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짓는 목수들의 이야기, ‘공간222’ [공간을 기억하다]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나무를 다듬듯, 무대를 짓는 ‘극단 목수’
대학로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성북구 동소문동의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서면, ‘공간222’라는 이름의 작은 간판이 눈에 띈다. 시끄럽고 화려한 네온사인 대신, 투박하지만 단단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곳은 이돈용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목수’의 보금자리이자, 연극을 사랑하는 이들의 숨 쉬는 공간이다.
소극장 하면 으레 대학로를 떠올리는 이들에게 ‘공간222’는 낯설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공간222’의 시작은 극단 목수의 오랜 꿈이었다. 90년대부터 연극 무대 위에서 동고동락해온 이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극장을 갖겠다는 목표 하나로 공연 수익금을 차곡차곡 모았다.
“원래 이 공간은 극단 목수의 연습실 공간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대학로에 극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공연을 했죠. 하지만 메르스, 사스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며 축제나 기획 공연 계약이 일방적으로 취소되고 큰 손해를 입었어요. 3년 정도 버티니 통장 잔고가 천여만 원밖에 남지 않아 ‘이러다 극장은 꿈도 못 꾸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연습실을 털어서 극장 공사를 시작했죠.”
이름난 건축가나 인테리어 전문가의 손길 대신, 극단 단원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철거부터 설계, 목공, 페인팅 작업까지, 연극 무대를 만들던 손으로 실제 공간을 짓는 일은 고되고 험난했다.
“정말 힘들었다”면서도 “그럼에도 극장 만들기라는 목표가 있었고, 다들 함께했기 때문에 너무 행복했습니다”는 이돈용 연출의 회고처럼, 육체적 고단함은 함께 꿈을 이뤄간다는 행복감으로 채워졌다. 예상보다 많이 들어간 인허가 비용과 자재비는 여기저기 손을 빌려 메워야 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마침내 그들의 땀과 열정이 담긴 33석 규모의 블랙박스 소극장이 완성됐다.
극장 이름 ‘공간222’는 과거의 지번 ‘222번지’에서 따왔다. 극장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멋들어진 이름 대신, 이곳이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사용하는 사람 모두의 공간임을 상기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소박하지만 깊은 철학이 담긴 이름처럼, ‘공간222’는 화려함 대신 실용성과 따뜻함을 택했다.
특히 초기부터 LED 조명 기기를 설치해 대관 단체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춘 것은 이곳의 중요한 정체성이다. 당시 고가였던 조명 장비는 연극계 선후배와 동료들의 후원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함께하는 이들의 온정이 모여 ‘공간222’는 모두에게 열린, 상생의 공간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공간222’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극단 목수’를 빼놓을 수 없다. 이름 그대로 이들은 연극인이자 동시에 목수다. 연극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시절, 이돈용 연출을 비롯한 마음 맞는 동료들은 튼튼한 신체를 밑천 삼아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서로가 나무 만지는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 ‘목수 클럽’ 하나 만들자”는 농담 섞인 약속이 ‘극단 목수’ 창단의 시발점이 됐다.
“목수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행복과 안전, 편안함을 위해 오차를 줄이려 나무를 깎고 다듬습니다. 공연 역시 무대를 볼 관객을 위해 수없이 반복되는 연습으로 자신을 다듬죠.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더 섬세하고 진중한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게 됩니다.”
이들에게 연극과 목공은 별개의 세계가 아니다. 목수가 집 안팎의 사람들이 행복과 안전, 편안함을 느끼도록 오차를 줄여가며 나무를 깎고 다듬듯, 배우 역시 무대를 바라볼 관객을 위해 수많은 반복 연습 속에서 자신을 다듬어간다. 극장을 직접 지은 경험은 이러한 철학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땀 흘려 공간을 구축하는 과정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연극 작업과 다르지 않았다. 반복되는 경험이 쌓일수록 손끝은 섬세해지고, 작품을 대하는 마음은 더욱 진중해졌다.

다양성을 품고, 미래를 키우는 공간
‘공간222’는 극단 목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곳은 다양한 예술가들이 부담 없이 자신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기를 자처한다. 매년 열리는 ‘모노드라마 페스티벌’은 그 대표적인 예다. 박윤희 대표의 기획으로 시작된 이 축제는 독립예술가들이 적은 부담으로 공연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극장은 무대를 향유할 공간을 제공하고, 참여자들은 마음껏 자신의 예술 세계를 선보이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받는다.
“아무래도 극장에 올리는 작품을 선택할 때 소극장의 공간적 특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고려해야 하고요. 사실 극장이 정체성이 가진다는 것은 다양성을 잃는 것이 될 수도 있죠.”
다만 ‘공간222’는 ‘소설을 보다’라는 타이틀로 매년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달밤’ ‘복덕방’ ‘금따는 콩밭’ 등 청소년 필독 단편 소설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는 이 공연은 미래의 관객이 될 청소년들이 공연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입장료를 3000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당장의 수익보다는 연극계의 미래를 위한 극단 목수의 투자다. 극장의 정체성은 하나의 색깔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를 통해 완성되어 감을 ‘공간222’는 보여 준다.
“즐겁게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관객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지만, 함께 고생하는 배우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멋쩍은 웃음으로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무능함이 여전히 너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공간이 모두에게 작지만 예쁘고 실용적인 공간으로 활용되길 바랍니다.”
“‘공간222’는 모두의 흔적으로 남을 겁니다. 즐거웠던 흔적, 무언가 존재했던. 그리고 여력이 되어서 계속 공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뭉클한 그리고 고민하게 하는 그런 연극을요. 작지만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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