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꿈틀거리는 용의 몸통으로 여긴 곳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화성은 입지나 규모에서 한양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에 버금가는 권위를 갖췄다. 왕이 구상한 10개년 계획의 일단이다. 4대 문루와 행궁을 갖춘 도성 축소판이다. 아울러 팔달산을 활용해 산성 기능을 겸한, 당시로선 최첨단 방어체계를 갖춘 신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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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풍루 화성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왕조 중흥을 꾀하고 당쟁을 제압하려던 왕이, 화성을 축조한 뜻과 상징을 이 문루에 오롯하게 읽어 낼 수 있다. |
| ⓒ 이영천 |
왕은 아울러 10개년 계획을 공식화한다. 1794년 착공한 축성 공사를 10년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2년 9개월만인 1796년 9월(음)에 완공한다. 이는 치밀한 준비와 기계의 활용, 그리고 무엇보다 적정한 노임을 주어 자발성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성이 완공되기도 전인 을묘(1795)년 원행은 이런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10개년 구상은, 왕권 강화의 토대 위에 문예 및 학문, 농업과 상업, 교통과 군사력 발전을 꾀하려는 계획이다. 아들이 15살이 되는 갑자년(1804)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소위 '갑자년 구상'이라는 이 계획은 단순하면서도 웅대했다. 갑자년에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정조는 화성에 머문다. 농업을 기초로 상업과 교통 발전에 힘을 쏟는다. 둔전을 바탕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함으로써 극한으로 치닫는 당쟁을 제압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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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령전 화성 행궁에 유일한 殿(전)이다. 행궁의 북쪽에 위치하며, 정조대왕을 기리는 사당이다. |
| ⓒ 이영천 |
동문과 동북공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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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룡문 성벽을 뒤로 살짝 물린 자리에 문루를 두었다. 문 앞에 둥근 옹성을 쌓고, 옹성과 양쪽 내민 성벽에서 문으로 드는 적을 공격하기 쉽게 고안했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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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공심돈 동북노대 성가퀴 사이로 본 동북공심돈. 높은 망루에 겸하여 사방으로 총과 포, 화살을 쏠 수 있게 고안된 방어와 공격을 겸한 건축물이다. |
| ⓒ 이영천 |
동북공심돈 뒤가 활터, 그 옆이 동장대(연무대)다. 담벼락으로 둘러싸, 주요 군사 지휘소임을 웅변하고 있다. 그 옆 동암문을 지나면 높은 동북 포루다. 포루가 왜 이 자리인지 지형을 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불룩하게 튀어 오른 이 등성이를, 왕은 꿈틀거'리는 용의 몸통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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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연과 방화수류정 광교산에서 흘러 온 수원천이 이곳 석벽에 부딪치고 고여서 만든 연못, 용연이다. 그 석벽 위에 용의 뿔처럼 방화수류정이 앉았다. 꺾여 화홍문으로 흘러 간 물이 화성의 남북 물줄기다. |
| ⓒ 이영천 |
'용연 기슭은 앞면이 석벽이고 그 아래엔 작은 연못이 있다. 광교산에서 흘러온 수원천이 석벽 아래에 이르러 휘돌아 흘러 북에서 남으로 읍치를 통과한다. 물길이 용연 기슭을 따라가다 꺾이는 곳에 장차 다리를 걸쳐서 성을 쌓아 수문을 만들려는 것이다'고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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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화홍문 누각이 사라지고 없는 1920년대 모습. 성밖 수원천 변에서 방화수류정을 바라 본 사진이다. 사라진 화홍문 누각과 대비되는, 성안 우거진 숲이 인상적이다. |
| ⓒ 이영천(현장안내판) |
겉으로 보아 유려한 모습의 방화수류정도 아래는 온통 군사시설이니, 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의 의도는 도대체 어디에 잇닿아 있단 말인가.
장안문
전근대 무기보다 가공한 파괴력을 가진 대포의 등장에 대비한 성문과 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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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안문 옹성 안쪽의 모습이다. 홍예와 성벽은 돌로, 성가퀴는 벽돌로 쌓았다. 겉을 막고 있는 옹성은 온통 벽돌이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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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안문 옹성 장안문의 바깥을 막고 있는 옹성의 모습. 2중으로 문을 두어, 적의 침략을 지연시킴은 물론 좁은 문으로 통과시킴으로써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게 고안하였다. |
| ⓒ 이영천 |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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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 성벽 장안문에서 화서문 사이 성벽. 위로 갈수록 성돌이 작아지고 규격화 한다. 성가퀴 아래 바로 끼운 미석(楣石)이, 눈과 비로 부터 성벽을 보호한다. 성벽은 일직선이 아닌 울퉁불퉁한 요철 모양으로 쌓았다. |
| ⓒ 이영천 |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이 무척 조화롭다. 성벽 밖으로 돌출된 아름다운 서북공심돈이, 옹성에 둘러싸인 화서문을 건축이나 군사적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겸하기 때문이다. 서쪽 정문인 화서문을 지나면 곧 팔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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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성의 서쪽 방어의 중심시설이다. 성문은 물론 밖으로 열린 개활지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핵심시설로 공심돈을 두었다. |
| ⓒ 이영천 |
화성은 건축물 또한 무척 아름답다. 이면엔 적을 궤멸시키려는 날카로운 발톱을 감추고 있다. 방어와 생활, 치세와 번영을 누대에 걸쳐 이뤄내려는 과학과 기술, 토목과 건축이 융·복합한 우리 도시의 신기원이다. 화성이 완성된 후 왕은 누구든 와서 구경하라며 자랑스럽게 외쳤다. 그 외침이 어느덧 전 세계에 울려 퍼져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탄복할 만한 왕의 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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