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어비스는 어쩌다 ‘양치기 소년’이 됐나
‘양치기 소년의 말로는 어땠나’ ‘진정성 결여’ ‘기다림과 실망의 반복’.
게임사 펄어비스가 신작 ‘붉은사막’의 서비스 연기를 발표한 뒤 증권가에서 쏟아진 보고서 제목이다. 4년이나 공개가 연기됐던 게임 붉은사막 서비스 시작이 또 지연되자, 증권사들은 “펄어비스를 더 이상 신뢰하기 힘들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일부 증권사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사실상 매도 의견인 ‘중립’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게임 업계와 시장에서는 “2026년 1분기에도 신작을 내놓지 못한다면 사실상 시장 신뢰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신작 계속된 지연에 실적은 적자
붉은사막은 펄어비스가 차세대 먹거리로 개발 중인 신작이다. 2019년 처음 개발 소식이 외부로 알려졌다. 당시 펄어비스 측은 2021년 공개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높은 품질로 호평받은 ‘검은사막’ 개발사 펄어비스가 신작을 만든다는 소식에 게임 이용자들은 환호했다. 2020년 12월 10일, 붉은사막 예고 영상이 공개된 직후 시장은 더욱 열광했다. 예상보다 게임 품질이 훨씬 높았던 덕분이다. 신작 기대감에 2020년 12월 한 달 동안 주가가 30% 넘게 올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21년에 나온다는 약속과 달리 붉은사막 공개일은 계속 밀렸다. 펄어비스는 2022년, 2023년 해가 바뀔 때마다 ‘하반기에 신작을 선보일 것’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2024년 상반기에 꼭 내놓겠다고 했지만, 다시 하반기로 밀렸고 급기야 2025년 연말로 또 바뀌었다.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올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펄어비스는 붉은사막 공개일이 2026년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이제 시장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른 상황. 4년에 걸쳐 6차례나 미룬 펄어비스를 향한 증권사와 투자자의 신뢰도는 바닥을 쳤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게임 개발사 특성상 일정 지연은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펄어비스는 지연 빈도가 지나치게 잦은 편이다. 회사는 2026년 1분기를 언급했는데,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각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앞다투어 펄어비스를 성토하는 보고서를 냈다. ‘양치기 소년’ ‘진정성 결여’ ‘실망의 반복’과 같은 강한 표현을 제목에 담으며 실망감을 강하게 표출했다. NH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일부 증권사는 투자 ‘중립’ 의견을 냈다. 매도 의견을 잘 내지 않는 국내 증권가 특성상, 중립 의견은 사실상 매도와 똑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매수 의견을 낸 증권사들도 목표주가를 30% 가까이 내리며 ‘투자에 신중하라’는 뜻을 전했다.
실적도 시장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올해 2분기 펄어비스는 매출 796억원, 영업손실 11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예상치를 밑돌았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7% 줄었고, 영업이익은 광고선전비 증가 영향으로 101.9% 감소하며 적자로 전환됐다.
기대작의 연기, 실적 부진이란 이중고에 펄어비스 주가는 속수무책으로 떨어졌다. 실적 발표가 열린 8월 13일 펄어비스 주가는 전일 대비 25% 급락했다. 이후에도 주가는 전혀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8월 초 3만9000~4만원을 오가던 주가가 8월 중반 이후로는 3만1000원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펄어비스는 왜, 매번 늦어지나
신작 개발 지연은 펄어비스의 대표적인 고질병으로 꼽힌다. 지연된 게임이 붉은사막만 있는 게 아니다. 2021년 세계 최대 게임쇼 중 하나인 게임스컴에서 호평받은 기대작 ‘도깨비’도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2027년 3분기 출시 예정이란 정보 외에는 아예 소식조차 없다.
펄어비스의 신작 지연 패턴은 늘 똑같다. 개발 소식을 알린 후, 게임 미리보기 영상을 공개한다. 예상을 뛰어넘은 게임 퀄리티에 게임 업계와 시장 기대를 끌어모은다. 이에 힘입어 주가는 폭등한다.
