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2년·전업주부 20년... 유명식당에 양조장까지 접수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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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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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수한가 뒷마당 가마솥에서 수제비 만들기 시연. |
| ⓒ 김미전 |
또박또박한 말투와 꼿꼿한 앉음새. 듣고 보니 그의 말투와 자세가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게 어릴 적 꿈을 물은 이유는 '요식업계의 거물을 꿈꿨던 게 아닐까?'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요식업은 그의 꿈 목록에 수록된 적이 없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해 아들 넷이 장성할 때까지 요식업을 할 줄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김미전 '수수한家(가)' 대표를 만난 것은 지난 8월 26일. 그는 "꿈꿨던 일은 아니지만 지금 삶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지금이 인생 전성기인가?'라는 물음에 주저 없이 "사회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보면 지금이 김미전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답했다.
그의 나이는 50대 중반. 주부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사업가로 변신한 게 10년 전이니, 그의 말대로라면 40대 중반에 인생 2막을 시작해 10년 만에 전성기를 맞이한 셈이다. 그것도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이들조차 성공하기 어렵다는 요식업으로. '비결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안은 채 그와 대화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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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양조에서 만든 술을 소개하는 김미전 수원양조법인 대표 |
| ⓒ 이민선 |
정조 대왕이 국수, 수제비 같은 면으로 만든 음식을 유별나게 좋아했다는 점을 모티브로 해서 정조국수를 만들었다는 게 김 대표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정조와 인연이 깊은 화성행궁 인근에서 구전되는 이야기로 보인다. 정조 전문가로 유명한 김준혁 국회의원(역사학자)에게 물으니 "정조가 좋아한 음식에 관한 기록은 보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조국수라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수수한가'는 단순히 음식만 파는 곳이 아니다. 역사와 함께 공동체 문화가 주는 즐거움까지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전통 기와집처럼 안채와 바깥채를 분리했고 바깥채 마당에 작은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한 것을 보면 김미전 대표가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누구나 공연할 수 있고 누구나 관람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수원과 수원 인근인 화성 동탄에는 행궁동 수수한가와 비슷한 분위기의 식당이 3개 더 있다. 이중 2개(수수한가 행궁점, 행궁연가)는 김 대표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이다. 나머지 2개(수수한가 동탄점과 수목원점)는 가맹점(프랜차이즈 체인점)이다. 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곳은 수수한가 행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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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의를 하고 있는 김미전 대표. |
| ⓒ 김미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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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양조 여주 앙조장. 삼성전자 스마트팩토리 지원사업에 선정돼 공장을 완성한 뒤 찍은 사진. |
| ⓒ 김미전 |
그가 양조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단순히 음식과 함께 술까지 팔아 돈을 많이 벌기 위함은 아니다. 양조장과 양조장에서 만드는 술을 문화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큰 그림이 있는데, 그 배경에는 2년간의 미국 생활이 있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는 맛도 좋고 디자인도 독특한 그런 술이 지역마다 있었다. 그런 술을 만드는 곳은 관광객이 꼭 들러야 하는 그 지역 문화 상품이었는데, 그게 그렇게도 부러웠다고 한다. 그는 '신세계 경험, 문화 충격'이란 말로 경이로웠던 당시의 심정을 표현했다.
"그때부터 나만의 술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꿈을 꾸었던 것이고요. 좋은 기회가 생겨서 실행에 옮긴 거예요. 저는 단순히 막걸리를 만드는 곳이 아닌 수원에 오면 꼭 한번 들러야 하는 그런 수원양조를 만들고 싶어요. 외국의 유명한 와이너리처럼요. 술 맛도 보고 문화 공연도 즐기는 그런 곳. 그래서 막걸리 화장품, 막걸리 비누, 막걸리 아이스크림, 막걸리 빵 같은 굿즈(기념상품)도 만들었어요. 아직 시판은 안 했지만 이미 다 만들어 놓았어요."
그가 말한 좋은 기회의 정체는 엉뚱하게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요식업을 비롯한 자영업자에겐 재앙과 같았던 시간이었을 텐데 그는 어째서 '좋은 기회'라고 말하는 것일까?
