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미국, 베트남의 영향을 받은 캄보디아 헌법
[여경수 기자]
2025년 8월 28일 저녁, 캄보디아-베트남 우호탑을 찾았다. 이 기념탑은 크메르 루주 정권의 종식과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물이지만, 동시에 해방과 종속이라는 복잡한 관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1978년 12월 베트남의 침공으로 크메르 루주 정권이 붕괴된다. 캄보디아는 1979년 1월 7일을 기념하여 이날을 승리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베트남군의 프놈펜 입성일이다. 캄보디아는 베트남의 지원 아래 캄푸치아 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Kampuchea)으로 거듭났다.
|
|
| ▲ 캄보디아-베트남 우호탑 |
| ⓒ 여경수 |
동남아시아에서 냉전 논리와 미국의 오판
흥미롭게도 미국은 도미노 이론에 따라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중국의 영향력이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될 것이라 예상했으나,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1979년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 국경 전쟁의 성격을 지닌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미국이 베트남의 오랜 반중 역사와 독자적 민족주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의뢰하여 완성한 <국화와 칼>을 통해 일본을 이해하려 했던 것과 비교하면,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국화와 칼>을 떠올리니 대학 시절이 생각났다. 1995년 문화인류학 수업에서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는 과제가 있었다. 나는 '반일이나 극일 같은 사고가 아니라, 일본 그 자체를 이해하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결석이 잦아 해당 평가 시간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함께 수업을 들었던 친구가 "교수님이 한 보고서를 칭찬했는데, 네 보고서 같더라"고 전해주었다. 그러나 잦은 결석으로 인해 해당 과목은 D+를 받았다. 그때 법학개론도 수강했는데, 그 과목도 마찬가지 점수였다.
그런 내가 지금은 동남아시아 헌법과 문화를 연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당시의 미완성된 학문적 갈증이 오늘날 이 답사의 원동력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때의 아쉬움이 오히려 더 깊은 탐구심으로 승화되었다.
1981년 헌법, 사회주의 체제의 이식
베트남의 영향력 아래 출범한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은 1981년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은 베트남 헌법의 강한 영향을 받았고, 베트남 헌법이 소련 헌법을 모방했기 때문에 결국 캄푸치아는 공산당 일당 체제를 헌법에 명시하게 되었다.
당시 헌법 제1조는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은 독립적이고 주권적인 국가이며, 노동자, 농민, 그 밖의 근로인민을 위한 국가"라고 규정했다. 제3조는 "캄푸치아 혁명인민당이 국가와 사회의 지도 세력"이라고 명시하여 일당 체제를 마련했다.
|
|
| ▲ 캄보디아 현대사 연표 : 소소로 박물관 전시물을 찍은 사진 |
| ⓒ 여경수 |
캄보디아-베트남 우호탑은 크메르 루주 정권의 종식을 기념하는 동시에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알리는 정치적 상징물이었다. 이 시기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으며, 이는 이들 국가와 북한의 유대를 강화하는 작용을 했다.
프놈펜에 있는 북한대사관은 비록 오래된 건물이지만, 독립기념탑을 바라보는 자리에 있다. 심지어 캄보디아 총리 관저와 벽을 두고 바로 이웃하고 있다. 북한대사관 또 다른 옆에는 인도네시아 대사관이 있다.
1955년 반둥회의를 인도네시아에서 주최하면서, 인도네시아가 당시 제3세계 국가들의 대표주자로 부상했다. 당시 시아누크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버마 등 제3세계 국가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한편 1980년대의 캄보디아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전쟁으로 파괴된 캄보디아 경제를 재건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1986년 베트남이 도이모이 정책으로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도 개혁·개방을 추진한 것과 달리, 캄보디아는 여전히 경직된 사회주의 체제에 머물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캄보디아인들 사이에서는 진정한 자결권과 새로운 헌정 질서에 대한 갈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갈망은 1993년 새로운 헌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변화의 동력이 되었다.
※ 다음 편에서는 냉전 종료와 함께 성립된 1993년 헌법과 왕정 복귀의 의미를 살펴볼 예정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충재 칼럼] 이 대통령 속인 오광수
- '자식 팔아 장사' 운운해도 선고유예..."이게 처벌입니까?"
- 김민석에게 사과까지 하고 왜? 전한길과 찍은 이 사진
- 이 모든 게 6천 원? 마구 퍼주던 할머니 식당의 반전
- 혁신당 성비위 의혹에 입 연 조국 "소홀함 없었는지 반성해야"
- "'갑툭튀' 출마 아냐... 제 삶과 이력, 평당원 최고위원 부합"
- 양배추 없어도 괜찮은데... 닭갈비 주문 퇴짜 맞은 사연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김건희 오빠가 빼돌린 이우환 그림, '총선 출마' 검사가 사줬다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이제 남은 건 선수뿐
- 북한 "북중 정상, 고위급 왕래 및 전략적 의사소통 강화 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