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국토종주 한국종단트레일> 연재를 시작하며
[나일영 기자]
도시로 몰린 사람들은 한편으로 우리의 땅을 잃어가고 있다. 마을이 사라지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옛 길이 사라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를 지탱해 왔던 한국적 정서를 잃고 있다.
우리 국토는 그곳이 어디가 됐건 수천년, 수만년의 삶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노천 박물관과 같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은 우리의 미래의 향로를 여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소중한, 그러나 사라져가는 우리의 많은 이야기들, '한국종단트레일'은 잃고 있는 한국적인 것들을 다시 찾는 길이다. 우리 국토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건네고 있는 이야기를 듣는 '우리의 길' 여행을 떠난다.
"장소가 회상시키는 힘은 그렇게도 크다! 어디를 걷든지 우리는 역사의 유적 위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 - 키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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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종단트레일 우리나라 유일의 공식 도보 국토종주길인 한국종단트레일 946km를 걷는 도보기행록을 연재한다. |
| ⓒ (사)사람길걷기협회 |
'국토종주'라고 하면 자전거를 떠올릴 만큼 자전거 국토종주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자전거 길이 참 잘 돼 있다. 그러나 산티아고를 떠올리면 도보 순례의 발걸음이 생각날 뿐이다. 미국의 PCT, CDT 같은 국토종주길 역시 자전거 길이 아닌 사람길이다.
나에게 휴가가 있다면! … 나는 시골 갈 여비로 경성역에 가 차표를 사는 대신에 양산으로 겸용할 검은 우산 하나 사겠습니다. 옥수가 굽이치는 비탈길을 걸으며 구름 자는 영도 넘고 바위 밑에서 소낙비도 겪어 보고 밭고랑에 풀을 깔고 누워 하늘에 초롱별들과 동화 같은 꿈도 꾸어 보겠습니다. 백 리도 내 다리로 천 리도 내 힘으로 걸어 영 많은 관북 일대부터 한여름에 정복해 놓겠습니다. 내년 여름에는 영남 호서를, 후년 여름에는 관서 일대를 차근차근 내 발자국으로 정복하겠습니다. - '도보 삼천리' 이태준
우리나라 현대 소설의 바탕을 이룬 구인회의 중심 인물인 소설가 이태준은 도보 국토종주 예찬론자라고 할 수 있다. 탈것이 아닌 두 발로 국토를 걸으며 한반도의 자연을 내 몸 전체로 구석구석 느끼는 여행을 원했다. 그는 어려서 만주(안동현)에서 순천까지 무일푼으로 도보 국토종주를 한 적이 있다. 걸어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국토의 자연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잊히지 않는 여행의 추억들로, 여러 지식으로 간직했다.
그의 도보기행에 대한 생각이 내 분신이기라도 한 것처럼 공감 간다. 나 역시 걸어서 국토종주를 하는 이유는 첫째, 행복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생겨난 후 수십만년 지속돼온 가장 원초적인 행동이 걷기이다. 걷기는 이족보행으로 진화한 인간 존재 자체를 상징한다. 걸어야 원하는 걸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고, 생존할 수 있었던 오랜 기억이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은 걸으면 자동으로 행복해지도록 만들어졌다. 내게도 걷는 것만큼 가슴 뛰는 일이 없다.
둘째 이유는 국토를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걷기는 만물을 볼 수 있는 시속 4~5km의 속도로 이뤄진다. 걸어야 비로소 만물이 보인다. 보아야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다. 국토순례와 산수유람에 대한 이 같은 태도는 옛 선조들도 똑같았다.
우리의 선조들은 주마간산 식의 여행을 극도로 꺼렸다. 걷기를 '배움'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 길을 여행한다"는 말이 통용됐을 만큼 산수유람은 격물치지 공부의 현장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철저히 정보 수집과 역사 고증을 했고 기록으로 남겼다. 현재 남아있는 유산기만 600여 편에 이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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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길 국토종주 날것의 있는 그대로의 우리 국토를 만나는 사람길 국토종주 여행을 떠난다. |
| ⓒ (사)사람길걷기협회 |
첫째, 국토의 끝과 끝을 잇는 길이다. 조선 중기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만국경위도에 우리나라 전도全圖의 남쪽 기점을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명시하므로 우리나라 육지(본토)의 끝이 되는 최남단과 최북단을 분명히 했다. 국토(본토)의 끝과 끝을 잇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토종주라고 할 수 있다.
분단 현실을 감안한 대한민국에서 국토종주란 우리 국토의 최장축인 남쪽 끝 해남 땅끝점과 북쪽 끝인 도보 한계선인 고성 통일전망대 제진검문소를 대각선으로 관통하며 잇는 것이다.
둘째, 끝과 끝을 잇되 사람길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서구 선진국들처럼 도보 국토종주길이 따로 없기 때문에 국도를 따라 걷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렇게 걸으면 국토종주의 본래 목적인 우리 국토를 볼 수 없다. 또 백두대간이나 종주산행 처럼 산만 보는 길이 아니고, 둘레길 처럼 자연과 숲을 즐기며 걷기 운동을 위해 일정 목적을 갖고 일정 구간 구획되고 조성된 길도 아니다.
사람길이라고 해서 따로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길로 걷는다. 사라져가는 마을과 마을을 잇고, 잊혀진 옛길을 복원하며 우리 국토를 지키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한국적인 것들을 찾는 길이다.
이제 그 '걸어서 국토종주'에 나선다. 매달 며칠씩 이어 걷는 방식으로 매달 떠난다. 9월 8일 해남 땅끝점을 출발해 본토 중앙을 관통하며 5개 도 20개 시군을 통과하는 946km의 '사람길 국토종주'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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