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양로원 살인사건의 진실
[최해린 기자]
마냥 후텁지근하기만 하던 날씨가 풀리기 시작할 때, 잘 만든 미스터리 영화 한 편만큼 좋은 것도 없다. 넷플릭스 영화 <목요일 살인 클럽>은 가을의 포문을 여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을뿐더러, 오락성뿐만 아니라 시의성까지 적절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준다.
웬만한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이 차고 넘치는 요즈음, <목요일 살인 클럽>은 어떻게 차별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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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목요일 살인 클럽> 스틸컷 |
| ⓒ 넷플릭스 |
<목요일 살인 클럽> 속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세상으로부터 똑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와 관계없이 '노인네'로만 소비되지 않는 것이다. 작중 목요일 살인 클럽의 공동 창시자인 엘리자베스는 정보기관에서 일하던 젊은 시절의 경력을 살리며, 신입 회원인 조이스도 얼핏 보기에는 제과제빵에 열심인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간호사로서 활동했던 젊은 시절의 시간을 십분 활용한다. 이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늙어 버린 존재가 아니라, 연속적인 삶의 결과로 자연스러운 노화를 맞이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노인들을 젊은 세대의 짐 덩어리처럼 묘사하거나, 전지전능하고 신비로운 조언자로 활용하는 등 비인간적인 캐릭터 운용을 해 온 주류 상업영화계에서는 신선한 묘사다.
원작 소설에서도 이들의 직업적 특성을 강조하긴 했으나, 이러한 경향성을 스크린 위에까지 고스란히 데려온 것에는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본인의 경험이 한몫했을 듯하다. 1958년생인 콜럼버스 감독은 올해로 67세로, 어느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메가폰을 놓지 않고 있다. 양로원에 들어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뿐인 것처럼 보이는 노인들이 '늙은이'이기 이전에 고유한 성격과 삶의 궤적을 지닌 '사람'임을 직시하고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합한 감독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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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목요일 살인 클럽> 스틸컷 |
| ⓒ 넷플릭스 |
결국 영화 후반부에서, 선량해 보이던 토니 역시 외국인 노동자의 여권을 몰수하는 등 불법적인 사업을 자행해 왔음이 드러난다. 토니를 죽인 진범은 그에게 착취당했던 공동묘지 관리자 '보그단'이었던 것. 또 그와 별개로, 이안을 죽인 것은 코마 상태에 빠진 아내의 범죄를 덮기 위한 '존'의 계책이었다. 단순해 보이던 사건이 사실 각기 다른 두 살인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는 플롯은 나름 신선해 보이지만, 미스터리 장르를 통틀어 보면 그렇게 낯선 선택도 아니다. '선량한 피해자'로 남아야만 하는 최초의 살인 대상이 사실 바람직하지 못하던 일을 하던 사람이라 복수에 휘말렸다는 전개도 윤리에 초점을 맞춘 사회파 미스터리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렇다면 <목요일 살인 클럽>은 뻔한 전개를 영화적 트릭으로 감춘 작품에 불과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본작은 강렬하고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하는 게 목표인 고전적 추리소설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이 포문을 연 전형적 추리소설에서 하나같이 부족한 요소는 바로 '캐릭터의 깊이감'이다. 에르퀼 푸아로나 셜록 홈즈처럼 강력한 개성을 지닌 탐정이 등장하더라도, 각 사건을 둘러싼 조연 캐릭터들은 때때로 '설정을 한데 뭉쳐 넣은' 인물 이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들의 이야기보다는 살인사건 자체의 구조에 집중하는 것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한편, <목요일 살인 클럽>은 본작이 지니는 트릭이 미스터리 장르의 판도를 뒤흔들 정도로 충격적이지는 않음을 알고 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 노인 캐릭터의 사실적인 묘사가 도드라졌음을 짚었을 때도 확인할 수 있었듯이, <목요일 살인 클럽>은 서로 다른 배경의 네 노인이 살인사건을 통해 마무리하는 여정에 집중한다. 미스터리 자체는 흥미를 돋우면서도 등장인물들에 의해 친절하게 해설되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은 눈을 뗄 수 없다. 까칠해 보이는 엘리자베스가 마음을 여는 과정, 주변에 잘 휘둘리던 조이스가 당당함을 되찾는 여정, 그리고 론과 이브라힘의 기묘한 우정 등 주연 인물들의 아크(arc)가 그 어떤 미스터리보다도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목요일 살인 클럽>은 노인 캐릭터 묘사라는 난제를 성공적으로 잘 풀어낸 작품 중 하나가 되었으며, 미스터리의 취약점은 인물적 개성으로 지탱하는 노련함을 보였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시작하는 요즈음, <목요일 살인 클럽>과 같은 웰메이드 추리 영화를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머리와 마음 모두 달콤한 케이크를 먹은 것처럼 충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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