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이방자 오페라' 막 오른다…주인공은 재일 소프라노

" “해협을 넘나드는 가희(歌姬)” " 재일교포 출신 세계적 소프라노 전월선(田月仙)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그가 기획·제작한 오페라 ‘더 라스트 퀸 –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비’가 한국에서 막을 올린다. 공연은 오는 11월 19일~20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서 열린다.
더 라스트 퀸은 일본 황족 출신으로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비가 된 이방자 여사(일본명 마사코, 1901~1989)의 일생을 다뤘다. 이 여사는 일제에 의해 고종의 막내아들 영친왕(본명 이은)과 정략결혼했다. 비록 정략결혼이었지만 둘 사이 오간 사랑과 아픔을 모노 오페라로 풀어냈다.

전월선은 10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대본을 썼다. 이 여사의 조카와 수행비서 등을 만났고,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자료들을 발굴해냈다. 일본에선 이미 2015년 초연해 호평받았고, 이후 재연을 거듭해 1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지난 3월에는 시가현 비와코홀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극 중 영친왕은 일본이 전쟁에 패배하자 신분도, 국적도 없이 붕 뜬 상태가 된다. 이 여사는 영친왕을 한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며 “싸우겠다” 결심한다. 전월선 자신도 일본에서 프리마돈나로 거듭나기까지 수많은 차별을 이기고 스스로를 증명해내야 했다. 그가 이 여사를 직접 연기하는 이유다.

Q : 왜 이방자 여사였나
A : 30년 전에 처음 한국에 왔다. 관광객으로 경복궁, 창덕궁을 둘러보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 여사도 알게 됐다. 황족 출신인 이 여사와 영친왕은 자신의 진짜 마음을 보일 수 없었다. 오직 이 여사의 일기로만 전해질 뿐이다. 그런데 오페라는 내 감정과 정신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을 꺼내 전달해보고 싶었다.
Q :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A : 일본에선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 처음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일본 어르신들은 마사코를 비극의 여왕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여사는 영친왕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국경을 넘은 인물이다. 이를 알게 된 관객들이 근현대사를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했다. 오랜 역사의 조선 왕조가 왜 멸망했는지, 한국의 왕이 될 사람이 왜 일본에 왔을까를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된 거다. 일본 작가가 공연을 보고 이 여사를 다룬 소설을 내는 등 다른 장르로도 확산됐다.
Q : 재일교포 출신, 어쩌다 오페라에 빠졌나
A : 아버지는 15살 때 학도병으로 일본에 끌려왔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 아버지가 아리랑 같은 한국 노래를 가르쳐줬다. 부모님은 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동포들을 위한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예술인을 꿈꾸게 됐다. 오페라를 접한 건 음악대학에 진학한 이후다. 마이크도 없이 내 몸 하나로 승부할 수 있는 오페라에 매력을 느꼈다.
Q :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는게 쉽지 않았을 텐데
A : 그때만 해도 예술계에선 일본 이름으로 활동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기 때문에 본명으로 활동하고자 했다. 일본 국립음대 입학원서에 한문으로 내 이름을 적었는데, 학교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큰 충격이었지만, 주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 이름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페라를 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순수 음악이기 때문에 실력만 있다면 될 거라는 신념이 있었다.

Q : 프리마돈나가 된 후 한국을 찾았다.
A : 1994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카르멘’을 공연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선 재일교포의 존재조차 잘 몰랐다. 4년 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일본 대중음악을 개방한다고 해서 다시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전후 처음으로 일본어로 노래할 기회였다. 그런데 동요나 가곡은 괜찮았는데, 내가 골랐던 곡 하나가 허가가 안 됐다. ‘요아케노 우타(夜明けの唄·새벽의 노래)’라는 곡인데, 한일 양국이 밝은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결국 가사 없이 ‘아~’하고 노래해야 했다.
Q : 한국과 일본, 그리고 북한에서 노래한 사연은
(※전월선은 1985년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 2002년 한일월드컵 폐막식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주최한 김대중 대통령 환영 만찬에서 노래했다.)
A :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 생일을 맞아 열리는 국제음악제에 초청받았다. 나에겐 어릴 때 북송선을 탄 오빠들이 있었다. 일본에선 먹고 살기 힘드니까, 오빠를 평양의 미술대학에 보내준다는 말을 믿고 보냈다. 오빠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수감됐고, 어머니는 한평생 후회했다. 고민이 많았지만, 오빠를 만난다는 기대를 품고 북한에 갔다. 이후 2002년 월드컵 때 고이즈미 총리 관저에서 한국 노래와 일본 노래를 불렀다. 한국 대통령, 일본 총리 그리고 북한 주석 앞에서 독창한 유일한 가수가 됐다.
Q : 한국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 한국과 일본 관계가 많이 좋아졌지만 갈등이 반복되는 것이 마음 아프다. 역사를 알지 않으면 결국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또 재일교포로서 늘 고국을 잊지 않았다는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 전월선은…
「

일본 도쿄 출생. 1983년 일본 대표 오페라단인 니키카이(二期會)에서 데뷔, 40년 넘게 세계 무대에서 프리마돈나로 활약했다. 지난해 한일 문화교류와 친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재일교포 예술인 최초로 훈장 ‘욱일 단광장’을 받았다.
」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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