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I도 E가 되는, 신기한 '북페어'가 있습니다

김규영 2025. 9. 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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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리에 막 내린 이틀간의 군산북페어... 참여자와 방문자, 모두가 연결됐다

[김규영 기자]

▲ 군산북페어 성황리 종료 8월 31일 오후 6시. 종료 무렵 짐을 꾸리던 참가자들이 너른홀 1층에 모여 참가자 단체 사진을 찍는다. 군산회관은 무대 공간이었기 때문에 드론샷 같은 촬영이 가능하다.
ⓒ 김규영
지난 8월 30일, 군산 북페어 첫날. 개장에 맞춰 도착한 '부지런한 관람객' 100명에게 군산의 영화촬영지를 담은 '군산 영화지도'를 준다고 한다. 동네 거주자의 이점을 살려 일찍 나섰건만. 군산회관은 물론 인근의 주차장까지 만차다. '오픈런' 줄은 야외로 이어진다(진행팀은 관람객들이 땡볕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기다릴 수 있도록 계단 아래로 줄을 이동해 주었다). 여기서 기다린 누구도 지도 선물을 받지 못했다.

사실, 개장 시간만 피하면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줄을 선다. 선물이 탐나서가 아니다. 며칠 전부터 기다려온 설렘을 주체할 수 없어 저절로 부지런해진 것이다. 드디어 116개의 부스(139개 팀)가 마련된 군산회관 너른홀에 입장했다. 벌써 사람이 많다. 지난 8월 30일부터 31일 북페어 기간동안 9800명이 다녀갔으니 너른홀은 한 번도 넓어 보일 수 없었다(관련 기사 : "북클럽도 클럽이다" 군산이 들썩인다, 바로 책 때문에).

군산회관 곳곳 활용한 북페어, 제대로 즐기는 법
▲ 군산빌리지 군산 소재 참여자는 3층에 위치했다. 공간이 가득 메워질 만큼 붐비기도 한다.
ⓒ 김규영
올해는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해 부스 사이 통로를 확보했다. 군산 소재 참가자 12개 부스는 3층의 '군산빌리지'에 자리 잡았다. 3층까지 발이 닿지 않는 방문객이 있으니 손해일 수 있다. 그러나 땡스북스의 이기섭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손님에게 안방을 내주고 자신은 사랑방을 쓰는 주인 같아 좋아 보였어요. 북마켓이 군산회관의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것도 좋았고요."

지난해 사용하지 않았던 4층과 야외에도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군산북페어를 즐기면서 여느 건물과 달리 독특한 동선을 만들어내는 군산회관의 건축적 아름다움도 함께 누리게 된다. 1층 토크 강연장 옆에 마련된 별도의 전시를 통해 건축가 김중업의 유작인 군산회관의 과거와 현재,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다.

너른홀의 많은 사람과 부스를 보면 기가 빨려 어지러울 수 있다. 북페어가 낯선 방문객이라면 입장하면서 받은 프로그램 가이드를 보아도 뭘 봐야 할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집중과 선택! 침착하게 내가 가야할 곳, 움직임의 좌표부터 찍어야 한다. 군산북페어 홈페이지는 모든 참여 부스를 미리 공개한다. 클릭하면 116개 부스에 대한 짧은 자기소개 글을 읽을 수 있다. 어떤 책을 가져갈 것인지 말해 놓은 참여자도 있다. 남겨 놓은 인스타그램 주소를 따라가면 해당 부스를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꼭 구입하고 싶은 책, 알아보고 싶은 부스를 선택하고 현장의 위치까지 표시해둔다.

