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기생들의 저항과 소화권번의 탄생

조종안 2025. 9. 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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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군산 '기생조합'과 '권번' 기생들의 활동상④

[조종안 기자]

 소화권번과 명월관 등재된 군산부 조감도(1934)
ⓒ 조종안
일제가 제작한 군산부 조감도(<群山大觀>:1934)이다. 군산 발전의 꿈과 희망을 담은 그림지도로 원본에는 부청(府廳), 관공서, 금융기관, 대형 정미소, 양조장 등을 비롯해 일본인 거리(본정, 전주통, 대화정, 명치정, 천대전정 등)가 표기되어 있으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소화권번과 명월관이 자리한 동영정(현 신영동) 지역만 트리밍하였다.

금강 하구에 떠다니는 무역선과 철교(충남 장항-전북 군산)가 그려져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당시 철교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금강 하구 철교는 1930년대 초 군산 지역 일본인 상공업자들이 총독부에 건의하면서 시작됐고, 몇 년 후 설계까지 마쳤으나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공사는커녕 논의조차 중단되고 만다.

동어시장(東魚市場), 수산시험장(水産試驗場), 제빙소(製氷所) 등이 자리한 지역이 동빈정(東濱町)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 죽성포(竹城浦)였으나 1920년대 일제가 효율적인 식민통치를 위해 근대식 어항(째보선창)으로 조성하였다. 명월관 옆으로 쌀을 가득 실은 기차(내항선)가 오갔고, 그 중간에 금강 지류인 샛강(세느강)이 흘렀다. 샛강 주변에 장작거리, 객주거리, 싸전거리가 조성돼 있었으며 한마장 거리에 부영시장(현 공설시장)과 군산역이 자리하였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소화권번은 명월관과 함께 표기되어 있는데, 군산권번과 조선인이 운영하는 요릿집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는 일본 연호(昭和)에 나타나듯 '소화권번'은 일제 주도하에 설치됐음을 암시한다. 당시 지도와 조감도에는 일본인 기업이나 상점, 아니면 규모가 큰 공장이나 회사, 일제에 협조한 조선인 업체만 소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군산 기생들의 다양한 사회활동

기미년(1919) 만세운동 이후 무단통치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제는 총독을 문관 출신('사이토 마코토')으로 교체하고 한글 신문과 잡지 발행을 허가하는 등 문화통치를 표방한다. 사이토 총독이 부임하자 경기도 경찰부장 지바(千葉了)는 '경성(서울) 기생 800명, 그들은 모두 살아있는 독립격문'이라고 보고하며 혀를 내둘렀다 한다.

그즈음(1920년대 초) 군산 기생들은 한글 신문('동아', '조선') 창간 축하광고를 싣는가 하면 1천 호 발행 때와 정간당했다가 복간됐을 때도 광고와 재능기부(무대 출연)를 통해 일제에 저항했다. 또한, 그들은 조선인 야학 및 기성회, 체육회, 청년회 등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과 교류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등 가난과 배움에 굶주린 형제들을 지원하였다.
 적성 야학에 동정금 전달한 보성권번과 군산권번 기생들 기사(1927년 5월 2일 자 ‘동아일보’)
ⓒ 동아일보
군산 기생들의 사회활동은 전통문화예술 계승, 발전을 위한 각종 공연개최, 후원, 성금 전달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중 토산품 애용 및 단연(금연)을 위한 거리시위 주도(1923년 3월), 발행정지된 한글신문 독자 위안 연주회(1925년 9월), 국내 화류계에 혁신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군산권번 기생들의 군산노동연맹 가입(1926년 1월)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군산소화권번, 일제에 의해 탄생

1920년대 들어 일제는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새로운 친일파 양성 및 전통문화 말살 정책을 본격화한다. 독립운동 전력 있는 조선인을 회유, 밀정으로 만드는 등 일제의 음흉한 공작은 기생 사회까지 손을 뻗친다. 권번을 직접 만들거나 친일권번 설립을 종용했던 것. 이후 친일파가 운영하는 권번은 각지에서 모여든 동기들이 일본어와 일본 가무를 배우면서 틀이 잡혀갔다.

