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 못 나간 정선 제자, 매미로 이름을 남기다
[박성호 기자]
조선시대 선비들은 매미라는 곤충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일부 문인들은 매미에 대한 생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와 정약용의 <선음삼십절구>가 보여준 매미의 발성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는 놀라웠다. 그러나 조선시대 텍스트 문헌에서는 당시 서식했던 매미 종 등 구체적인 생태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필자는 텍스트 문헌이 아니라 당시에 그려진 그림 분석에 매달렸다(관련 기사 : 정약용 선생이 매미 박사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조선시대 회화 연구와 작품평들을 샅샅이 뒤져 매미가 그려진 18점의 작품을 찾아냈다. 이들은 대부분 16세기 이후의 작품들이었다. 조선시대 화풍이 초중기의 북종화나 남종화에서 후기로 갈수록 진경산수화 등 실경을 중시하게 되므로, 후기 작품들에서 당시 매미의 생태를 추정하는 것이 용이할 거라는 예상이 맞았다.
조선시대 회화의 화풍은 시대에 따라 크게 변화했다. 16세기에 처음 매미 그림이 등장하지만 묘사가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생태 정보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실제 풍경을 중시하는 진경산수화풍이 발달하면서, 화가들은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화풍의 변화는 곧 곤충과 같은 미물의 묘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18세기 심사정의 그림은 현대 생물학 논문을 보는 것처럼 세밀한 묘사를 담고 있어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16세기 초] 신사임당 <초충도병>
조선 중기 신사임당(1504~1551)의 <초충도병>의 '원추리와 개구리'는 8폭 병풍 중 하나로, 원추리 마당을 중심으로 참개구리, 나방, 매미를 배치한 구도다. 매미는 꽃줄기 중앙에 자리 잡았으며, 배면을 묘사해 종 구분은 어렵다. 배면에서 발성과 관련된 덮개(배판)가 보이지 않아 암매미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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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사임당의 <초충도병>의 '원추리와 개구리', 이우도 <수과추충도> 원추리 나무에 앉은 매미의 배면을 묘사한 신사임당과 매미의 세부 특징보다 만화처럼 묘사한 이우의 매미 그림. 원추리와 개구리' ‘원추리와 개구리’, 종이에 채색, 34X28.3㎝, 1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수과초충도> 종이에 종이에 채색, 28.7×20.5cm,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
| ⓒ 국립중앙박물관, 서울대학교박물관 |
[17세기 초] 월봉 김인관의 <유선도>
월봉 김인관(1636~1706)의 <유선도>(17세기 초)는 매미 묘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에서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애매미는 신체 비율, 등판의 무늬, 투명한 날개 맥 구조가 오늘날 애매미와 거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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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관의 <화훼초충화권축> 중 '유선도' 김인관은 버드나무에 앉은 애매미를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종이에 채색, 1150x1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 ⓒ 국립중앙박물관 |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은 매미 그림을 3점 남겼다. <홍료추선>과 <송림한선> 그리고 2022년 '서울 옥션'에서 처음 공개된 홍료추선과 유사한 그림 한 점이 있다. 그림 속 매미는 검은 몸통에 등판에 흰 무늬가 특징적이며, 투명한 날개로 가진 참매미로 추정된다. 추선과 한선 두 작품 속 매미의 모습은 앵글부터 세부 묘사까지 복제한 듯해, 실경보다는 참매미의 일반적 특징을 도출한 후 풍경에 인위적으로 배치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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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의 <홍료추선>, <송림한선>, 그리고 서울옥션 공개작 정선의 그림에서 참매미는 앵글가 묘사가 거의 복제수준으로 동일하다. <홍료추선>, 비단에 채색, 20.8×30.5cm, 간송미술관 소장 / <송림한선>, 비단에 채색, 21.3×29.5㎝, 간송미술관 소장 / 서울옥션 정선 <초충도> 비단에 채색, 21.3?28.4cm |
| ⓒ 간송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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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최고의 매미 화가 심사정의 매미 그림들 심사정 화백은 총 8점의 매미 그림을 남겼으며, 주로 참매미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좌에서 우로, <계화명선>, <현원합벽첩> 2점, <유사명선>, <참외밭의 초충도>, <수금추선도>, <조선매미>, 국립중앙박물관 외 소장 |
| ⓒ 국립중앙박물관 외 |