나는 6개 부스를 골라두었다. 그러나 '좌표'에 이르기 전에 계획에 없던 부스에서 멈추고 책을 구매하고 말았다. 괜찮다. 책의 세계에서 '길 잃기'는 당연하고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이다. 만약 길 잃고 헤매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북페어에 완벽히 적응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길 잃기 모두 어렵다.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면서 긴장을 풀어주자. 북페어는 다른 축제처럼 쉽고 친절하게 즐기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 북페어의 방문객은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다.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치열한 선정 과정을 거쳐 부스에 이름을 올린 참여자는 군산북페어에 가져올 책을 신중하게 고른다. 방문자의 눈길을 붙들어 자신을 알릴 방법을 고민한다. 때로 특별한 굿즈를 준비한다. 몇 권이나 책이 필요할지 몰라서 넣었다 뺐다를 반복한다. 이삿짐 포장보다 어렵다(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책을 추가로 공수하느라 분주했던 부스가 있었다).
▲ 부스 뒤 상자와 가방들 부스 뒤, 책상 아래에서 참여자의 고충을 엿볼 수 있다.
ⓒ 김규영
부스 앞을 지나가는 방문객도 신중하게 고민한다. 한도가 있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지금 내게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 살핀다. 당장 구매를 못 해도 어떤 책인지 물어본다. 어떤 이유로 만든 책인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진지하게 경청한다. 베스트셀러가 아니고 유명 저자나 유명 출판사의 책이 아니어도, 내가 선택한 귀한 책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이다. 이것이 너른홀의 통로가 자꾸 좁아지는 이유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와글와글해도 멈춰서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김애란-신형철 특별 대담
▲ 신형철-김애란 특별대담 많은 독자들이 특별 대담을 듣기 위해 모였다. 현장 참여를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 사람들은 자리가 없었지만 두 시간 동안 서서 대담에 귀를 기울였다.
ⓒ 김규영
"여기 군산북페어에 오신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딱 한 권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특별 대담을 맡은 신형철 평론가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김애란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여기, 군산북페어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세요."

특별 대담 <나(너)의 책에 대하여> 온라인 신청자 100명 중에 '노쇼'는 없었다. 현장 참여를 위해 한 시간 전부터 기다린 열성 독자 뒤로 이어진 긴 줄이 구불구불 복도를 메웠다. 바닥에 앉거나 뒤에 서서 두 시간 넘는 대담에 집중한 열혈 독자들이 많았다. 김애란 작가는 '문학은 화자가 말하고 싶은 방식과 속도 그대로 전달되는 (유일한) 매체'라고 말했다. 영상처럼 1.5배속으로 돌릴 수 없는 글쓰기의 형식을 짚었다. 신형철 평론가는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는 고민한다. '좋은 이웃'이 되어야겠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래서. 무엇을,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하냐? 라고. 많은 작가들은 '좋은 작가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한다'면서 답하기를 회피한다. 그러나 김애란 작가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세상을 정글이라고 믿으면 정말 지옥의 세상을 살게 된다고.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특별대담 <나(너)의 책에 대해서>

선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북페어는 '만남'이다. 물건을 팔고 이득을 취하는 목적으로 모이지 않았다. 자신을 과장해 없는 말을 지어내지 않는다. 북페어는 낯선 생각, 작은 목소리, 새로운 세상을 알리고 나누고 듣기 위한 곳이다.
교류의 장을 방문했으니 우리도 정성을 들여야 한다. 쉽게 얻을 수 없다. 애초에 책이라는 물건의 특성이 그렇다. 군산 북페어가 좋다고 소문난 이유는, 화려하고 재미난 볼거리가 많아서가 아니다. 책을 통한 만남에 진심으로 진지하기 때문이다. 진짜 만남을 경험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 너른홀 아래 공간 부스를 돌아보던 방문객이 쉴 공간이 곳곳에 있다.
ⓒ 김규영
이틀 동안 점심 건너뛰고 풀타임으로 돌아다녀도 소화 못 할 만큼 군산북페어는 만남의 기회가 많았다. 부스 116개(139개 팀), 토크 8개, 전시 5개가 있다(군산 원도심의 문학동네 팝업서점 포함). 부스를 지켜야 하는 참여자는 프로그램은 물론 다른 부스 구경하기도 어렵다.

1층에 제주와 오키나와에 대한 공부모임을 책으로 연결한 '공부중' 부스가 있었다. 나의 최근 관심사라 작은 부스의 청년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3층을 둘러보다가 '팽나무도요새클럽' 부스 지킴이가 예전에 강정에 머물며 오키나와를 방문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공부중'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는 당장 소개해 달라며 1층으로 가서 인사하고, 그들과 이야기하며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참여자와 방문자의 교류

북마켓에서 부스를 사이에 두고 방문자와 참여자가 교류한다. 그에 못지 않게 창작자, 출판사, 책방, 독자와 같이 평소 교류하기 어려운 사람들 사이의 만남이 중요하다. 2024 군산북페어에는 첫날을 마감한 참여자들이 만나는 '네트워킹 나이트'가 있었다. 북페어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사정이 있겠지만 올해 교류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은 것은 큰 아쉬움이었다.

