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이루어진 이행기 정의

여경수 2025. 9. 4. 08:5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문서센터와 캄보디아 특별재판소를 방문하며 든 생각

[여경수 기자]

지난 8월 28일,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캄보디아 문서센터(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를 찾았다. 이곳은 1995년부터 킬링필드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민간기구이다. 프놈펜에는 킬링필드와 관련하여 집단 학살 장소였던 투올슬렝 대학살 박물관(S-21 교도소)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쳉엑 킬링필드(Choeung Ek Killing Fields)가 유명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관광객들이나 외국인들이 이곳들을 많이 방문한다. 나는 기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들을 방문했다.
 캄보디아 문서센터 외관 : 킬링필드 자료 수집과 보존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 여경수
캄보디아 문서센터 바로 옆에는 왕후 도서관(The Queen Mother Library)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킬링필드 관련 자료를 전시하며 기억의 보존과 전승에 기여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되어 있으며, 2층 건물로 근대적인 캄보디아 가옥의 분위기도 살펴볼 수 있다.

내가 왕후 도서관에서 캄보디아 관련 책자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으니, 왕후 도서관의 관리 책임자로 보이는 분이 다가와 내 국적을 물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나라도 '이행기 정의(쉽게 말해 진상규명)'와 관련된 국가범죄가 발생한 적이 있으며, 지금도 이행기 정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킬링필드'는 주로 1984년작 동명의 영화로 널리 알려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단체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반공 영화로 소개되었지만, 훗날 다시 본 이 영화는 오히려 론 놀 정권의 무능과 그 배후에 있는 미국 외교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는 반전 영화에 가까웠다.

냉전과 체제 전환

냉전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 캄보디아는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1970년 3월,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 놀의 쿠데타로 시아누크 세력이 축출되고, 캄보디아에서는 최초로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는 캄보디아 헌정사상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첫 체제 전환이었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곧 내전에 빠졌고,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한 이후인 1975년 4월 17일,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가 프놈펜을 완전히 점령했다.
 킬링필드 시기를 찍은 사진들 : 캄보디아특별재판소 전시실에서 찍은 사진
ⓒ 여경수
크메르 루주는 급진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하여 도시 주민을 강제로 농촌으로 이주시켰다. 종교, 화폐, 학교와 같은 문명 자체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170만~250만 명의 국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가 바로 '킬링필드'다.

킬링필드라는 참혹한 경험은 캄보디아 헌정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1947년 입헌군주제로 시작된 근대 헌정 질서는 1970년 공화국으로 바뀌었고, 1975년 크메르 루주 집권 이후 1976년 1월 '캄보디아 민주헌법'이 제정되어 국명을 '민주 캄푸치아'로 개칭했지만, 실제로는 헌정 질서 자체가 붕괴되었다.

1978년 12월 베트남의 침공으로 크메르 루주 정권이 붕괴된 이후에도 책임자 처벌이나 진실 규명은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다. 냉전 구조 속에서 크메르 루주가 국제연합에서 캄보디아 대표권을 유지하는 기형적 상황이 1990년대 초까지 지속되었다.

이행기 정의의 실현

1991년 파리 평화협정이 체결되며 유엔과도기구가 만들어졌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바탕으로 캄보디아는 점차 이행기 정의를 위한 절차를 밟아나갔다. 그 결과로 캄보디아 특별재판소(Extraordinary Chambers in the Courts of Cambodia, ECCC)가 설립되었다.

2001년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2005년 설립된 캄보디아 특별재판소는 국내법상 법원이지만, 국제 재판관과 검사가 참여하는 혼합재판소의 성격을 갖는다. 이는 캄보디아 사법제도의 한계를 인정하고 국제 인권 기준을 수용한 절충의 결과였다.
 캄보디아특별재판소 외관 : 이행기 정의의 기록과 교육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 여경수
나는 캄보디아 특별재판소를 방문했다. 캄보디아 특별재판소는 2010년 카잉 게크 이우(두크)에 대한 첫 판결을 시작으로, 2014년 누온 체아와 키우 삼판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는 등 주요 크메르 루주 지도부에 대한 재판을 진행했다. 현재 캄보디아 특별재판소의 재판은 모두 종료되었으며, 기록 보존, 증인 보호, 자료 정리, 시민 교육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2층에는 특별재판소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도서관 안내 장소에서 관련 정보를 요청하면 해설을 받을 수 있다. 해설사는 나에게 캄보디아 특별재판소가 이룩한 성과를 설명하며, 앞으로도 캄보디아 학생들이 과거를 거울삼아 평화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연히 내가 방문한 날에는 특별재판소에서 특강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간단히 점심을 먹고 13시에 시작한 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국제인권법상 환경권 보장이었다. 강연자는 이곳에서 인턴으로 재직하는 청년이었으며, 강의 내용과 영어 발음이 유창했다. 이곳에서는 이행기 정의뿐 아니라 국제인권법과 같은 보편적인 인권 보장에 관한 자료도 전시되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행기 정의의 실천은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을 준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남영동에 있는 민주인권기념관 등 이행기 정의를 상징하는 장소들이 있지만, 국가범죄의 가해자를 정확히 기록한 공간은 거의 없다.

※ 다음 편에서는 베트남의 개입 아래 성립된 1981년 사회주의 헌법과 캄보디아-베트남 우호탑을 통해 외세 개입과 주권의 문제를 살펴볼 예정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