<매일신보>는 1928년 11월 7일 치 기사(제목:<군산 양 권번 폐합, 소화권번을 신설>)에서 보성권번과 군산권번을 통폐합하고 소화권번으로 개정, 새로운 간판으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소화권번 설립 알리는 1928년 11월 7일 자 ‘매일신보’ 기사
ⓒ 군산해어화100년
"(줄임) 전북 군산 소재(全北 群山 所在)의 보성(普成), 군산(群山) 양 기생권번문제(兩 妓生券番問題)는 거월 26일(去月 二十六日)에 양 권번 기생 30여명 등(兩券番 妓生 三十餘名 等)이 집합(集合)하야 원만 협의(圓滿 協議)한 결과 차제(結果 此際)에 양 권번(兩券番)을 폐합(廢合)하야 이를 소화권번(昭和券番)으로 개정(改定)하고 본월 1일(本月 一日)부터 소화권번(昭和券番)의 신간판하(新看板下)에 계속 개업중(繼續 開業中)이라더라."

그해 11월 4일 치 <조선일보>는 "경찰 당국(警察 當局)에서는 수회(數回)나 양 권번 관계자(兩券番 關係者)를 소환(召喚)하여 합동(合同)을 권고(勸告)"했다고 전하였다.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알려진다. 신문은 "양(보성, 군산) 권번 기생 30여 명이 모여 원만 협의한 결과 차제에 양 권번을 폐합하야 이를 소화권번으로 개정하고..."라고 했는데, 실제는 경찰 당국이 깊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두 신문 기사에서 '원만 협의'와 '권고'는 말이 좋아 '협의'이고 '권고'이지 일제의 강압, 즉 '회유와 협박'이었음은 '불문가지'다.

일제의 소화권번 설치 동기는 동포애와 민족의식이 강했던 군산 기생들의 활동(1926년 1월 노동연맹 가입, 그해 5월 순종황제 성복제, 각종 공연과 행사 등으로 반향을 일으킴)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화권번 설립(1928) 이후 기생들의 사회활동 위축, 즉 노동운동(계몽운동)을 비롯해 국내외 동포 의연금 연주회, 무산아동 돕기 음악회, 조선인 야학 및 기성회 연극 공연 등을 후원하거나 개최했다는 소식을 접하기 어려운 것 등이 이를 방증한다.

군산소화권번, 광복 후 '군산예기권번'으로 개칭
 1939년 동아일보 신년 광고에 소개된 군산소화권번 기생들.
ⓒ 군산해어화100년
소화권번의 특징은 임원(권번장, 취체, 총무 등) 모두가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고, 1931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931년 1월 16일 자 <매일신보>는 소화권번은 여자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임시총회에서 선출된 임원진은 취체(取締·감독) 윤기순 여사, 부취체(副取締) 박재효 여사, 평의장 천▢산, 평의원 김설향, 김옥화, ▢금옥, 이란향, 김산호주, 이매화, 간사(幹事) ▢일몽, 노영주, 김일란, 재무(財務) 김소향, 김소연 등을 소개하였다.

1930년대 군산은 매년 불경기였음에도 소화권번은 호황을 누렸다. 1932년 그해 기생 23명이 올린 놀음차(화대)는 2만 원에 달하였다. 기생들은 소화권번이 주식회사 체제로 바뀔 때 주주로 참여하는 등 조직적인 자치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일제가 효율적인 식민통치를 위해 들여온 권번 제도는 1942년 폐지된다. 이어 일제는 기생들의 요릿집 가무(歌舞) 연행을 불허하고, 접대만 하도록 조치한다. '접대부'란 호칭도 이때 생겨난 것으로 전해진다.

소화권번은 전쟁이 극으로 치닫는 시기(1943~1945)에도 졸업 앞둔 동기들 작품(歌·舞·樂) 발표회를 군산극장에서 개최하는 등 별 어려움 없이 운영되다가 광복을 맞는다. 이후 군산소화권번은 '군산예기권번'으로 개칭된다.

군산예기권번은 혼탁했던 미군정기에도 전국여류명창 대회에 참가하고, 신문에 홍보도 하는 등 정상으로 유지되다가 한국전쟁(1950~1953) 거치면서 막을 내린다. 기생들이 자가용처럼 이용했던 인력거도 그즈음 사라진다. 그래도 극장공연은 1960년대까지 이어졌으며, 무대에 오른 기생들은 <이준열사가>, <안중근열사가>, <유관순열사가> 등을 열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덧붙이는 글 | - 필자는 2018년 <군산해어화 100년>(E-book)을 군산문화원을 통해 출간하였고,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황미연 논문 <전라북도 권번의 운영과 기생의 활동을 통한 식민지 근대성 연구>(2010), 조종안의 <군산 해어화 100년>(2018) 신현규의 <기생 이야기 일제시대의 대중스타>(2007), 옛날신문(1920~1940년대), 장금도 명인 생전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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