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성공한 드라마의 비결 몇 가지
[김성호 평론가]
모두에게 저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를 떠올린 건 한 장면에서였다. '드래곤 핏'이라 불린 오래된 터, 타르게르옌 왕조가 지배하던 시절, 드래곤을 가두어 길렀던 장소다. 갇혀 자란 용은 점점 작아지고 마침내 후대가 고양이만 해져서는 대가 끊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이 전설적 장소에서 웨스테로스 대륙의 운명을 결정지을 회담이 열린다. 세계적 명작으로 불리는 <왕좌의 게임> 7번째 시즌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마지막 화 이야기다.
대륙은 시리즈 내내 이어온 지난한 전쟁 가운데 놓여 있다. 정적을 모두 제거하고 수도 킹스랜딩을 거머쥐었으나 대륙 전체를 놓고 보면 여전히 고립된 왕비 세르세이(레나 헤디 분)가 회담의 한 축을 이룬다. 남편에 이어 연달아 왕위에 오른 두 아들을 모두 잃은 그녀는 스스로 왕좌에 올라 칠왕국의 주인이 되기를 천명한다.
|
|
| ▲ 왕좌의 게임 스틸컷 |
| ⓒ HBO |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두 사람이 한자리에 온 이유가 있다. 칠왕국이 왕좌를 놓고 벌이는 전쟁 외에도 전대미문의 위험 앞에 놓여 있어서다. 시리즈 첫 시즌, 첫 화부터 인상 깊게 내보였던 저기 북방의 드높은 장벽이 무너지고 죽은 자들의 군대가 산 자들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까닭이다. 칠왕국 북쪽 끝을 수호하는 밤의 경비대 대장 출신으로 스타크 가문의 영지를 물려받아 북부의 왕으로 추대된 존 스노우(킷 해링턴 분)가 이를 알리기 위해 두 여성 앞에 섰다.
<왕좌의 게임> 시즌7은 이 장면을 인상 깊게 연출한다. 이 자리에 배석한 이들은 하나하나가 이 드라마의 주역이라 할 만하다. 7년을 이어온 드라마에서 적어도 어느 한 회차, 심지어 한 시즌의 주인공이었던 이들이 드래곤 핏에 자리한다. 세르세이와 그녀의 쌍둥이 동생이자 연인이며 킹스가드인 제이미 라니스터(니콜라이 코스테르발다우 분), 동맹으로 수군을 책임지는 유론 그레이조이(필루 아스베크 분), 세르세이를 지키는 괴수 같은 호위무사 '마운트' 그레고르 클리게인(하프토르 율리어스 비요른손 분) 등이 한 편에 자리한다.
|
|
| ▲ 왕좌의 게임 스틸컷 |
| ⓒ HBO |
이 자리는 세계적 성공작 <왕좌의 게임>이 그 대단한 성취를 거둔 비결 중 한 가지를 선명히 내보인다. 어느 매력적인 한 인물을 넘어 시청자가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수많은 캐릭터를 배치하고 그들이 걸어온 길을 공들여 연출해 왔다는 사실이다. 회담은 서로 다른 깃발 아래 선 그레이조이들, 즉 영주인 유론이 제 조카 테온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으로 출발한다. 유론은 마땅히 영주가 되어야 했을 테온의 누나 아샤 그레이조이(제마 윌런 분)를 납치한 상태로, 둘 사이엔 깊은 원한이 깔려 있다.
존 스노우와 함께 북방에서 죽은 자를 잡아온 산도르 클리게인(로리 맥칸 분)도 마찬가지다. 그는 세르세이를 지키는 제 형 그레고르를 죽이는 게 인생의 목적인 사내다. 그의 얼굴 반쪽이 화상흉터로 얼룩져 있는 것도, 일생에 걸쳐 불을 두려워하는 것도 모두 그레고르가 남긴 몸과 마음의 상처다.
