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파견관이 윤석열에게 남긴 유서...다시 시작된 2차 조작 시도

이광철 2025. 9. 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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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일, 이광철의 기록⑭] '울산 사건'_두 번째

[이광철 기자]

 고 백재영의 넋이 있는 곳. 그는 2019년 울산 사건 관련 검찰 조사를 받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 이광철
백재영이 죽었다!

2019년 8월 조국 수사가 시작된 이래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고인의 죽음을 접하고보니 그간의 고통은 차라리 사소했다. 고인의 죽음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곧장 민정수석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국정상황실 등 유관 비서관실에 상황을 공유했다. 그리고 고인이 울산에 내려간 2019년 11월 22일부터 고인이 목숨을 끊기까지의 과정을 가능한 상세하게 파악했다.

청와대 파견 공무원이 울산 사건 관련 검찰 조사를 받고 난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이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당장 오늘 밤부터 언론의 취재가 개시될 것이고, 죽음의 원인을 둘러싼 온갖 추측과 정치공세가 이어질 게 뻔했다.

고인이 죽기 전 지인과 나눈 대화들

우선 고인이 소환 조사를 위하여 울산에 내려가기 전 연락을 주고받았을 만한 사람들부터 수소문했다. 경찰로 복귀한 J 파견관 등 민정비서관실 전현직 동료들부터 연락했다. 모두들 충격을 받은 상태였고, 그래서 기민하게 움직였다. 이들을 통해 2019년 11월 22일 이후 고인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고인이 친한 후배인 공무원 K와 울산사건 조사 관련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K에게 연락했다. 바로 만났다. 그를 통하여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11월 24일 일요일 그러니까 울산 조사가 있은 11월 22일로부터 이틀 후 고인이 K와 나눈 대화다.

고인 : 지금 어려운 상황이다. 내가 많이 어려워질 것 같다.
K : 무슨 일이세요?
고인 : 자세히는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상황이 어렵다.
K :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라.
고인 : 다시 통화하자.

다시 고인은 11월 26일 화요일 저녁에 K를 을지로 부근에서 만난다. 이날의 대화는 이랬다.
고인 : 어제 출근해서 내가 확인해 보니 과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만큼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나 살 많이 빠졌지? 3일간 잠을 못 잤다.
K : 다행입니다.
고인 : 검찰 내에 나 모르게 진행되는 건이 있는지 확인해 보니 그런 일은 없는 것 같다.
K : 형님이 바쁘시니 제가 먼저 전화드리지는 않겠다.
고인 : 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아야 하지 않겠나?

고인은 11월 22일 울산에서 조사를 받고 와서 주말 내내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11월 26일 K와의 대화를 보면 그 원인이 검찰 내 고인에 대한 별건 수사나 감찰 등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고인은 11월 25일 월요일 출근해서 검찰 내 수사관 동료들에게 자신에 대한 별건의 조사나 감찰 등이 진행되는지를 확인했고, 그런 징후가 포착되지 않아 안심을 한 것이다.
그러나 고인의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인이 후배 K와 가벼운 마음으로 담소를 나누면서 그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바로 그날인 11월 26일, 윤석열 패거리들은 울산 사건 관할을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송 후 수사의 첫 개시를 고인에 대한 조사로 하고, 11월 27일 고인에게 소환을 통지했다. 이 통지를 받은 고인은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았고,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한 끝에 12월 1일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발견됐다.
 4일 오후 청와대에서 고민정 대변인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 비리 의혹 제보 경위 및 문건 이첩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브리핑 중 고 대변인이 고래고기 관련 문건을 보여주고 있다. 2019. 12. 4
ⓒ 연합뉴스
나는 조사결과를 정리하면서 11월 22일부터 12월 1일까지 열흘간의 고인의 마음을 천천히 더듬어 보았다. 고인은 <지방자치단체장(울산광역시장 김기현) 비리 의혹> 보고서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러니 울산 지검에 조사를 위하여 내려가는 동안에도 고래고기 사건 점검을 한 자신을 울산지검이 왜 부르는지를 몰랐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검사는 이 보고서를 내밀면서 작성자가 고인인지를 추궁하였다. 그러면서 다가올 시장선거에서 예상 경쟁자인 김기현 당시 시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이 보고서를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하고 이를 울산지방경찰청에 내려보낸 게 아니냐고 고인을 몰아 붙였다.

