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게 6천 원? 마구 퍼주던 할머니 식당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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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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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년간 전체 소비자 물가가 10%대 상승하는 동안 먹거리 물가는 20% 넘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식 품목 대부분이 급등하며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점심값 상승)이 심화됐다. 지난 6월 15일 서울 중구 명동 한 음식점에 안내판이 놓여 있다 |
| ⓒ 연합뉴스 |
놀라운 것은, 2017년 무렵의 점심값 평균이 6000원이었다는 사실이다. 불과 8년 전인데 말이다. 이 갑작스러운 상승이 정말 우리를 힘들게 한다. 아니 언제 이게 이만큼 올랐지? 저 집 국밥 예전에 7000원 하지 않았나? 무섭다. 이게 서서히 오른 게 아니라 체감상으로는 한 2, 3년 사이에 밥값이 두 배로 뛴 듯한 느낌이다. 아 정말 적응 안 되네. 어떻게 먹고 살라고. 그동안 월급이 그만큼 오르지 않은 건 물론이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이라도 저렴한 식당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무조건 찾아가게 된다. 밥값 안 오른 집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주머니 가벼운 직장인들에게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밥집들이 군데군데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싸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맛이 없는 집도 있고 비위생적인 곳도 있다. 그런 만큼 진짜 먹을 만한 푸짐한 음식을 1만 원 미만으로 내어주는 고마운 식당들을 발견하면 정말 대박 맞은 느낌이다. 이 힘든 때를 같이 싸우고 있구나. 동지를 만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집들이 있기에 우리는 힘들지만 꿋꿋이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또 때가 되면 밥도 먹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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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외빌딩 음식백화점의 푸짐한 메뉴들. 2년 전까지는 6천원이었다. |
| ⓒ 여운규 |
홀에 입장한 손님은 입주해 있는 다섯, 여섯 군데 식당을 한바퀴 돌면서 메뉴를 살펴본다. 먹고 싶은 음식이 정해지면 해당 점포에 직접 가서 주문 및 결제를 하고, 마실 물을 받아서 빈 테이블을 찾아 앉는다. 조리가 끝나면 가게 사장님이 쟁반을 받쳐 들고 나오셔서 손수 음식을 갖다주신다. 이 때 손님이 어느 테이블에 앉아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김치찌개 시키신 분! 돈까스 어디예요?" 하고 소리쳐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잘 보고 있다가 저게 내가 주문한 음식이다 싶으면 바로 신호를 드리는 게 좋다. 다 먹고 나면 반납은 또 손님 몫이다.
2년 전 처음 여기를 방문했을 때 나는 무척 놀랐다. 여러 점포 중 하나인 '남도미가'에서 돈가스 세트를 시켰는데, 일단 6000원이라는 가격이 놀라웠고, 그 가격에 나오는 메뉴의 구성이 돈가스, 비빔밥, 순두부찌개를 합친 형태라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설마 이게 다 나올까 했는데 정말로 그랬다. 돈가스 접시 옆 큰 양푼에는 나물이 가득 들어있었고, 흔히 보는 우동 국물이나 된장국 대신 제법 푸짐한 순두부찌개가 곁들여진 한 상 차림이었다. 돈가스 전문점에서 보는 퀄리티는 아니었지만 이런 압도적인 가성비는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다 먹고 나니 배가 너무 불러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6000원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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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라네 백반의 한상차림. 6000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푸짐한 한끼였다. |
| ⓒ 여운규 |
그러니 음식백화점으로 들어가면 나는 항상 유라네를 먼저 들렀다.
"할머니, 오늘은 뭐가 좋아요?"
"오늘? 동태찌개 맛있게 해놨어. 그거 해드릴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6000원을 내면 동태찌개와 함께 또 부러지게 한 상이 차려져 나오는, 마법 같은 집이었다.
음식백화점, 지금은?
모든 것은 변하고, 아무리 좋은 것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다. 미친 물가는 매일매일 성실하게 올랐다. 압도적인 가성비를 자랑하던 이곳 음식백화점의 가게들도 하나둘 가격 인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24년에 접어들면서 6000원짜리 메뉴들이 하나둘 7000원으로 인상되기 시작했다. 덮밥도 칼국수도 오르더니 결국 유라네 백반도 7000원이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7000원이라 하더라도 아무 불만이 없었다. 여전히 다른 가게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점심시간, 오늘도 백반이나 먹을까 하고 들어갔더니 유라네 식당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나의 최애 백반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거다. 할머니 오늘 안 나오셨네. 어디 편찮으신가? 하고 안을 둘러보는데 집기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영영 장사를 접으신 것 같았다. 쟁반이 넘치도록 차려주시던 그 푸짐한 한 상을 이제 더 이상 볼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얼마 뒤 그 자리엔 다른 가게가 들어섰다.
그 뒤로는 내 발길이 좀 뜸해졌다. 여전히 가성비 최강의 식당임은 분명했지만 그만큼 유라네의 존재감이 컸던 탓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찾아가 본 음식백화점에는 한식 뷔페 코너가 새로 생겼고, 다른 가게들의 음식값은 대부분 8000원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처음 여기를 왔을 때 먹었던 돈가스 세트를 시켜 보았는데, 순두부찌개 국물은 그대로였지만 비빔밥은 세트에서 빠져 있었다. 큼직한 양푼이 안 보이니 조금 휑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칼국수 쟁반에는 계란 후라이가 두 개씩 올라가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보니 조금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모두들 힘든 과정을 겪어나가고 있다. 학생들도 직장인도 자영업자도 저마다의 짐을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는 중이다. 삶은 갈수록 팍팍한데 날씨마저 너무 덥고 습하다.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찾아오더니 처서가 지나도 식을 줄 모르는 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이럴수록 잘 먹어야 힘이 날 텐데, 이제는 마음 편하게 백반 한 그릇 먹기도 힘들어진 것 같아서 또 슬프다. 하지만 빌딩 숲 한구석에는 아직도 고마운 밥집들이 여전히 남아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비록 힘든 상황이 누구라도 비껴가지는 않아서 한 해 한 해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감사한 집들이다. 요즘 같은 때에 8000원으로 한 끼 때우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푸짐하게 잘 먹고 힘을 내어 볼 일이다. 버티다 보면 폭염도 물러가고 이제 곧 가을을 맞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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