주가가 한창 오르고 난 뒤에도 게임 개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계속 연기된다는 발표만 나온다. 이에 실망해 주가는 하락하다, 이후 개발 관련 발표가 나오면 다시 상승한다. 지난 4년간 이 패턴이 계속 반복됐다. 처음에는 ‘품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나 보다’며 이해하던 게임 이용자나 투자자도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를 불신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왜 유독 펄어비스만 유독 게임 개발 지연이 잦은 걸까. 업계는 펄어비스 특유의 게임 개발 구조가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게임 개발에 유니티나 언리얼엔진 등 외부 개발용 프로그램을 쓰는 다른 게임사와 달리 펄어비스는 자체적으로 만든 게임 개발 엔진을 사용한다. 쉽게 말하면 다른 회사는 한글, 워드와 같은 전문 프로그램으로 문서를 만드는 방식이라면, 펄어비스는 자체적으로 만든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활용해 문서를 작성하는 식이다.
자체 게임 개발 엔진을 사용하면, 외부 프로그램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 개발 비용 절약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 게임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단점이 명확하다. 무엇보다 게임 개발 속도가 느려진다. 유니티, 언리얼엔진 등 업계서 널리 쓰이는 프로그램은 다룰 수 있는 개발자가 많다. 개발자를 채용하면 빠르게 적응하고 개발에 전념이 가능하다. 반면, 자체 엔진은 회사 사람 외에는 익숙한 개발자가 없다. 채용 후 자체 엔진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개발자들의 숙련도가 떨어지는 탓에 타사보다 개발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퍼블리싱(게임유통)을 회사가 직접 담당하는 것도 잦은 지연의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국내 게임사 대다수는 퍼블리싱과 개발을 별도로 맡긴다. 개발에 집중하는 회사는 게임 제작에만 집중하고, 유통사는 플랫폼 입점, 마케팅, 글로벌 유통 판로 확보 등에 전력을 기울인다. 분업이 철저한 덕분에 게임 개발부터 공개까지 기간이 상당히 줄어든다. 반면 펄어비스는 개발부터 유통까지 전부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전문 유통사가 아니다 보니, 게임 공개 일정을 조율하는 노하우가 떨어진다. 이번에 ‘붉은사막’ 공개가 2026년 1분기로 밀린 것도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의 영향이 컸다. 허진영 펄어비스 CEO는 “오프라인 유통과 보이스오버(음성 현지화), 콘솔 인증 등 여러 파트너사와의 협업이 예상보다 시간이 걸림에 따라 기존 공개한 일정보다 부득이하게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게임스컴 공개로 활로 뚫는다지만
2026년 1분기엔 진짜 내놔야
시장에서 부정적 반응이 쏟아지고, 주가가 급락하자 펄어비스는 황급히 대응에 나섰다. 게임 개발 현황을 어느 정도 공개하기로 한 것. 올해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게임스컴에 참가, 현장에 부스를 열고 붉은사막의 새로운 퀘스트라인 데모(체험판 게임)를 선보였다. 당시 붉은사막이 게임스컴 시상식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는 소폭 반등에 성공했다. 다만 시장 신뢰를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다수다. 게임스컴 행사에서도 붉은사막은 큰 반전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수상에도 실패했다. 시장 의구심을 완전히 지워내기 위해서는 2026년 1분기에 정확히 게임을 내놔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김소혜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단 투자 매력을 올리는 걸 떠나서, (투자자들이) 투자를 고민할 수 있도록, 회사의 신뢰감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꼬집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5호 (2025.09.03~09.09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갑질·월급 루팡…혹시 당신도 ‘또라이’?- 매경ECONOMY
- “내년 경찰 합격자 70%는 여성?”…남녀 통합 선발 두고 우려 확산- 매경ECONOMY
- 저축은행 M&A에 ‘다크호스’가 떴다- 매경ECONOMY
- 펄어비스는 어쩌다 ‘양치기 소년’이 됐나- 매경ECONOMY
- 아파트·쇼핑몰·호텔에 쿠팡까지 한곳에- 매경ECONOMY
- [뉴욕증시] 관세 불확실성에 3대 지수 일제히 하락…엔비디아 2%↓- 매경ECONOMY
- 무인 점포, 어디까지 가봤니…리테일에서 서비스 업종까지 [스페셜리포트]- 매경ECONOMY
- 트럼프家, 코인 상장으로 ‘7조원’ 이익…현직 대통령 일가의 위험한 돈벌이- 매경ECONOMY
- 프랑스, 재정위기 심각...총리가 ‘IMF 구제금융’ 거론할 정도- 매경ECONOMY
- TV보다 웹OS…LG전자가 그리는 미래- 매경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