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서점에 영영 가지 못할 책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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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연 기자]
책장을 펼쳤을 때, 친구가 남긴 짤막한 메모를 발견했다. 순간 나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내 일기에 남겨주던 '빨간펜' 코멘트를 열어보던 마음으로 돌아갔다. 두근거림과 설레는 기분. 이것이 이번 여름, 교환 독서를 하며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이었다.
독서는 본디 혼자 읽고 사유를 정리하기 좋은 취미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여러 사람이 함께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독서 모임도 있다. 그런데 요즘 1년 넘게 이어진 독서 열풍 속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이 등장했다.
바로 '교환독서'다. 말 그대로 친구 혹은 지인들과 책을 교환해 읽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포스트잇이나 펜으로 즉석에서 느낀 감상, 밑줄, 질문을 남기고 그것을 서로 주고받는다. 완성된 감상문이 아니라, 읽는 즉시 흘러나온 날 것 그대로의 기록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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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환독서를 하며 서로 주고 받은 말들 책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가다> 가와우치 아리오 |
| ⓒ 최주연 |
"좋아!"
지난 7월부터 8월, 방학을 맞아 나 역시 친구와 교환 독서를 해 보았다. 책은 따로 목록을 정해두지 않았다. 어떤 날은 "이건 네가 좋아할 것 같아" 하며 서로를 떠올리며 책을 골랐다. 또 어떤 날은 지난 책과 중심 소재가 이어지는 책을 고르기도 했다.
서로의 손길이 닿은 책을 읽다 보니, 혼자라면 결코 펼치지 않았을 책과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은 여섯 권. <제7일>처럼 묵직한 소설에서부터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처럼 유쾌한 판타지까지, 에세이와 문학을 가리지 않았다.
장르의 폭 만큼 메모도 다양했다. 어떤 날은 짧은 별점, 어떤 날은 '이 부분은 네 생각이 궁금해'라는 질문, 또 다른 날은 뜬금없는 낙서였다. 어떤 장면 옆에는 '나는 이거 별로. 너는?'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고, 나는 그 밑에 '나도 별로!'라고 답을 남겼다. 마치 책 속 여백이 우리의 쪽지가 오가는 우체통처럼 느껴졌다.
사실 교환 독서가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건 일종의 '해방감'이었다. 독서 모임에서는 보통 내 생각을 정리해 남들에게 조리 있게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교환 독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읽는 즉시 나의 생각을 가감 없이 남기게 되므로 좀 더 솔직한 감정을 남길 수 있다. 늘 완벽하게 정돈된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지고 있던 나 같은 사람에게 교환 독서는 일종의 해방처럼 다가온다. 상대도 교환 독서를 하며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다 편하게 독서하고 기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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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환독서의 흔적 |
| ⓒ 최주연 |
미사여구도, 정돈된 말이 아니어도 된다. 우리는 그 속에서 그보다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었다. 반듯하게 그어보려 했으나 조금 어긋난 밑줄에서도, 대체 이건 무슨 글자지 의심케 하는 손글씨에서도 오히려 웃음이 났다. 완벽하지 않은 말들이지만 그 연결성을 책 내용이 보완해주니 든든하기 짝이 없었다. 이따금 서로 좋았던 문장이 겹쳐 두 개의 밑줄이 생겨날 때면 어쩐지 공명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평소 책에 직접 메모하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책은 최대한 깨끗하게 보관해 두고, 다 읽으면 중고서점에 내다 팔곤 했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망설임 없이 줄을 긋고, 글씨를 쓰고, 작은 그림까지 그려 넣었다. 아마 이 책들은 영영 중고서점에 가지 못할 것이다. 상태 최하 판정도 아닌, 폐기 처리 감일 테다. 하지만 다시 이 책을 펼쳐 보면, 친구와 교환 독서를 했던 2025년 여름의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날 것이다. 몇 년 뒤 일기를 다시 들여다보듯이.
우리는 결국 여섯 권의 책을 나눈 것이 아니라, 여섯 권의 '일기장'을 주고받았다. 가면을 쓰기 바쁘고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손해로 여기는 요즘, 투박하지만 솔직한 기록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경험은 특별했다. 정갈하게 다듬은 말보다 비뚤어진 밑줄 한 줄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교환 독서는 책을 읽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를 읽는 방식이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저자와의 만남이 끝나는 것이지만, 교환 독서를 하면 책장을 덮은 뒤에도 친구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책 만큼 서로를 깊이 읽게 된다.
9월이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여전히 통용된다면, 그 이유는 아마 책 속에서 계절보다 깊은 마음의 온도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가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교환 독서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불완전한 메모와 낙서 속에서 진짜 이야기가 자라나는 법이니까.
[교환 독서 책 리스트]
<제7일, 위화>
<로맨스 도파민, 최영원·조수연 외 3명>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 이사구>
<희랍어 시간, 한강>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가와우치 아리오>
<치치새가 사는 숲, 장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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