|
|
| ▲ 왕좌의 게임 스틸컷 |
| ⓒ HBO |
이 같은 작은 배역부터 세르세이와 대너리스, 또 존 스노우와 같이 한 세력의 장에 이르기까지, <왕좌의 게임>은 제가 그간 쌓아 올린 가장 빛나는 자산을 한 자리서 확인케 한다. 카메라가 이들의 모습을 그저 한 바퀴 휘 훑어나가기만 해도 시청자는 이들이 걸었던 결코 쉽지 않았던 길과 그 여정으로부터 오늘의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사연을, 그리하여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어느 하나의 이야기도 대충 다뤄지지 않았단 걸, 모두에게 각자의 세상과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이야말로 7시즌을 꾸준히 이어온 세기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성공비결이다. 대서사, 한 인간의 삶을 넘어 역사적 굴곡을 그린 <왕좌의 게임>이 끝끝내 놓치지 않으려 한 것이 그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란 걸 시청자는 깨닫는다.
|
|
| ▲ 왕좌의 게임 포스터 |
| ⓒ HBO |
<왕좌의 게임> 시즌7은 시리즈 가운데 처음으로 원작을 앞질러 간 시즌이기도 하다. 본래 원작을 토대로 차근히 드라마를 만들어 갈 계획이었으나 무려 7년이 지나도록 조지 R. R. 마틴의 집필에 진척이 없었던 때문이다. 매년 한 시즌씩 만들다 시즌7은 좀 더 시간을 두었으나 작품이 나아가지 않는단 현실적 이유로, 드라마는 독자적 이야기를 구축하기로 했다. 작품과 함께 커나간 아역 배우들이 어느덧 성년에 다가서고, 젊었던 이들조차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흔적이 역력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매 시즌 10회차로 완성했던 시리즈를 시즌7은 7회차로, 시즌8은 6회차로 마감한 것도 이러한 영향이다.
원작을 앞질러나간 후반부 시즌이 구성상 조악하다는 비평에도 설득력은 없지 않다. 용두사미란 평가를 받는 <왕좌의 게임>의 몰락의 시작점이 시즌7이라 보는 시각도 틀렸다 할 수 없다. 수많은 캐릭터 사이를 오가며 칠왕국과 웨스테로스 대륙 전체의 이야기를 조망했던 시리즈가 그 본격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이 다소 성급하게 그려졌단 평가도 나온다. 칠왕국을 둘러싼 인간들의 이야기와 저기 북방의 장벽 너머 죽은 자들의 이야기가 현실과 판타지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두 장으로 나뉘어 있다가 어색하게 조응한다는 분석 또한 마땅하다 여긴다.
그럼에도 <왕좌의 게임> 시리즈는 드라마, 나아가 영상 콘텐츠 역사에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던 대서사가 여전히 확고한 수요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했다. 대서사를 만들 때 수많은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고 활용하며 부각할지와 관련한 모범적 해답도 내놓았다. 장애인과 여성, 소수자를 활용하고 묘사하는 방식 또한 이전의 성공한 드라마들에 비추어 한 발 앞서갔다 보아도 좋겠다.
<왕좌의 게임> 시리즈는 HBO, 나아가 미국의 드라마 산업이 세계적 수준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를 확인케 한다. 기존 성공방정식을 답습하고 안주하는 대신 끊임없이 도전하며 영감 있는 이야기를 제작한다는 본질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를 전설적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비결이 아닌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정은 '7·271953' 숫자의 의미? 진짜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 [단독] K팝 세계로 뻗는데... 장애인석 온라인 예매 차단, "인권침해 아니"라는 인권위
- 고개 숙인 혁신당 "성비위 처리 부족"... 조국 책임론엔 선 긋기
- "월말이 무섭다"는 은행원 친구... 50 앞둔 저도 걱정입니다
- '가뭄 고통' 강릉에 물 대려고, 새벽부터 전국에서 모인 소방차 80대
- 한미정상회담 끝난 후, 강훈식 비서실장은 왜 '유튜브'로 갔나
- 양치 하듯 매일 근력 운동 500일 해봤더니
- [단독] 사형당했는데 재심 무죄... 검찰 이례적으로 상고 포기
- 사라진 건진법사 관봉권 띠지 미스터리... 검찰 수사관 "기억 안 나"
- [오마이포토2025] 주병기 후보자의 '상습 체납' 따져묻는 추경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