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그릇 신화는 끝났다...강릉 가뭄이 던지는 새로운 질문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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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일 오후 강원 강릉시 외곽의 한 하천에서 전국에서 지원하러 온 살수차들이 오봉저수지에 투입할 물을 취수하고 있다. 2025.9.2 |
| ⓒ 연합뉴스 |
이러한 절박한 위기 속에서 소모적인 논쟁이 고개를 들었다. 일부 언론이 강릉 가뭄을 4대강 사업 재자연화 정책과 연결하며 "물그릇을 없애면 재앙이 온다"는 주장을 펼쳤다. 오봉저수지에 의존한 것 자체가 물그릇에 의존한 정책인 것은 무시한 채 4대강 재자연화(4대강 보의 수문을 열어 강을 흐르게 하는)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물 부족 지역과 물 저장 지역의 지리적 불일치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홍수와 가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 물그릇을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추진한 대규모 국책 사업이었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의 실증적 데이터와 전문가들의 분석은 4대강 사업이 전국적인 가뭄 대응책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물 부족 지역과 물 저장 지역의 지리적 불일치는 심각하다. 4대강의 16개 보에는 많은 물이 저장되어 있지만, 정작 가뭄이 상습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은 4대강 본류에서 멀리 떨어진 상류, 지류, 산간 그리고 해안 지역이다. 대부분의 논은 4대강 본류에서 물을 직접 공급받을 수 없다. 마치 댐과 아무런 연결도 없는 산골 마을에 물이 부족한데, 저 멀리 바다에 물이 찰랑거린다고 해서 가뭄이 해결되는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4대강 사업 당시 정부는 홍수와 가뭄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릉과 같은 영동지역은 4대강 수계와는 동떨어져 있어 4대강 사업의 혜택을 애초부터 받을 수 없는 구조다. 오히려 강릉의 가뭄은 4대강 사업이 전국의 가뭄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명박 정부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한다. 4대강 사업의 유지 여부와는 별개로 강릉과 같은 지역은 여전히 독자적인 가뭄 대책이 필요하다.
4대강의 보는 하천의 낮은 곳에 위치하므로 이 물을 고도가 높은 농경지로 보내려면 펌프를 계속 가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 전기료와 유지관리비가 많이 들어 물 공급의 경제성이 떨어진다. 결국 보에 저장된 풍부한 물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가뭄으로 고통받는 농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최근의 강릉 가뭄이 4대강 재자연화와 정말 연관이 있을까? 과학적으로 무관한 별개의 사안이다. 이는 한반도 수리지리학적 특성을 이해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한반도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서쪽과 남쪽으로 길게 흐르는 4대강 유역과 동쪽으로 짧고 경사가 급하게 흐르는 동해안 하천들로 나뉜다. 강릉의 주요 하천들 역시 태백산맥에서 발원하여 순식간에 동해로 흘러가므로 물을 가두기 어렵다. 따라서 강릉 가뭄은 동해안의 국지적인 강수량 부족과 지역 수자원 시스템의 독립성에서 비롯된 문제이며 , 4대강 유역의 물 관리 정책과는 물리적·수문학적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고 강릉 가뭄을 4대강 재자연화의 실패로 연결하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두 사건의 시간적 순서만을 보고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오도하는 오류다. 무관한 두 사안을 엮어 정적을 공격하는 도구로만 이용하는 것에 해당한다. 가뭄과 같은 재난 상황을 정치적 논리 투쟁의 도구로 삼는 행위는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고 합리적인 정책 논의를 방해하는 위험한 태도다.
지역 상황에 맞는 물 정책
강릉 가뭄은 우리에게 거대한 물그릇 논쟁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물 관리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 해답은 바로 자연의 원리를 존중하고 지역에 최적화된 근거리 분산형 시스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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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 주변의 농업용저수지 |
| ⓒ 농어촌공사홈페이지 갈무리 |
댐 건설만 하면 끝난다는 댐 만능주의의 폐해도 보여준다. 도암댐의 경우 수질오염으로 2001년부터 발전 방류가 중단된 채, 수량을 가득 채우고도 20년 넘게 애물 단지로 방치되어 왔다. 수질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막무가내식 댐 건설의 폐해를 보여주는 듯하다. 거기에 댐이 위치한 평창과 물을 받아 쓸 강릉 그리고 과거 오염된 물로 피해를 입었던 정선군 간의 해묵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댐 관리 주체인 한수원은 2급수 이상의 수질을 주장하며 용수 공급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주장하지만, 각 주체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합의는 요원한 상태다. 도암댐 사례는 중앙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간의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할 때 인프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강릉 주변에 오봉저수지 외에 10개의 저수지가 있다. 극한 가뭄 시기에 활용할 수 있도록 기존 인프라와 연계하는 것이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다.
지속가능한 물 관리의 해법은 거대한 댐 건설이 아닌, 이미 가진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분산형 수자원을 확보하는 데 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물 문제를 해결하는 '자연 기반 해법'이다.
이밖에도 하수 재이용 및 빗물 활용의 보편화다. 물을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정화해 다시 쓰는 물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포항시는 하수 처리수 재이용 시설을 건설해 산업용수로 활용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용인시가 하수 처리수 공급망 구축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는 등 이미 산업계에서는 물 재이용이 보편화 되고 있다. 개인이나 소규모 공동체는 '빗물 저금통'을 통해 물을 재활용하며 침수 피해까지 예방한다.
2025년 강릉 가뭄은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진정한 물 관리 해법을 고민하게 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강릉의 사례는 물 부족의 원인이 반드시 물그릇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필요한 곳과 물이 있는 곳의 지리적 단절 그리고 낡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물그릇 신화에서 벗어나 지역별 특성에 맞는 분산형 수자원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수율을 높여 새는 물을 막는 등 작고 효율적인 자연 기반 해법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강릉은 물론 전국 각지의 도시들이 물 걱정 없는 지속가능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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