다. 그 과정에서 정씨는 생활 공간도 내줬다. 때마침 집에 빈방이 있었던 차였다. 다행히 남편을 비롯해 모든 가족이 입양에 동의했다. 당시 청년이던 쟈키씨는 아직 한국어도 서툴고, 미래도 불확실했지만 정 씨 가족의 품에 안기면서 새로운 삶을 열었다. 이제 20여 년이 흘러 그는 마흔을 넘긴 중년이 됐다.

외국인 마트에서 다문화 식당으로

입양 후에도 아들은 여러 제약 속에서 한국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특히 쟈키씨는 당시 소지한 비자로는 직장 취업이 쉽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어머니 정은자씨는 대신 작은 마트를 열어주며 생계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이 마트 곁에서 정씨는 다문화 식당을 운영했다. 평일엔 한국 회사에서 한식 위주의 급식을 먹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말만큼은 고향 음식을 찾았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출신 며느리 씨티씨가 본국 요리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 손님들은 이곳에서 밥을 먹으며 잠시나마 고향을 느꼈다.

"토요일, 일요일이면 네팔, 미얀마, 스리랑카, 파키스탄 청년들까지 몰려와요. 좁은 공간이지만 서로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입양아들을 시작으로, 지금은 제법 많은 외국인 청년이 정씨를 '엄마'라고 부른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밥을 먹을 땐 눈치를 많이 봐요. 더 먹고 싶어도 '더 달라'는 소리를 못 하죠. 그래서 저는 일부러 많이 퍼줘요. 남기더라도 배불리 먹으라고요."

이 가게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타국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들의 집과도 같은 곳이 됐다. 한국 손님을 받지 않는 이유도 있다. 손으로 밥을 먹는 타국의 식습관이 한국인 손님 앞에서는 오히려 불편이 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편히 고향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눈물로 지켜낸 아들
 아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 기념 사진을 찍은 정은자씨는 아들 고향인 방글라데시를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 용인시민신문
쟈키씨의 한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물류센터에서 일할 당시, 한국인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뜨거운 커피를 머리에 끼얹히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그 상처로 지금도 머리카락이 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다.

"그날 집에 와서 얼마나 울던지… 다음 날 바로 회사로 찾아가 '이 아이는 내 아들이다'라고 설명했어요. 처음엔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이 차근차근 설명하니 그제야 대우가 달라졌어요."

정은자씨는 아들이 일하는 곳이면 직접 찾아가 사장과 관리자에게 "아들이니 잘 부탁드린다"라는 인사를 빠짐없이 했다.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아들은 조금씩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들은 방글라데시 출신 여성과 결혼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이제는 세 가족이 한집에 살며 3대를 이루고 있다. 손주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이름도 '민국'으로 정했다. 한 가정을 이룬 그들을 곁에 둔 정씨는 "혈연보다 더 진한 가족의 인연"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쟈키씨는 마흔을 넘겼지만, 여전히 어머니 정 씨를 친어머니처럼 모시며 산다. 인터뷰 중에도 정씨는 이에 대답하듯 "딸보다 아들에게 더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하며 웃었다. 손자와 함께 지내는 삶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라고도 덧붙였다.

"결혼하고도 우리 집을 떠난 적이 없어요. 늘 같이 살아왔죠. 손자 돌잔치 때 한 달간 고향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한 달이 얼마나 길던지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한식 전문가가 방글라데시 음식 만드는 이유

정은자씨는 기흥구와 처인구에서 20년 이상 한식당을 운영해 온 전문 요리사다. 음식 맛으로는 이미 정평이 자자했다. 그만큼 손님도 끊이지 않았다. 그런 정씨가 지난해부터는 방글라데시 음식을 만들고 있다. 한 번 제대로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을 만들어 내야 했다. 아들 친구는 물론 용인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마음 편히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며느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나라 음식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베트남 음식인지, 네팔 음식인지, 방글라데시 음식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며느리에게 하나하나 배우다 보니, 음식을 20년 넘게 해 온 솜씨가 있어 그런지 한 달 정도 지나니 익숙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식당을 운영했는데 맛있다고 칭찬을 많이 해줘요."

주말마다 모여드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이 공간은 단순한 식당을 넘어, 고향 사람들을 만나고 위로를 주고받는 공동체 공간이다. 방글라데시뿐 아니라 네팔, 스리랑카, 미얀마 등 다양한 국적의 청년들이 이곳에서 정보를 나누고, 생활의 애환을 털어놓는다.

"저를 '천사 엄마'라고 불러요. 하지만 사실 더 고맙죠. 아들을, 또 손자를 안겨주었으니까요."

20대 청년으로 한국에 왔던 아들이 어느새 40대 가장으로 성장했다. 그 곁에는 여전히 "엄마"라고 부르는 정씨가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혈연을 뛰어넘어, 다문화 시대 한국 사회의 새로운 가족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들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 생겼잖아요. 오히려 제가 더 큰 선물을 받은 거예요."

그의 말 속에서, 이방인이 낯선 땅에서 겪는 고단함과 이를 껴안은 한 여성의 헌신이 교차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문화 도시로 변해가는 용인에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소중한 이야기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과 말하고 싶은 것
 인터뷰 내내 자랑이 끊이질 않은 며느리와 한장.
ⓒ 용인시민신문
인터뷰 끝에 접어들자 정씨가 갑작스레 인터뷰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한 시간 넘게 가족 자랑이 한창이던 그가 말문이 더뎌진 순간은 신문에 지난 20년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싣겠다는 말을 한 직후다.

다문화 관련 취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세월을 넋두리하듯 한 정도를 공론화한다는 것이 부담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혹여 아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는 말도 있었다. 사진도 이름도 말하는 것이 부담된다는 정씨를 한창 설득하는 과정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다문화는 숨기며 아는 사람끼리 알음알음하는 문화가 더 이상 아니에요. 말 그대로 용인에서 생활하는 같은 시민이에요. 때문에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방글라데시에서 온 외국인이 아니라 용인에서 살고 있는 아들이거든요. 그의 삶을 감출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을 더 넓게 연 정은자씨는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을 오간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많은 외국인 '아들'들 안부를 한번 확인해 봤으면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방글라데시를 한번 가보고 싶다는 정씨는 벌써 가슴이 설렌다.

"아들을 입양했지만 방글라데시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몇 해 전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몸이 좋지 않아 비행기를 타지 못했어요. 그곳에 생활하는 아들 가족들도 만나보고 무엇보다 용인에서 만나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해준 아들 친구들이 잘 살고 있는지 보고 싶어요."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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