방문자, 독자 간의 교류 또한 중요하다. 군산북클럽네트워크에서 제안한 독서 플래시몹 '책펴기'에 참여하여 서로 어떤 책을 읽는지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현실 세계'에서 만나기 힘든 '독자 동료'가 이렇게 많이 모여있다. 부끄러움 많던 'I'성향 독자도 북페어에서는 'E'가 된다.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에게 마음을 전할 기회다.

<독자를 찾아서-누가 읽는가, 어디에 있는가?> 토크에서 한겨레 양선아 기자는 책 읽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휴식 - 나를 만나고 내 시간의 주인이 되는 시간.
성장 - 다른 사람, 다른 나라, 다른 삶을 만나는 통로. 나의 세계를 확장.
자유 - 빨리 변하는 사회, 인공지능 시대에 지식과 정보를 쌓고 생각하는 능력을 얻기 위해.
▲ 주제 토크 <독자를 찾아서 -누가 읽는가, 어디에 있는가?> 문학평론가 소유정 진행으로 양선아(한겨레 문화부 텍스트팀), 윤인혁(비평연대), 조아란(민음사 마케팅부 콘텐츠 기획팀)의 토크에도 많은 독자가 참여했다.
ⓒ 김규영
현재 통계 상으로 가장 많이 읽는 독자는 20~30대이며, 40·50·60대는 점점 책 읽기 습관이 줄어든다고 한다. 민음사 마케팅부의 조아란 부장이 출판 시장의 핵심 소비자이나 트렌드 리더를 20~30 여성으로 꼽는 이유다. 그는 중장년 독자 유입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예정보다 40분이나 늦게 토크가 끝났다. 마지막날 북페어 종료 30분 전이라 청중 질문을 더 받을 수 없었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장년층 독자인 조미연씨는 '노안 이슈'에 대해 할 말이 있었다. 활자 크기 뿐 아니라 종이의 질도 노안을 괴롭힌다. 어떤 책은 유난히 광택이 심해서 눈부심을 발생 시키고 눈의 피로를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군산의 중장년 독서회 모임을 이끌고 있는 그는 <독자를 찾아서> 토크를 듣기 위해 현장에서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온라인 신청이 필요한 사실도 마감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다. 군산 북페어를 찾는 젊은 독자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조용히 오가는 중장년 독자도 제법 있다.

방문객은 누구나 북페어의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다. 군산북페어에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은 유일무이한 굿즈를 '득템'하는 것이기도 하고, 북페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북페어에 대한 끈질긴 고민은 책이 무엇인지, 책을 왜 만들고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또한 어떤 책을 읽을지, 왜 읽는지, 읽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많은 북페어가 있어야 할까? 수많은 페어가 생겨나는 가운데 독립 출판인이 매번 신선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아트 북 페어는 '다르게 읽는 방법'을 배우도록 돕는다."

"(북)페스티벌은 권력 구조 및 정보나 일처리 과정에 대한 접근을 독단적으로 통제하는 가부장적 행태를 해체하는 기회로 활용돼야 한다. 미래는 집단적 과정, 협업, 자원 공유, 그리고 상호 책임 관계로부터 온다."

"이 전시는 군산북페어의 정체성과 관련해, '북페어'가 아카이브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 혹은 목표를 가시화한 이벤트라는 점도 아울러 언급합니다."

군산북페어 전시 중에서

군산북페어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망설이다 두고 온 책이 눈앞에 아른거려 후회하는가. 흥분하며 사들인 책을 읽지 않을 것 같아 후회하는가. 후회의 감정까지 만남의 순간이다. 2025 여름, 우리는 군산북페어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했다.
▲ 독서플래시몹 책펴기 군산 독서가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제안한 별도의 행사다. 본행사인 북페어에 방해되지 않게 야외 공간을 선택하니 덥고 소란스러워 환경이 열악했다.
ⓒ 김대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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