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 같은 국립공원 짐꾼, '봇카'를 아시나요?

김혜원 2025. 9. 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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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제국립공원 트레킹 2] 오제가하라 습지를 걸으며

[김혜원 기자]

(이전 기사 : 여행 충동 일으키는 꽃, 나뭇길 걷다보면 만납니다에서 이어집니다.)
▲ 물파초 군락지 오제 습원의 물파초
ⓒ 김혜원
우리 걷기 동호회 일행은 지난 5월 30일 오제가하라 습지를 걸었다. 하토마치토우게에서 출발해 야마노하나에서 점심을 먹고 욧피바시를 지나 미하라시를 걸어 산장에 도착했다. 눈길을 어디로 두어도 온통 물파초 꽃만 보였다. 꽃구경이 황홀하기는 하지만 걷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산장에서 몸에 좋은 온천물로 피로를 풀었지만 오제 국립공원 온젠소옥의 다다미방은 너무 추웠다. 바닥에 담요를 깔고 두꺼운 이불을 주었지만 온기라고는 1도 없어서 각자의 체온으로 이불 속을 데워야 했다. 오후 9시에 전체 소등한다고 해서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추워서 말똥말똥한 눈으로 형광등을 쳐다보았으나 시간이 지나도 불이 안 꺼져 우리가 끄고 잤다.

쓰레기통이 없는 오제
▲ 오제 습원 오제 습원의 나뭇길
ⓒ 김혜원
아침에 식사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우리는 각자 식사하는 줄 알고 늦게 일어났는데 알고 보니 모든 투숙객이 같은 시간에 단체 식사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식탁에 놓인 보온병 물 외에 뜨거운 물이 필요하면 구입해야 했다. 텀블러 소·대 사이즈 따라 가격이 달랐다.

오제 습원은 일본의 자연 보호 운동 발상지이기도 하다. 1903년에 일본 정부가 오제에 수력발전을 위한 댐 건설을 발표하자 당시 일본 자연 보호 운동의 대부인 하라노 조조의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의 사후에는 아들이 댐 반대 운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마침내 1950년대 댐 건설은 무산되었다. 이후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자연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댐 건설 반대 운동은 쓰레기 되가져 가기 운동 등 자연 보호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그래서 오제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또 오제의 자연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나뭇길(목도)가 설치되었다. 습원의 땅이 훼손되는 것을 줄이고 식생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뭇길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습원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날 일정은 다른 루트를 통해 숙소인 롯지 마추우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조릿대가 자라는 사이로 나뭇길을 걷고 개울가의 다리를 건너며 마치 지금까지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우리가 걸어가는 것처럼 걸었다. 어느새 습지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여린 듯 올망졸망한 물파초 군락이 시작되었다. 전날부터 계속 보는데도 볼 때마다 아름다웠다. 이 꽃들도 사람처럼 같은 생김새인데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똑같은 모습은 하나도 없다.

화장실을 가느라 잠시 멈춘 도덴소옥 처마 밑에는 제비들이 총총히 집을 지어 놓았다. 그 제비들이 우리에게 기똥찬 인사를 했다. 제비 똥을 맞고 당황한 친구에게 이건 재수 좋은 거라고 앞으로 부자 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오제 하천의 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설산의 눈이 녹아 개울을 이루고 하천을 이룬다. 우리가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다리를 지나가는 이유다. 이곳 산장에서는 이 물을 그대로 식수로 사용한다. 습원의 물이 너무 많아 나뭇길이 잠기기도 해서 땅에서 높은 교량형 나뭇길로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교량형 나뭇길을 걷다 보면 그 아래에 수줍은 물파초가 피어있고 노란 동이 나물꽃이 해맑게 웃고 있다. 사랑이 찾아와 내 인생의 꽃길이 되어준 것처럼...
▲ 봇카 오제 습원의 봇카
ⓒ 김혜원
영롱한 물파초에 뒤질세라 동행들은 "장미 꽃다발"을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옷 색깔 따라 붉은 장미, 흰 장미, 푸른장미가 되었다. 오늘은 짐을 잔뜩 지고 가는 봇카를 만났는데 그들의 표정은 마치 수행자 같다. 저 멀리서도 우리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면 봇카들도 그 힘든 와중에도 우리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오늘 점심은 도시락 대신에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사 먹기로 했다. 야마노하나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점을 찾는 방법, 코를 흠흠 거리며 맛있는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다. 일본 음식 이름을 읽을 수가 없어 파파고로 번역해 음식 이름을 알아낸 다음 자판기에 원하는 음식을 누르니 티켓 2장이 나왔다. 한 장을 주방에 주고 음식을 찾을 때 나머지 한 장을 주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돈가스와 버섯밥을 시켰다. 맛있게 먹고 나니 밖에서는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천둥 번개까지 치면서. 식당에서의 점심이 신의 한 수였다.
▲ 점심 야마노하나의 점심 식사
ⓒ 김혜원
물파초의 꽃말

비가 조금 잦아들자 우리는 방문자 센터를 방문하였다. 천상의 화원답게 여러 야생화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비옷을 입고 미끄러운 나뭇길을 걸었다. 수량이 풍부해진 작은 하천을 건너 물에 흠뻑 젖은 나무들과 산들을 바라보며 어제 출발했던 오제의 입구에 도착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따뜻한 온천탕에서 피로를 풀며 산장의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오제 습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멀리 정상에 눈을 이고 있었던 시부츠산과 하우치다케 산의 모습, 나무들이 브로콜리처럼 생긴 산의 모습과 산 아래에 펼쳐진 나목의 자작나무 숲, 습지 따라 점점이 또는 군락처럼 모여 지천으로 피어있던 물파초, 세상과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빛바랜 두 줄의 나뭇길, 그 길을 걸었을 뿐인데 세상 살이에 알게 모르게 찌들었던 나의 영혼이 해독된 기분이었다.

물파초의 꽃말은 '아름다운 추억'이다.
▲ 나뭇길 오제의 두 줄 나뭇길
ⓒ 김혜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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