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정보 부존재, 제3자 동의...한솔제지 산재는 비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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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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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7월 20일 경 '한솔제지 산업재해발생현황'에 대한 첫 정보를 청구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 달 반이 넘은 현재까지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습니다. |
| ⓒ 심규상 |
하지만 문제는 한솔제지에서 추락, 끼임 등 유사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2022년에는 대전공장에서 60대 협력업체 직원이 매몰돼 사망했고, 2019년에는 장항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졌습니다. 단순히 작업자의 실수가 아닌, 안전 관리 시스템과 환경 자체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를 확인하고자 저는 7월 23일경 서울에 있는 한솔홀딩스(한솔제지 본사)를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서울지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한솔제지는 2015년 한솔홀딩스로부터 물적 분할된 국내 제지업계 1위 기업으로 대전과 신탄진, 장항, 천안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청구한 정보는 '최근 5년간 한솔홀딩스 산업재해 발생 현황'으로, 구체적으로는 발생 일시, 장소, 피해 인원, 작업 유형, 재해 발생 원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첫 청구일부터 한 달 반이 넘은 현재까지 저는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벽: '비공개'
공공기관은 정보공개 청구를 받으면 10일 이내에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 서울지청은 이 기한을 꽉 채워 회신했지만, '현장 공장이 있는 대전, 보령, 천안 지청에 신청해야 한다'는 안내였습니다. 접수 직후 바로 안내해줬다면 열흘을 허비하지 않았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안내를 받은 즉시 각 관할청으로 같은 내용으로 정보공개를 다시 신청했습니다.
관할 지청들 역시 열흘을 채워 통지했습니다. 하지만 공개된 정보는 없었습니다. 천안지청은 '비공개'를 회신했습니다. '공정한 수사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정보는 비공개할 수 있다'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아래 정보공개법) 조항을 적용한 것입니다.
'대전공장에서 일어난 일이고 천안공장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지 않느냐', '수사 중인 7월 사건은 빼고 나머지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담당자는 "중대재해 사건의 경우 경영주도 수사 대상이라 한솔제지 모든 공장과 이전 사고도 수사 대상에 포함돼 비공개 대상"이라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벽: '정보 부존재'
7월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을 관할하는 대전청과 한솔제지 장항공장을 관할하는 보령지청은 '정보 부존재'를 결정했습니다. 말 그대로 '청구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미 언론에 여러 건의 사고가 알려진 상황에서 이 회신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유를 묻자, "기자가 청구한 내용으로만 정리된 원자료는 없으며, 여러 자료를 모아 '취합·가공'해야 하기 때문에 '부존재' 결정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청구된 정보가 별도의 취합·가공 작업이 필요하고 이로 인해 과도한 시간이나 비용, 인력이 소요될 경우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시간이나 비용'의 기준이 불분명하고 담당자의 주관적 판단에 좌우될 수 있다는 한계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직업상 정보공개 청구를 자주 해오던 기자로서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기자가 청구한 정보가 과도한 취합·가공에 해당되는 '부존재 정보'라면 공공기관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정보가 이에 해당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의신청을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실익이 없어 보였습니다. 결국 '취합·가공 하지 않아도 되는 자료명'이 무엇인지를 '스무고개' 하듯 파악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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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7월 30일 오후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최근 사망사고가 발생한 대전 대덕구 한솔제지 본사와 신탄진공장, 대전공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
| ⓒ 연합뉴스 |
하지만 또다시 뜻하지 않은 걸림돌이 생겼습니다. 며칠 전 관할청에서 '제3자 의견청취 혹은 정보공개심의회 개최가 필요하다'며 기한을 열흘 이상 또 연장한 것입니다. 정보 공개 청구 사실을 한솔제지에 통지하면 한솔제지 측은 통지받은 날부터 3일 이내에 해당 정보에 대한 비공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한솔제지 측이 비공개 요청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이 공개를 결정할 경우, 공개 결정일과 실제 공개 실시일 사이에 최소 30일의 간격을 두어 한솔제지 측의 불복 절차(행정심판, 행정소송)를 준비할 시간도 보장해야 합니다.
'제3자 의견청취'는 관련 법상 제3자(한솔제지)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하지만 영업비밀이나 사생활과 무관한 공익적 목적의 산업재해 정보까지 공개를 지연시키거나 좌절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첫 정보공개 청구로부터 한 달 반 넘게 씨름을 하다보니 '애초 국회의원실 도움을 받을 걸' 하는 후회가 들 정도였습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모든 산재 사망 직보 체계 구축'으로 정부 대응 속도를 높일 것과 경찰청에 수사 전담팀 신설을 통한 산업재해에 대한 수사 역량 강화를 지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대다수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어떤 산업재해가 일어났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한솔제지 공장의 산업재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한 달 반 넘게 정보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의 안전이 정보공개 단계에서부터 행정의 벽 앞에서 무기력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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