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된 것 같다"며 사망한 군무원... 뒤늦게 책임 인정한 국가

변상철 2025. 9. 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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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스스로 목숨 끊은 군무원... 서울행정법원, '개인 책임론' 뒤집고 순직 인정 판결

[변상철 기자]

2022년 여름, 전남 광양 앞바다에서 한 군무원이 생을 마감했다. 장교로 복무한 뒤 군무원 시험에 합격해 대구 50사단에서 예비군 동원 업무를 맡아왔던 양아무개씨(37). 그는 가족에게 "다시는 부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반복하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끝내 집을 떠난 날,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남겨진 가족은 딸과 만삭의 아내였다. 양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빠에 대해 물을 때마다, 아내는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빠는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돌아가신 분"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국가는 그의 죽음을 개인적 이유로만 치부했다. 성실하고 헌신적인 남편과 아빠라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이 비참하기도 했고, 그로 인해 치밀어 오르는 화로 인해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군은 그의 사망을 "단순 변사"로 처리했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으나 약물 치료에 소극적이었던 점, 육아휴직 신청과 철회의 과정에서 스스로 혼란을 겪었던 점 등을 들어,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사회 평균인이라면 감당할 수 있었을 정도의 업무"라는 문장까지 군 당국의 서류에 담겼다. 유족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양 씨에 대한 판결문. 인사혁신처가 결정한 순직유족급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한다는 내용이다.
ⓒ 변상철
하지만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군의 이러한 주장과 판단을 뒤집었다. 양씨의 아내가 '순직유족급여 불승인 처분 취소'를 요구하며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지난 8월 14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은 것. 법원은 "양씨의 사망과 공무 수행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를 배제하기 어렵다"며 순직 불승인 처분을 취소했다. 억울함을 안고 살아온 유족에게 처음으로 진실을 확인해 준 판결이었다.

업무는 쌓이고, 도움은 없었다

유가족 등의 증언에 따르면, 양씨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장교 시절부터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했고, 군무원으로 발령받은 뒤에도 예외는 없었다. 그러나 근무지가 대구·경북 지역 관할 50사단 동원처였다는 사실은, 그의 삶을 서서히 짓눌렀다.

군 수사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50사단 동원처는 다른 지역보다 예비군 인원이 많아 "모든 직원이 기피하는 부서"였다. 선배 주무관이 전출되면서 양씨에게 업무가 집중되었고, 그는 월 평균 23시간 이상의 초과근무를 기록했다. 주말과 야간에도 지휘관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2022년 3월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때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격리 기간 중에도 당직 편성, 인사 관리 등 업무를 전화로 처리해야 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격리 해제 뒤 반드시 받아야 할 정신건강 평가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고서에는 '양호'라고 적혔지만, 실제로는 동료가 대신 작성한 허위 서류였다. 이 사실은 이후 군 수사에서 확인되었다(관련 기사 : 허위 작성 '코로나 모니터링' 검사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다).

"나는 쓰레기가 됐다"… 무너져가는 마음

아내는 남편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격리 이후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출근 전날부터 업무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어린 딸과 함께 있어도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아내에게 중얼거렸다.

"조직 안에서 나는 이제 쓰레기가 된 것 같아.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 같아."

아내는 그 말의 무게를 다 알지 못한 채 "괜찮다, 잠시 힘든 거다"라고 위로했지만, 남편의 눈빛은 이미 빛을 잃고 있었다.

법정에서 드러난 군의 주장

재판 과정에서 군은 책임을 피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국방부와 인사혁신처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폈다.

'우울증 치료를 거부한 개인의 선택이 사망으로 이어졌다'
'육아휴직에 대한 혼란은 기관 때문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후회가 원인'
'업무 부담은 사회 평균인이라면 감내할 수 있는 수준'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판결문은 이렇게 적고 있다.

"피고는 망인이 우울증 치료를 거부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미 발병한 질환이 업무와 무관하다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치료의 성실성 여부는 공무와의 인과관계를 단절할 수 있는 사유가 아니다."

또한 재판부는 양씨가 자가격리 이후 더욱 심각한 업무 압박에 시달렸다는 점에 주목했다.

"코로나19 확진 및 격리 이후, 장기간 누적된 과중한 업무와 심리적 부담으로 우울장애가 발병하였다. 이는 업무와의 상당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는 사정이다."

보고서 허위 작성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신건강 체크리스트가 사실과 다르게 작성된 사실이 확인된다. 이러한 관리 소홀은 국가의 귀책사유이며, 이는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근거가 된다."

유족의 믿음, 그리고 멈추지 않는 싸움

아내는 판결이 난 뒤에도 쉽사리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버지에 대해 물을 때, 무엇이라 답해야 할지 늘 막막했다고 했다.

"남편은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늘 책임감 때문에 힘들어했죠. 그런데 그 책임감을 국가가 알아주지 않았어요. 이제라도 남편이 억울하지 않다는 것을 법원에서 확인해 줘서 다행이에요. 하지만 끝난 건 아니에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죠."

그녀의 가방에는 남편이 남긴 진료 기록과 상담 기록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때로는 그것들이 무겁게 느껴져 내려놓고 싶다가도,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유산처럼 다시 챙긴다.

반복되는 군 내 죽음,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

양씨의 죽음은 결코 예외가 아니다. 2023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군인권보호청에 신고된 군인 및 군무원 사망 사고는 147건으로 이 중 44.9%인 66건이 자살이었다.

군은 매년 수십 차례의 교육과 대책을 내놓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형식적인 상담, 허위로 작성된 검사표,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뒤늦게 꾸려지는 대책위원회. 유족들이 반복해서 마주하는 것은 "재발방지"라는 빈말이었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준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군 조직 전체에 대한 경고다.

재판부는 "재해보상심의회가 내세운 근거가 객관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며 국가의 판단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이는 곧 국가가 지금까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어떻게 무책임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군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진심 어린 사과, 그리고 제도의 근본적 변화다. 형식적인 위로가 아니라, 허위 보고와 무책임한 태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 상담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휴직·복귀 과정에서 병사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죽음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돌리지 않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양 씨의 아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한다.

"아빠는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돌아가신 분이야."

이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국가가 보장하는 진실이 되려면, 군은 달라져야 한다. 반복되는 군인의 죽음을 언제까지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둘 것인가. 이번 판결은 한 가족의 승리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할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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