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천년 전 기술이라니... 토끼 세 마리가 떠받친 국보
[임영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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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자 청화투각 향자 모양 향꽂이. 조선시대 |
| ⓒ 국립중앙박물관 |
향의 역사
인류는 언제, 어디서부터 향을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고대 인도일까, 이집트일까, 아니면 중국일까. 여러 설들이 있지만 현재까지 연구 결과만으로는 정확히 어느 곳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다만 기원전 4000년경 고대 인도에서 향을 피우는 도구인 향로가 발견되었다. 이를 근거로 그 시기와 장소를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처음에 향은 사람의 신체나 음식 또는 실내 공간의 나쁜 냄새를 없애거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점차 신앙적 도구로 종교 의례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구약 성경에는 향과 향로에 대한 많은 기록이 나온다. 크리스트교에서는 향을 귀하고 좋은 것으로 여기고 신령스러운 의미로 사용해 왔다.
지금도 크리스트교 가운데 천주교, 동방정교회 등은 여전히 특별한 미사나 종교의식에서 향을 사용한다. 향로에 넣어서 태운 향은 예배의 공간을 정화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지인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에는 산티아고 데 콤프스텔라 성당이 있다. 이곳은 예수의 12 사도 중 첫 번째 순교자인 대(大)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로마, 예루살렘과 더불어 가톨릭 3대 성지 중 한 곳이다.
이 성당에는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는 거대한 향로가 있다. 이 향로는 높이 1.5m 무게 53kg으로 청동으로 만든 다음 은으로 도금을 했다.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전설에 의하면 그 기원은 중세 시대라고 한다.
미사가 시작되면 대성당 중앙돔에 매달린 도르래를 이용해 '티라볼레이로'라고 불리는 8명의 성직자들이 밧줄을 당겨 향로를 들어 올린다. 그런 다음 20m의 높이에서 시속 68km 속도로 좌우로 움직이며 성당 안을 향으로 가득 채워 순례자들의 영혼을 정화한다. 이 분향 의식은 콤프스텔라 대성당의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의례 중 하나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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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성덕대왕신종(에밀레 종)에도 연꽃 형태의 향로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비천상이 조각돼 있다 |
| ⓒ 임영열 |
이처럼 어느 종교에서나 향은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특히 불교에서의 향은 모든 의례에 빠질 수 없는 공물이다. 부처님께 올리는 여섯 가지 공양물 즉 '육법공양(六法供養)'이 있는데 이는 향(香), 등(燈), 차(茶), 꽃(花), 과일(果), 쌀(米)을 말한다. 이중 향은 불단의 중심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공양물이다.
우리의 향 문화도 불교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인도에서 창시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전래되면서 향도 함께 전해졌다. 4세기에 조성된 고구려 고분 안학 3호분 벽화 '부인도'에 향로를 들고 있는 여인이 묘사돼 있고 불교 색채가 강한 쌍영총 벽화에도 향이 타오르는 향로를 머리에 인 시녀가 승려와 여인들을 인도하는 '공양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에밀레종에도 연꽃 형태의 향로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비천상이 조각돼 있다. 이처럼 불교가 전래된 이후 범종과 사리기(舍利器) 등 많은 불교 공예품이 제작되었다. 그중에서도 향을 피웠던 향로(香爐)는 조형과 장식이 뛰어나 탁월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24년 말 우리나라에는 361점의 국보가 있다. 그중에 향로가 6점이 있다. 백제에서 만든 것이 1점이고 나머지 5점은 고려시대의 것들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많은 향로 중에서 국보로 지정되어 시대를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 두 점을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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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12월 12일 충청남도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
| ⓒ 국가유산청 |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는 백제 후기 역사의 중요한 사적지로 매년 관람객들이 늘어났다. 이에 부여군청에서는 주차장 확장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현장은 고분군과 나성 사이에 있는 논이었다. 1차 매장 문화재 조사 결과 건물 터와 불탄 흔적, 금속 조각들이 나왔지만 특별한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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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12월. 발굴당시 백제금동대향로의 모습 |
| ⓒ 국립부여박물관 |
발견 당시 연구원들은 유물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박물관으로 옮겨와 진흙을 떼어내고 보존 처리를 끝낸 다음 세상에 드러난 유물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높이 64cm 무게 11.8kg의 완벽한 형태의 대형 향로였다. 청동에 금을 얇게 입힌 금동향로는 거의 온전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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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금동향로 받침대. 용 한 마리가 고개를 들고 연꽃이 새겨진 몸통을 수직으로 떠 받치고 있다 |
|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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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시킨다. 연잎의 표면에는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
| ⓒ 국가유산청 |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향로는 누가 왜 만들었을까. 향로가 발견되고 추가 발굴을 통해 이곳이 백제 왕실의 절터였음이 밝혀졌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불상과 광배가 출토되었고 결정적 단서가 되는 '석조사리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학자들은 백제 제27대 창왕(昌王·위덕왕)이 567년에 아버지 성왕(재위 523∼554)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절을 세우고 향로를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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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잡이 부분. 봉황이 여의주를 목에 끼고 산아래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
| ⓒ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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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로의 뚜껑. 23개의 산들이 첩첩산중을 이루고 5인의 악사가 피리, 소금, 비파, 북, 거문고를 연주하며 각종 동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
| ⓒ 국가유산청 |
아버지의 뒤를 이은 아들 위덕왕은 능산리에 절을 짓고 부왕의 꿈이 담긴 최고의 향로를 만들어 향을 사르며 아버지의 명복을 빌었다. 많은 사람이 이 아름다운 향로를 바라보며 왜 눈시울을 적시는지 그 연유를 알 것 같다. 1500여 년 전, 전쟁 중에 아비를 잃은 '아들의 한과 염원'을 담아 하늘로 올라간 '천상의 향'은 흩어지고 없지만 향을 피웠던 금동대향로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애달픈 사부곡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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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12세기 고려청자의 전성기 때 만들어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 ⓒ 국립중앙박물관 |
또한 고려의 하이테크 산업이었던 청자 산업의 발달과 함께 청자 향로가 등장했다. 특히 왕실에서는 동물이나 사물의 형태를 본떠서 만든 상형청자 향로를 많이 사용했다. 현재 청자 향로 3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그중 청자 투각 칠보무늬 뚜껑 향로는 고려청자의 정수라 할 만큼 아름답고 세련된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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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자 투각 칠보무늬 뚜껑(좌)과 꽃잎을 첩화하여 만든 몸통(우) |
|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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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로의 뚜껑 |
| ⓒ 국립중앙박물관 |
몸체는 틀에서 찍어낸 꽃잎들을 첩화 기법을 사용하여 하나하나 붙여 활짝 핀 연꽃 모양으로 표현했다. 꽃잎은 가느다란 잎맥까지 세밀하게 묘사하여 섬세함과 사실감을 더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향로의 하이라이트는 받침대에 있다.
넓적한 모양의 받침대를 작고 앙증맞은 세 마리 토끼가 떠받치고 있다. 귀여운 토끼의 눈에 철화로 검은 점을 찍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금방이라도 토끼가 깡총 하고 뛰어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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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받침대를 떠받치고 있는 토끼. 금방이라도 깡충하고 뛰어나올 것처럼 매우 사실적이다 |
| ⓒ 국립중앙박물관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메거진 <대동문화> 150호(2025년 9, 10월)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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