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무용 전용 공공극장,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개관

이규승 2025. 9. 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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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우리나라 무용계를 대표하는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하여 개관식을 축하해

[이규승 기자]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은평 건물 사진
ⓒ 서울문화재단
지난 4일 오후 3시, 은평구 수색동의 하늘은 흐렸지만 거리는 묘한 들뜬 기운으로 가득했다. 새로 지어진 회색빛 건물 앞에 다다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외벽을 가득 채운 민트색 대형 배너였다. 굵은 글씨로 적힌 문구는 "every body every one – 모든 움직임을 위한, 단 하나의 무대". 마치 이곳이 이제부터 모든 몸짓의 터전이 될 것임을 힘주어 알리는 듯했다.

건물 입구에는 아이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서울시 대표 캐릭터 해치가 놓여 있었다. 무용 전용 공연장의 개관식답게, 장중함보다는 시민들과 함께 어울리려는 유쾌한 분위기가 먼저 눈에 띄었다. "이게 뭐야?"라며 캐릭터 앞에서 사진을 찍는 아이들, 그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힘을 모아 조성한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은평'(이하 '은평센터'). 국내 공공시설로는 최초로 무용 전용 공연장을 갖춘 공간이다. 발레와 한국무용, 현대무용이 제 집을 갖게 된 셈이다. 그간 무용은 늘 연극이나 음악을 위한 공연장 무대에 끼워 넣어야 했고, 무용수들의 동선과 움직임은 그 제약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때문에 무용계에서는 수십 년간 '무용을 위한 공간'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날 개관은 무용인들에게 단순한 기념식이 아니라 오랜 숙원의 결실을 보는 순간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1층 로비는 이미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입구 한쪽 벽면에는 노란색과 청록색으로 디자인된 슬로건 배너가 큼직하게 걸려 있었고,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로비 중앙에는 샴페인 잔과 핑거푸드가 놓인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는데, 서로 오랜만에 만난 무용계 인사들의 웃음소리와 인사말이 끊이지 않았다.

"드디어 무용 전용 공연장이 생겼네요."
"이런 공간이 있어야 젊은 무용수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죠."

시민들의 표정 역시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인근에서 온 한 주민은 "이런 시설이 우리 동네에 생길 줄은 몰랐어요. 아이랑 같이 와봤는데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것 같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개관식은 이미 '무용의 집'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집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이날 개막식에서는 은평구 박주민 국회의원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 서울문화재단
이날 개관식에는 은평구 지역 정계 인사부터 무용계 대표, 행정기관 관계자까지 200여 명의 내빈이 대거 참석했다. 국회에서는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의회에서는 이병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자리해 지역 정치권이 은평의 새로운 문화 거점을 축하했다. 무용계를 대표해 대한무용협회 조남규 이사장, 한국발레협회 김동곤 회장, 한국춤협회 윤수미 이사장, 한국현대무용협회 김형남 이사장이 한자리에 모였고,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이종호 회장 등 주요 단체장들도 함께했다.

전 국립발레단장 최태지, 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홍승엽 등 무용계 거장들이 나란히 앉아 무대를 기다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었다. 서울시 김태희 문화본부장, 정지숙 서울시교육청 평생진로교육국장, 이창기 서울시 문화수석 등 행정 관계자와, 장우윤 은평문화재단 대표이사, 김영호 강동문화재단 대표이사 등 인근 문화기관 대표들이 함께하면서 개관의 의미를 더했다. 특히 서울문화재단 박상원 이사장은 "은평센터가 무용의 내일을 밝혀줄 등불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 공간의 상징성을 환기시켰다.

무대 위에 선 '모든 움직임의 존중'