8점 중 7점은 모두 참매미를 묘사했으며, 등판의 녹색과 흰색 무늬를 세밀하게 표현해 정선보다 훨씬 더 실경적 화풍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유사명선>과 <참외밭의 초충도>에 등장하는 참매미는 버드나무 굵은 줄기에 안정적으로 붙어 있는데, 이는 매미가 수액을 빨기 위해 잔가지보다 굵은 줄기를 선호하는 실제 생태적 습성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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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사정의 매미 그림 속 참매미들 심사정의 참매미는 약간씩 다른 묘사가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세밀한 표현이 특징이다 |
|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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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황의 매미그림 겸재 정선의 손자 정황 선생이 남긴 유일한 매미 작품이지만 참매미의 묘사에서는 단연코 최고의 수작이다. <매미도> 종이에 채석, 21×21cm |
| ⓒ 경재정선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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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후기 조정규의 매미 그림 조정규의 매미 그림은 참매미와 다양한 매미의 특징을 담고 있지만 날개 모양으로 보아 참매미로 추정된다. 종이에 채색, 22.1 x 9.1cm,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
| ⓒ 서울대학교박물관 |
작자 미상이 일반적인 민화는 주로 평민들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선병>은 부채 모음 구도에 활엽수에 앉은 매미를 배치했다. 산란관과 참매미 등판의 특징이 보인다. 평민들의 관찰 또한 참매미를 보편종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어락도>는 버드나무 가지 아래 거대한 잉어와 단순화된 매미를 배치했으나, 버드나무의 등장은 눈여겨 볼 만한다.
조선 회화를 분석한 결과 조선시대 매미의 생태적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조선의 우세종은 바로 참매미였으며 둘째, 그들의 주요 서식지로는 버드나무가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18점의 그림 중 14점에서 참매미가 확인됐다. 이는 조선 후기 한반도에서 참매미가 가장 많아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자주 띄는 종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매미 종별 이름 참매미, 말매미, 애매미 등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근대적 생물학 학회가 생기면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 다른 동식물도 마찬가지지만 한반도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들의 명칭에 '참'이라는 어미가 사용된 것을 감안하면 '참매미'로 명명한 이유는 바로 개체수가 월등히 많아 흔하게 발견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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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도시 매미의 우세종 말매미 열섬현상으로 수풀보다 기온이 높은 도시는 말매미 서식에 적합한 환경으로 추정되며, 말매미는 검은색 몸에 금색 가루가 묻어 있으며, 배판 가장자리로 주황색 띠가 형성되어 있다-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98분, 감독 박성호) 중에서 |
| ⓒ 박성호 |
버드나무는 김인관, 심사정, 정황, 민화에서 주요 서식지로 반복해서 등장하며 다수 문인들의 표현과도 일치한다. 버드나무는 수액이 풍부하고 부드러워 매미가 주둥이를 찔러 넣기에 적합한 수종이다. 조선시대 청계천이나 평양의 수변 등에 흔한 게 버드나무였지만 현대 도심 환경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화가들이 남긴 매미 그림은 문헌이 기록하지 못한 조선 시대 자연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그림들은 조선 후기 한반도에서는 참매미가 우세종이었으며, 주로 버드나무에 서식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또한 오늘날 도심을 점령한 말매미가 조선시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추정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림 속 매미는 때로는 청렴하고 고고한 군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풍요와 장수를 기원하는 길상적 존재이기도 했겠지만 세밀한 묘사들은 수백 년 전 조선 땅에 살았던 생명체의 진실을 증언한다. 예술과 과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과거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며, 옛 그림은 현대와는 다른 조선 시대 매미의 중요한 생태 정보들 드러내면서 흥미로운 연구가 가능함을 시사한다.
<참고문헌>
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2016, 98분, 감독 박성호)
김취정(2021). 군자의 상징, 매미", 월간 민화, (2021년 3월)
박정은(2015). 심사정의_한국화(화훼초충도)_특징_분석
유치석(2012) 「琳田 趙廷奎의 繪畫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송풍수월(2011).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의 작품세계", 네이버 블로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드가의 다큐맨터리 이야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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