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가게·곰탕집·태닝숍·탁구장…어느 날, 직원이 사라졌다 [스페셜리포트]
# 8월 20일 오후, 서울 홍대 거리는 평일 낮 시간에도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세대가 삼삼오오 저마다 쇼핑과 오락을 즐기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매장마다 손님은 많은데 정작 직원은 몇 없다는 사실이다. 게임방, 뽑기방(가챠숍), 포토 부스부터 각종 의류·잡화점까지. 직원 없이 운영되는 무인점포가 골목마다 여럿이다. 한 번 의식하고 나니 ‘무인’ 간판이 붙은 점포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무인 마트와 편의점, 카페를 비롯해 탁구장·태닝숍·무인 락커·무인 전자담배숍·무인 프린트카페 등이 이곳저곳 포진해 있다.
한 모자 가게는 노골적으로 무인 점포를 강조했다. ‘저희 매장은 점원이 없습니다. 눈치 따윈 1도 보지 말고 마음껏 써보세요’라는 문구가 매장 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가게에서 만난 대학생 김여진 씨(가명)는 “일반 매장에서는 점원 눈치를 보며 일일이 ‘써봐도 되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제품을 시도해볼 수 있어 만족스럽다”며 “무인이라 그런지 가격도 다른 오프라인 매장보다 저렴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홍대에는 체험 클래스를 무인으로 운영한다는 ‘공방’도 있다. ‘일일 담금주 클래스’를 체험해볼 수 있는 공방 안 테이블 위에는 말린 과일과 꽃, 각종 약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오늘의 선생님은 ‘태블릿 PC’다. 완전히 직원이 없는 건 아니다. 2~3명 직원이 상주하며 손님들이 어려워하거나 헷갈리는 부분이 있으면 곁에서 가볍게 도움을 준다. 자리를 잡고 나니 직원이 다가와 “영상에서 나오는 안내 문구에 따라 화면을 터치하며 체험을 진행하면 된다”고 설명해준다. 기본 체험은 무인으로 진행돼 눈치 볼 필요가 없지만, 언제든 질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덜하다.
태블릿 시연 영상을 보면서 서툴지만 차근차근 담금주를 만들 수 있다. 취향에 맞는 재료를 고른 후 투명한 유리병에 자신이 고른 말린 과일이나 꽃잎을 담고 설탕 양을 조절한다. 한 시간 남짓이면 나만의 담금주를 완성할 수 있다. 공방을 찾은 한 손님은 “체험 자체는 무인으로 즐길 수 있어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점, 또 도움이 필요할 때는 직원 조언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덕분에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창업 시장에 ‘무인 열풍’이 불어닥쳤다. 높은 인건비와 구인난에 시달려온 자영업자가 직원 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무인점포 창업에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비교적 적은 초기 창업비용과 수월한 운영, 여기에 비대면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달라진 경향 역시 무인 열풍을 풀무질하는 요인이다. 단순히 점포 수만 늘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IT 발달로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업종까지 무인 매장 트렌드가 확산되는 중이다. 탁구장·테니스장 같은 무인 스포츠부터 음식점·태닝숍·공방 등 서비스 업종까지 번져간다.
급격한 성장 이면에 여러 그림자도 뒤따라온다. 위생과 안전, 보안 문제를 비롯해 예상보다 낮은 수익성으로 곤혹을 치르는 자영업자도 여럿이다. 만만히 봤다 낭패를 보지 않기 위해선, 창업과 운영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별게 다 무인 점포인 세상
곰탕·탁구장·과일·전자담배…
요즘은 전국 어떤 상권을 둘러봐도 무인 매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업종도 다양해졌다. 무인 카페나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 셀프 사진관뿐 아니다. 문구점·반려동물 용품점·옷 가게 같은 리테일(소비재)부터 피트니스 전문점·탁구장·태닝숍 등 여러 서비스 업종에도 무인 점포를 찾는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자판기’로 판매하는 아이템도 늘어났다. 샐러드·밀키트 같은 음식을 비롯해 전자담배·폰케이스 등 각종 기기, 육류·과일·계란 등 신선식품 자판기도 점차 대중화되는 추세다.