본식이 시작되자, 블랙박스 공연장 안은 곧 숨죽인 긴장으로 가득 찼다. 객석을 메운 200여 명의 관객은 숨소리마저 아낀 듯 조용했다. 무대 위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자, 발레리나 김주원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차분히 걸어나왔다. 이날 행사의 사회를 맡은 그는 단정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 무대는 이제 모든 몸짓을 품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어서 펼쳐진 무대는 은평센터가 지향하는 비전을 몸으로 증명했다. 이날 무대를 빛낸 다양한 무용인들 중에 박큰별빛(2025 YAGP 주니어 남자부 1위) 발레리노가 눈에 띄었다. 붉은 타이즈와 흰 셔츠 차림으로 무대를 가로지른 그는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 도약은 단순히 뛰어오르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 순간 객석은 숨을 멈췄고, 발끝이 천장에 닿을 듯 솟구쳤을 때,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무용 전용 무대'의 필요성을 웅변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무용가 임학선이 등장했다. 고요하고 정제된 손끝, 무릎과 발목의 절제된 움직임은 전통의 힘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관객들은 잠시 전의 격렬한 도약에서 단아한 선으로 넘어가는 무용의 변주에 숨을 고르듯 몰입했다. 이밖에 현대무용가 강성룡, 배현우 무용수도 함께했다. 그는 자유로운 몸짓으로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은평센터 공간 전체를 '몸의 언어'로 새롭게 써 내려갔다. 세 장르가 차례로 무대를 채우며, 은평센터가 지향하는 '장르와 세대의 연결'이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마지막 순간,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와 서울시 관계자, 무용계 주요 인사들이 무대 중앙에 나란히 섰다. 배경 화면에는 다시 한 번 개관 슬로건이 떠올랐다. "every body every one – 모든 움직임을 위한, 단 하나의 무대".

송 대표이사는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은평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닙니다. 예술교육과 창작이 결합된 무용의 집이자, 세대를 아우르는 무용계의 선순환을 이끄는 거점이 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무대 위에서 흰 꽃비가 흩날렸다.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은평 개막식에서 개관선언을 하고 있다.
ⓒ 서울문화재단
순간 객석은 뜨거운 박수로 가득 찼다. 인사들은 나란히 주먹을 들어 올리며 한국 무용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맹세했다. 꽃비가 흩날리는 무대 위 장면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무용계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순간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서울무용창작센터는 은평센터의 심장이다. 블랙박스형으로 설계된 이 공연장은 높이 9m의 천장과 최대 256석 규모의 객석을 갖췄다. 무엇보다 '텐션 와이어 그리드 시스템' 덕분에 프로시니엄, 아레나, 런웨이 등 다양한 무대 형식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바닥은 무용수의 안전을 위해 너도밤나무 소재를 사용했다. 장시간의 리허설과 공연에서도 관절과 근육을 보호해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공연장을 설계할 때부터 무용수의 몸과 움직임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곳은 단순히 공연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2024년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Free)' 우수등급을 획득하며, 휠체어 이용자와 노인, 어린이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로비의 낮은 카운터, 댄스스튜디오 리프트, 무용 서적 열람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린 예술의 집을 표방한다.

9월부터 이어질 개관 페스티벌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은평 개관식에 참여한 무용계, 서울시, 지역 등 주요인사 200여 명이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 서울문화재단
개관식은 시작일 뿐이다. 오는 9월부터 12월까지 개관 페스티벌 <Every Body Every One>이 이어진다. 첫 무대는 안은미컴퍼니의 <드래곤즈>. 영국과 미국 무대에서도 주목받았던 이 작품은 안은미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사운드, 영상이 결합된 역동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이어 고블린파티의 <세일>, 멜랑콜리댄스컴퍼니의 <0g>, 임정하의 <지금 이 공연>, 아하무브먼트의 <음-파>가 줄줄이 무대에 오른다. 서울무용제와 국립현대무용단 협력 프로그램까지 더해져, 올해 하반기 서울 무용계의 중심은 단연 은평센터가 될 것이다.

교육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문화재단의 시민 대상 프로그램 '서울시민예술학교 은평'을 통해 전 국립발레단장 최태지, 초대 국립현대무용단장 홍승엽 등 거장부터 젊은 안무가까지 참여해 인문 강좌, 창작 체험, 토크 콘서트를 이끈다. '메디컬 바레', 어린이 발레, 공연 연계형 체험 프로그램 등은 지역 주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예정이다.

서울문화재단은 2006년부터 예술가를 교육현장에 파견하는 TA(Teaching Artist) 제도를 운영해왔고, 2016년 양천센터를 시작으로 용산·강북·서초·은평까지 다섯 권역별 예술교육센터를 완성했다. 은평센터는 이 네트워크의 마지막 조각이자, 배우는 예술과 보는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그날 은평센터의 무대 위에서 흩날린 흰 꽃비는 단순한 연출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기다림이 끝난 순간에 내린 축복이자, 앞으로 써 내려갈 역사의 서막이었다. 은평센터는 이제 무용수의 집이자 시민의 집으로, 한국 무용의 내일을 향해 첫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개관페스티벌 포스터
ⓒ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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