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영어 느는 건 눈에 보이는데, 유독 이건...

윤송미 2025. 9. 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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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공부방의 진짜 의미, 글씨와 맞춤법 너머 아이 보기

[윤송미 기자]

오늘도 늦잠을 잤다. 사흘째 늦잠에 엄마공부방 시간표가 자꾸 밀린다.

"담아, 너 20분이면 충분히 하던데, 한자 어휘랑 영단어는 하고 가는 게 어때?"

학교라면 눈 뜨자마자 세수만 하고 혜성같이 나서는 담이에게, 오늘은 공부를 하고 가자고 했다. 시계를 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흔쾌히 오케이.

잠시 뒤, 살림을 정리하는데 "오케이! 끝! 엄마! 나 학교 간다!"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조심히 잘 다녀와!" 정겹게 인사를 주고받고, 아이들을 모두 보낸 집에서 차 한 잔 내리고 기분 좋게 문제집을 펼쳤다.

심장이 뛴다. '속력/송력, '실력/실려', 시간에 쫒겨 급히, 대충 쓴 흔적이 역력하다. 글씨는 삐뚤빼뚤, 단어는 엉터리. 게다가 마지막 글짓기 문장은 원문을 추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단어 누락, 주술 얽힘, 맞춤법 오류가 심각했다 '소확행'을 떠올리며 들떴던 마음 위로, 내게만 시꺼먼 먹구름이 내려앉은 것 같다.

일기

사실 이런 충격이 처음은 아니다.

4학년이 되고, 담이의 담임 선생님은 매주 금요일 일기 쓰기 숙제를 내주신다. 3월 첫 안내장에는 감정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단어와 일기 쓸 때 주의사항이 있었다. 너무 복잡하지도 않고 너무 추상적이지도 않은,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춘 안내였다. 너무 반가워 일주일에 두 세번 쓰는게 어떻겠냐며 처음엔 내가 더 신이 났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나는 담이의 일기를 볼 때마다 속이 바싹 바싹 타들어갔다.

글씨체도, 맞춤법도 어지러웠는데, 문장 중간 중간 글자 누락도 있었다. '얘가 이렇게 성격이 급한 애였던가.' 수학, 영어에 이어 국어까지, 학습 공백을 확인할 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일기 쓰는 재미를 앗아서는 안 될텐데 어찌할지 막막했다.

몇 단어만 고쳐도 보고, 쓰기 전에 소리내어 말로 먼저 표현해 보라고도 하고, 쓴 것을 큰 소리로 읽어 보라고도 했다. 어느 날은 옳은 단어를 고르는 문제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내가 일기 원문을 추정해 파일로 만들어 프린트해 뽑아도 놓고, 또 하루는 나의 '답 일기'를 써서 보여 주기도 했다.
▲ 담이 일기 4월 13일
ⓒ 윤송미
▲ 담이 일기 4월 5일
ⓒ 윤송미
▲ 담이 일기에 대한 답일기 4월 6일
ⓒ 윤송미
하지만 어떤 방법도 '아이'의 문장을 바르게 쓰게 하려는 나의 의도를 숨길 수 없었다. 결국 아이의 일기 쓰는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 같아 물러서기로 했다. 담이의 느낌 그대로인 일기를, 더는 '문제적'으로 보지 말자. 담이의 문장을 오롯이 느끼며,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로 했다. 다행이 담이도 이내 훨씬 편하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름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오늘 또다시 기억이 났다. 저녁 시간, "담아, 한자 어휘 펼쳐봐. 거기 글자 틀린 게 많더라." 담이는 스윽 보더니 "아!" 하고는 해맑게 고친다.

"'누구야' 하고 부르는 말은, 부르면서 잠깐 숨을 고르잖아. 그래서 쉼표를 써."
" '고마워' 하면 문장이 끝나니까 온점을 찍어야지."
"'내' 것은 '나의' 것의 줄임말이고, '네' 것은 '너의' 것의 줄임 말이야. 소리는 똑같이 들리지만, 의미는 완전히 달라. 그래서 글로 쓸 때는 주의해서 써야 해."

문장 부호의 쓰임을 열심히 설명했다. 담이는 생각의 말과 발화의 차이 등 생활의 소리를 글로 옮길 때, 약속된 부호의 필요성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담이가 써 놓은 글을 보면 작은 따옴표와 큰 따옴표, 쉼표와 온점이 상황에 맞지 않다. 오용이 아닌 일절 누락이다.

"단원 마지막 글짓기 문제를, 계속 '누구야 고마워 네 덕분에 뭘했어' 이렇게만 쓰던데. 다음부턴 한 문장이어도 좋으니까 문장 부호 신경써서 다르게 지어봐."

잔소리가 늘어지는 것 같아 나도 불편했지만, 설명을 해도 고쳐지지 않으니 효능감이 없어 답답하다. 나아지겠지, 넘어가기도 하지만 눈에 밟히는 날이 있다.

오랜만에 형 옆에 앉은 솔이는 Z가 마음처럼 잘 안 쓰이는지 골똘히 끄적였다.

"솔아, z가 어렵지? 이건 위, 아래 두 선이 서로 안 만나게, 나란하게 하는거야."
"자, 이 두 선은 가로 길이가 같아야 해."

그래도 영 어색하다.

"다시, 해보자. Z는 직선이 모인 거야. 부드럽게 구부러지면 숫자 2처럼 보여. 이렇게, 쭉쭉 뻗은 직선으로 그리되, 위, 아래는 서로 나란한거야. 어때?"
▲ Z쓰기 Z에 첨삭지도를 하다.
ⓒ 똥그라미
솔이에게 글자 한획 한획을 가르치다 보니 삐뚤빼뚤 담이 글씨가 가슴에 파고든다. '담이 여덟살 때 이렇게 차근 차근 가르쳐 줬다면.'

수학도 영어도 점점 늘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 반면 글쓰기는 오래 누적된 결핍이 쉽게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담이는 즐겁게 책을 본다. 파뿌리와 흔한남매, 와이 시리즈 한정이지만. 학부모 상담 때 담임 선생님께서, "담이는 교실에 새 책이 들어오면 관심갖고 읽어요. 책 읽는 걸 재미있어 해요"라고 한 말을 또 꺼내 곱씹어 본다.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토닥인다.

엄마 공부방이, 사실은 정말로 엄마의 공부방이었다. 커가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 공부방이다. 오늘도 내 마음을 단단히 키우는,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기쁘고 고된 공부방을 이어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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