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드라마 홍수 속에서 '폭군의 셰프'가 살아남은 이유는?

김건의 2025. 9. 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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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뒤적이기] <폭군의 셰프> 전반부 리뷰

[김건의 기자]

 드라마 '폭군의 셰프' 스틸
ⓒ tvN
tvN 방영 드라마 <폭군의 셰프>가 4회 만에 시청률 11%를 돌파하며 올해 tvN 드라마 중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정년이> 이후 tvN이 겪었던 부진을 단숨에 뛰어넘은 현상이다. 이 흥행의 원인은 과연 우연일까? 타임슬립 드라마는 이제 전형적인 드라마 소재가 되었고 음식과 요리를 매개로 하는 드라마도 익숙하다. 이 두 익숙한 소재 조합이 어떻게 시청자들로 하여금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는 걸까?

영민한 각색, 빈틈을 파고든 차별화

<폭군의 셰프>는 웹소설 원작 <연산군의 셰프로 살아남기>를 각색한 드라마다. 원작은 대체 역사물의 치밀한 설정과 권력 투쟁의 긴장감을 중심축으로 삼았지만 드라마로 각색하면서 이를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로 단순하게 각색했다. 여기서 단순화는 버린 게 아닌 선택이다.

드라마는 원작의 무거운 정치적 갈등보다는 현대인이 과거에서 겪는 문화적 충돌과 음식을 통한 소통에 집중한다. 미슐랭 3스타 셰프 연지영(임윤아)이 조선시대에 떨어져 프랑스 요리 기법으로 왕의 입맛을 사로잡는 과정을 돌아본다. 여기서 서로 다른 시공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유머가 터지고 낯선 음식을 맛보는 조선시대 인물들의 리액션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백미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요리 장면의 화면 구성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현대적 조리 기법을 조선시대 도구로 재현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전개해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도 전달한다. 이러한 각색 방식은 원작 팬들의 배신감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관객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방송가는 심각한 콘텐츠 과포화 상태다. 드라마 수십 개가 동시에 경쟁하는 상황에서 <폭군의 셰프>가 두각을 나타낸 이유는 '예측 가능한 불편함'의 해소다. 최근 몇 년간 한국 드라마는 복잡한 서사 구조와 무거운 주제 의식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였다. 시청자들은 매 에피소드마다 복잡한 인물 관계를 파악하고 숨겨진 복선을 찾아내야 하는 즐거움을 피로감으로 느낀 모양이다. <폭군의 셰프>는 이러한 시청 피로감에 대한 단순한 해답을 제시한다.

드라마의 서사 구조는 단순하다. 현대에서 온 셰프가 과거의 왕을 만나 요리로 소통한다는 기본 설정만 이해하면 누구나 쉽게 따라갈 수 있다. 타임슬립 물의 장르적 허들만 넘어서게 된다면 시청자들은 각 에피소드에서 명확한 목표(요리 대결, 궁중 적응 등)를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갈등에서 충분한 몰입감을 얻어낼 수 있다.

여기에 로맨틱 코미디가 한 스푼 더해진다. 연희군(이채민)과 연지영의 관계 발전은 예측 가능하면서도 매력적이다. 관객들은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도 그 과정을 즐기는 안전한 재미를 느낀다. 불확실성이 높은 현실에서 예측 가능한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심리와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닐까.
 드라마 '폭군의 셰프' 스틸
ⓒ tvN
대체된 캐스팅의 의외의 효과

<폭군의 셰프>는 초기 제작과정에서 잡음이 생겼다. 주연을 맡았던 박성훈이 하차하고 그 자리를 이채민이 대체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작품에 의외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채민의 캐스팅은 연희군이 어머니를 잃은 공허함을 표현하는 데 적합했을 뿐 아니라 모성을 갈구하는 캐릭터의 소년미를 돋보이게끔 했다. 기존 스타의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고 캐릭터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여기서 임윤아와의 호흡은 예상을 넘어선 시너지를 보여준다. 두 배우 모두 캐릭터에 대한 부담 없는 접근이 가능했고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연기로 이어졌다.

<폭군의 셰프>는 시청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다. 복잡하고 무거운 현실을 벗어난 이야기는 달콤한 로맨스와 음식대결이 가득한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한다. 매회 등장하는 요리 장면들은 시각적 만족감을 주고 두 주인공의 티격태격하는 관계는 웃음을 선사한다. 드라마를 보는 60~70분 동안만큼은 복잡한 현실을 잊고 순수한 재미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감정적 보상이야말로 <폭군의 셰프>가 경쟁작들을 제치고 시청률 1위를 차지한 핵심 이유가 아닐까.
 드라마 '폭군의 셰프' 스틸
ⓒ tvN
<폭군의 셰프>의 성공은 복잡함에 지친 시대에 던지는 단순함의 승리다. 이 단순함은 얕은 개념이 아닌 의도적인 전략의 결과물이다. 관객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가장 매력적인 방식으로 포장해낸 제작진의 선택이 빛나는 순간이다.

4화까지의 전개를 돌아보면 <폭군의 셰프>는 예측하기 쉬운 길로 나아가는 것 같지는 않다. 연지영이 대령숙수로 임명되고 연희군과의 취중 입맞춤으로 관계가 급진전되는 가운데, 신비한 고서 '망운록'이 빛을 내며 사라지는 장면은 새로운 전개의 서막을 예고한다. 강목주(강한나)의 견제와 제산대군(최귀화)의 음모, 그리고 연지영을 과거로 불러들인 '망운록'의 정체까지. 로맨스 한 편으로 끝날 리 없는 복잡한 서사 구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4회밖에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이만큼의 성과를 거둔 것을 보면, 앞으로의 전개가 더욱 기대된다. 주말 밤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서 이 드라마를 기대라는 이유가 바로 이런 기대감에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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