윤석열이 문재인 정부 전체를 표적으로 삼아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특수수사의 비정한 기법을 잘 아는 고인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졌다. ➀검찰의 의도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든지, 아니면 ➁그 추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버티는 것이다. ➀번을 선택하기에는 고인은 강직했고, 또한 문제의 보고서를 전혀 몰랐다. 또한 검찰의 그 추론은 사실도 아니었다. 백원우 비서관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들에게 권력은 야당이나 언론 때문이 아니라 권력 내부의 문제, 즉 권력 내부의 헤게모니 다툼, 집권 세력의 부정과 비위 때문에 무너진다고 틈만 나면 강조했다.

나 또한 선임행정관으로서 행정관들에게 야당과 언론에 대한 사찰이나 감시로 오해될 행동을 하지 않도록 늘 주의를 환기했다. 하지만 ➁를 선택하는 것도 고인에겐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고인은 검찰 특수수사의 기법을 잘 알고 있었다. 검찰은 범죄자로 찍으면 피의자 본인은 물론 그 주변까지 저인망식으로 수사를 벌여 피의자를 압박하고 피의자가 버티면 그 주변인들을 압박하여 주변인으로 하여금 피의자의 죄를 진술하게 만든다. 윤석열이 2021년 12월 29일 대선후보로 행한 다음의 연설은 검찰의 비열한 수사기법을 잘 보여준다.

"수사과정에서 자살은 수사하는 사람들이 세게 추궁하고 증거수집도 막 열심히 하고 그러니깐, 지금 진행 중인 거 말고도 또 내가 걸릴 게 있나 하는 불안감에 초조하고 이러다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도 하는 것이다."

그가 윤석열 총장에게 남긴 유서가 의미한 것
 김조원 청와대 민정수석이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 수사관의 빈소 조문을 마친 후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왼쪽은 이광철 민정비서관. 2019. 12. 3.
ⓒ 연합뉴스
고인은 자신이 그 덫에 걸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11월 27일 소환통보를 받은 고인은 조사일인 12월 1일까지 번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인은 ➀번이나 ➁번이 아닌 제3의 선택을 하였다. 고인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남긴 유서내용, '가족들을 부탁한다'는 말은 나 자신이 안고 갈터이니 별건을 통해 가족들을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의미였다. 11월 26일 K와 나눈 대화 중 "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아야 하지 않겠나?"라는 독백같은 말을 음미해 보면 고인은 이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는 죽음으로써 민정수석실을 지켰다.

슬프고 허망했다. 윤석열 무리들에 대하여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극단의 고립적 상황에 내몰린 그의 열흘이 너무나도 불쌍하고, 그 시간 고인을 살피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하고 참담했다. 가족분들께도 너무나도 죄송했다.

한편, 당시 민정수석실은 <지방자치단체장(울산광역시장 김기현) 비리 의혹> 보고서의 생성 경위를 파악하고 있었다. 앞선 연재글에서 밝힌 대로 이 보고서는 민정비서관실 M행정관이 2017년 하반기 지방토착비리 차원에서 작성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선임행정관인 나를 거쳐 백원우 비서관에게 보고되었고, 백원우 비서관은 보고서 내용이 토착비리 문제여서 수사기관을 담당하는 반부패비서관인 박형철에게 전달했다.

매우 루틴한 업무처리여서 M행정관에게 어떤 피드백이나 추가 업무지시를 한 바 없었고, 백원우나 나도 금방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 문제의 보고서가 2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 민정비서관실은 그 보고서가 우편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보고 2017년 하반기 문서수발신을 담당하던 M에게 그 문서가 우편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된 것인지를 문의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M은 그 보고서를 자신이 작성했노라고 말하였다. 그제서야 나도 2017년 추석 이후 지방토착비리 관련 민심청취 차원에서 M이 문제의 보고서를 작성해서 내게 보고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12월 1일 단 한숨도 자지 않고 고인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파악한 나는 12월 2일 월요일 아침 민정수석에게 <지방자치단체장(울산광역시장 김기현) 비리 의혹> 보고서 문제와 함께 고인의 사망 경위를 보고했다. 이날 아침 민정수석실 비서관 회의에 참석한 박형철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아마 단언컨대 윤석열의 표정도 같았을 것이다. 이날 박형철은 검찰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 사건에 관한 윤석열 패거리의 1차 조작 시도는 고인의 죽음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죽음은 윤석열 패거리에게 제2차 조작 시도의 계기가 되었다.
 검찰이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밑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2일 서초경찰서를 압수수색 했다. 2019년 12월 2일 밤 서울 서초경찰서(왼쪽) 길 건너편에 위치한 서울고검과 서울중앙지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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