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단어가 불편해질 때, 다른 삶을 알게 됩니다
[권진현 기자]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취미 활동을 접었지만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독서다. 책 읽기는 지금껏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취미이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꾸역꾸역 올라올 때 어김없이 책을 펼친다.
재미와 즐거움 이외에도 독서의 이점은 많다.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선의 확장'이다. 책은 내가 몰랐던 것, 관심이 없었던 것을 경험하게 해 준다. 이를 통해 생각과 시선을 넓혀준다. 재미와 즐거움이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이점이라면, 시선의 확장은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장점이 아닐까.
<일상의 낱말들>(2022년 11월 출간)은 익숙한 일상을 소재로 4명의 작가가 쓴 책이다. 본업은 변호사이지만 글을 쓰고 춤을 추는 김원영, 어린이들과 함께 독서 교실에서 책을 읽는 김소영,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이길보라, 동물복지를 공부하는 수의사 최태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휠체어를 타는 변호사, 농인 부모의 자녀, 어린이 독서교실 교사, 수의사는 나에게 낯설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 내가 소통하는 사람들 중 위 4가지에 해당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그나마 11살, 7살 두 어린이의 아빠라서 독서교사인 김소영작가의 글은 조금이나마 익숙하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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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표지 |
| ⓒ 사계절 |
커피, 텔레비전, 게으름 같은 익숙한 단어로 구성된 저들의 일상은 하나도 익숙하지 않았다. 저들의 삶에는 내가 모르는 부분도 있고 전혀 관심 없는 부분도 있었다. 상상도 못 했던 것들,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들, 때로는 질문하고 싶거나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었다.
일상의 낱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TV'이다. 나는 TV 하면 휴식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주로 거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편한 자세로, 때로는 간식을 먹으려 휴식을 하며 사용하는 도구이기에.
하지만 농인 부모의 자녀인 이길보라에게 TV는 즐기기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노동력'을 수반하는 대상이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던 <대장금>, <여인천하>와 같은 사극을 맘 편히 집중해서 볼 수가 없었다. 듣지 못하는 부모님과 함께 TV를 시청했기 때문이다. 화면 우측 하단 '수어통역사'가 없다면, 농인들은 TV를 보며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답답한 마음에 하염없이 딸만 바라보는 부모를 옆에 둔 채, TV를 제대로 시청할 수 있었을까?
엄마, 아빠와 같은 농인들은 방송사나 프로그램에 따라 채널을 선택합니다. 내용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해주지 않는 수어 통역사가 등장하거나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날에는 자막을 보거나 채널을 돌립니다. 이런 경우에 농인의 정보 접근권, 언어권이 침해당했다고 말합니다. 음성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농인에게는 청인과 동등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 p, 115
동물복지를 공부하는 수의사 최태규는 강의를 하면서 일부러 반려동물 대신 '애완동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애완동물에 비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것 같은 '반려동물'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2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인간 반려자처럼 동등한 관계라는 의미로 반려 동물이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글쎄요. 사람이 사는 공간에 가두어 놓고 예뻐하는 동물이 사람과 얼마나 '반려'하며 살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당에 묶어 놓고 기르는 개를 반려견이라고 부르는 건 아무래도 거짓말 같습니다. 열대어 한 마리를 커피잔 만 한 플라스틱 어항에 가둬 두고 죽어서 둥둥 뜰 때까지 배합 사료를 먹이는 일이 어찌 반려일 수 있을까요. - p. 120
가볍지만 무거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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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군가의 일상은 다른 누군가에게 전혀 일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 간극을 메워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
| ⓒ vincentyuan87 on Unsplash |
주인공 4명은 장애인, 장애인의 자녀, 수의사, 어린이 독서교실 선생님이다. 이들과 이들이 주로 상대하는 대상(동물, 어린이)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혹은 그들이 주로 대하는 이들이 약자, 혹은 소수자라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일상, 그들이 당연하다고, 혹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평소에 내가 관심 갖지 않던 것들이었다. 이 책은 나의 좁은 시선과 메마르고 무감각한 삶을 일깨움으로써 즐거움을 줌과 동시에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우리 곁에는 언제나 취약한 계층이 존재한다. 이들은 분명히 실재하지만, 사회가 이들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회라고 썼지만 당장 나부터가 그렇다. 아버지가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두리발'(부산 장애인용 콜택시)을 알게 되었고, 본가 근처에 있는 농인 교회를 지나칠 때 말고는 평소 저들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다.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저들의 불편한 삶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저들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껴야 할 텐데, 부끄럽게도 나는 평소 저들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저는 어떤 글이든 쉽게 쓰려합니다. 제가 상정하는 첫 번째 독자는 엄마와 아빠니까요. 어제는 글을 쓰다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문득 제가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일이 어쩌면 창작을 통한 통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반대일 수도 있고요. 예술이라는 매체로 나의 세계를 당신에게 전달하기 위한 통역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임무는 왜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사회적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은 계속해서 자신을 설명하고 전달하려고 하는데 반대의 경우에는 왜 그렇지 않을까. '다수'는 편하게 통역을 받기만 하고 왜 '소수'의 언어를 배우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엄마의 언어를 잘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걸까. 그런 감정은 왜 나만의 것이어야 할까 - p.154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눈높이를 동일하게 맞출 필요가 있다. 약자, 소수자, 어떤 형태로든 차별을 받는 자들은 우리가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일상을 살고 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기존에 익숙했던 삶을 내려놓고 (아마도) 불편할 수 있는 '저들의 삶'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언제나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헤아리는 수의사, 늘 어린이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행동하는 선생님처럼.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아닐 수 있다. 서로의 눈높이를 맞춰가려는 노력과 움직임이 더 많아질 때, 누군가의 일상이 나의 일상이 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함께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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