체감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무인 매장 신규 가맹점 수는 4년 전인 2019년 대비 894% 늘었다. 같은 기간 이용 증가율이 가장 높은 업종은 무인 라면 가게(525%)였고 무인 문방구(148%)가 뒤를 이었다. 무인 세탁소(49%), 무인 카페(25%),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16%) 같은 업종도 증가율이 상당했다. 호기심으로, 또는 싼 맛에 한두 번 방문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이제 무인 점포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모습이다.

자판기부터 AI 스토어까지
무인 매장 트렌드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와 1980년대 급격히 늘어난 ‘자판기’가 1세대 무인 매장이다. 당시엔 인건비 절감보다는 ‘편의성’에 방점이 맞춰졌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셀프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2세대 무인 매장’이 등장했다.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영화관이나 고속버스 터미널에 등장한 셀프 발권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이때만 해도 완전 무인이라기보다는 점포 내 인력 운용을 기계가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진정한 의미의 무인 점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점포 전체를 무인화하는 ‘3세대 무인 매장’ 트렌드다. 무인 카페와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 코인 빨래방과 코인 노래방, 무인 스터디카페가 이때쯤 나타났다. 편의점이 무인 테스트를 시작한 것도 이맘때다.
특히 2020년 팬데믹 이후 무인 매장 증가세가 가팔라졌다. 공실이 급증하며 빈자리를 빨리빨리 채워넣을 수 있는 장치·설비 기반 무인 매장이 빠르게 늘어났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비대면 수요도 무인화를 부채질했다.
최근엔 ‘4세대 무인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얼굴인식, RFID 같은 첨단 기술에 기반한 무인 스마트스토어다. 진보한 원격제어와 관제 기술 덕에 이제 상주 직원 없이도 이용자 ‘출입’과 ‘설비’ 통제가 가능해졌다. 피트니스 전문점·골프장·탁구장·태닝숍 같은 서비스 업종에도 무인화가 도입된 배경이다. 카페와 음식점은 제조·조리 로봇이 도입되면서 완전 무인화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냉장·냉동 기술과 스마트 터치 디스플레이 발전으로 자판기로 판매할 수 있는 아이템도 다양해졌다. 제품이 잘 안 팔리면 자판기 화면에 노출되는 가격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다이나믹 프라이싱’ 전략도 도입됐다.
기존 유인 매장이 ‘무인’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키오스크와 셀프 계산대 같은 기계가 양산되고 가격이 떨어지면서, 주문과 계산을 손님에게 대신 맡기는 가게가 많아졌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4호 (2025.08.27~09.02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밉상주서 다시 국민주로? 삼성 살아났나- 매경ECONOMY
- 6개월 새 5억 껑충…지금 투자해도? [감평사의 부동산 현장진단]- 매경ECONOMY
- 투자자 웃게 하는 증시 밸류업 선봉장 [CEO라운지]- 매경ECONOMY
- 반복되는 거품론···어쨌든 AI 열차는 달린다 [스페셜리포트]- 매경ECONOMY
- 트럼프, 韓 경제 ‘피스메이커’ 될까- 매경ECONOMY
- “자녀 셋 이상이면 월 4만5000원”…기후동행카드 다자녀 할인- 매경ECONOMY
- 내년 공무원 보수 3.5% 인상...‘저임금’ 엑소더스 해결될까- 매경ECONOMY
- [속보] 군 4성 장군 전부 물갈이…합참의장에 공군 출신 진영승- 매경ECONOMY
- 창업 4년 만에…벌써 ADC 차세대 주자 [내일은 천억클럽]- 매경ECONOMY
- 똑같은 GPT 사용하는데…“왜 내 AI만 멍청할까” [스페셜리포트]- 매경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