"전통주를 공부하면서 양조 사업을 구체화하게 됐는데, 제게 공부할 시간을 벌어준 게 코로나19였어요. 영업시간 규제도 받고 손님도 없다 보니 제가 할 일이 확 줄어든 거죠. 그래서 한식과 떡 제조 공부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전통주 담그는 법도 공부하게 됐는데, 제가 거기에 확 꽂힌 거예요. 그 뒤로 서울에 있는 전통주 학교도 다니고 전통주 명인도 직접 찾아 다니며 배웠어요. 뭔가에 꽂히면 미친 듯이 열심히 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다가 2021년에 수원양조를 인수했고요. 공부할 시간을 벌어준 코로나19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전환점)가 된 거죠."
그가 열정을 쏟는 양조업과 이미 성공적이라 평가 받는 식당은 그의 친정 부모님과 경영학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그의 아들까지 3대가 하는 사업이다. 대학 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 삼아 식당 일을 거들던 아들은 대학원을 마친 뒤 어머니가 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런 아들을 엄마 김미전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대학원에서 열심히 한 경영학 공부가 양조장에 모두 녹아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양조사업을 하면서 봉사 활동도 본격화했다. 수수한가 막걸리를 출시하면서 장애인 단체에 판매 금액의 일부(한 병당 100원)를 기부하고 있다. 김 대표가 오랜 기간 음식을 지원하던 단체이다. 이유를 물으니 "그저 나와의 약속이다, 대학생 때도 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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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수한가 마당공연에서 인사말 하는 김미전 대표 |
| ⓒ 김미전 |
"시어머니를 모시다 보니 친정 부모까지 보살피는 게 좀 벅찬 그런 상황이었어요. 용돈도 충분히 드릴 수 없을 것 같았고요. 생각해 낸 게 원래 하시던 수제비집을 차려 드리는 것이었고, 부모님과 의논 끝에 동탄 삼성전자 앞에 수제비 가게를 차린 거예요. 부모님을 좀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열심히 돕다 보니 결국 내 일이 돼 있었어요. 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아들까지 합세 하면서 삼대가 하는 사업이 된 거죠."
부모님이 식당을 시작할 즈음 주부 김미전 심경에도 변화가 찾아왔는데, 실존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가정주부가 내 인생의 전부인가? 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졌다"라고 당시 심정을 표현했다.
"아이들은 다 커서 제 도움이 필요 없는 나이가 돼 있었고 남편도 회사에서 임원 위치에 와 있었는데, 어느 날 제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니 저는 여전히 어제, 그제와 다름없는 주부인 거예요. 아이들 한창 자랄 때에 비해 시간도 많이 남았고요. 나만의 일,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이 참 간절한 그런 시기를 겪으면서 앞치마 벗어 던지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거죠."
이렇게 시작한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대성공이었다. 주부 김미전이 멋진 사업가 김미전으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년 여. 스스로 생각해 봐도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김미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은 결혼 전 2년 여 직장 생활을 할 때 뿐이었다. 직장 상사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사표를 내고 전업주부 길로 들어섰고 그때부터 20여 년을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사업, 더군다나 식당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일인데 그 사업을 해서 20여년 만에 김미전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된 거예요. 제 이름으로 살아가는 지금이 제 인생의 전성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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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수한주 막걸리 한 병 팔 때마다 100원씩 기부하기로 약속 뒤 첫 기부한 날. |
| ⓒ 김미전 |
하지만 이런 어려움은 그의 인생 2막에 큰 방해가 되지 못했다. 좌절을 안기지도 못했고 가던 길을 멈추게 하지도 못했다. 늘 멋진 미래를 꿈꿨고 그 미래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늘 꿈을 꾸고 살았고, 그 덕분에 지금 김미전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도전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으니 열정이 있다면 도전해보라"고 귀띔했다. "꿈을 꾸는 한 인생에 마침표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나도 이 말에 위로를 받으며 살고 있다"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직장 생활 2년이 사회생활 전부인 주부 김미전이 사업가 김미전으로 멋지게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은 '꿈을 꾸었기 때문'이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을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기회로 만든 저력과 긍정적인 사고 역시 지금의 김미전을 만드는 데 한 몫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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