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직접 그리고 쓴, '최전방' 얼굴뼈 이야기
이 책의 편집자로 저자를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기자말>
[최정미 기자]
"사람을 떠올릴 때 우리는 팔이나 다리를 먼저 기억하지 않습니다. 얼굴이죠."
누군가를 기억하고 알아보는 결정적 단서, 감정이 오가는 창, 자존감과 사회성이 교차하는 복합적 공간. 얼굴이라는 주제를 해부학과 인문학의 시선으로 탐구한 책이 있다. 아산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이지호 교수는 20여 년간 환자의 얼굴뼈를 다뤄온 외과 의사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그가 직접 그리고 쓴 <얼굴의 인문학>은 신체의 가장 복잡한 기관인 얼굴뼈를 통해 미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정체성을 탐구한 책으로, 얼굴뼈 해부학과 인문학을 결합한 최초의 의학 교양서다. "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고고학적 통찰과 함께, 얼굴뼈라는 퍼즐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 문화, 감정, 심지어 권력과 죽음까지 포착해낸다.
"우리는 얼굴을 통해 사람을 기억하고, 정체성을 확인하죠. 뼈는 그 토대입니다."
이 교수는 얼굴뼈를 '현장직'이라 비유한다. 뇌머리뼈가 결정만 내리는 사무직이라면, 얼굴뼈는 말하고, 먹고, 울고 웃는, 가장 인간적인 활동이 벌어지는 최전방이다. 그는 이 치열한 현장의 구조를 22개의 뼛조각으로 이루어진 퍼즐에 비유하며, 하나하나의 뼛조각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지 탐사한다.
"얼굴뼈를 정밀하게 재현하려 하기보다, 이야기의 리듬을 따라갔어요. 의학책이 아닌 인문학 책으로 읽히길 바랐거든요."
책은 단지 글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직접 그린 그림들로 해부학을 해석하고 설명한다. 일부는 교과서적 삽화로, 또 어떤 장은 웹툰 형식으로, 유머와 따뜻함을 가미한 방식으로 구성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얼굴뼈를 통해 삶을 이야기하게 되었을까. 그 시작과 여정을 지난 8월 29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직접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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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의 인문학, 이지호 저자 |
| ⓒ 세종서적 |
"얼굴은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입니다. 말하고, 먹고,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인간적인 장소죠. 그리고 그 모든 기능의 기반이 되는 것이 얼굴뼈입니다. 얼굴뼈는 살아 있을 때의 삶과 죽음 이후의 흔적까지 모두 담고 있어요. 정체성과 문화, 질병과 회복, 심지어 예술과 종교까지 얽혀 있는 장소이기에 탐구할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 해부학이라는 어려운 내용을 어떻게 풀어내셨나요?
"저는 이 책을 해부학 교과서가 아니라 '교실 밖의 이야기'로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문 용어를 줄이고, 그림과 에세이, 때로는 웹툰 형식을 섞었죠. 마치 친구에게 들려주듯, 때로는 농담도 섞고요.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읽으면서도, 얼굴 뼈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느끼길 바랐습니다."
- 직접 그리신 그림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그림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의사가 직접 그리는 해부학 그림이 전하는 진심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교과서 스타일의 정밀한 삽화보다는,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로 그림을 사용했습니다. 글과 그림이 함께 이야기를 짜 맞추는 퍼즐처럼 작동하길 바랐습니다."
- 해부학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해부학과 인문학은 얼핏 보면 서로 전혀 관련 없어 보입니다. 이 두 가지를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의 관점에서 1차원적으로 연관 지으려고 하면 무리한 비약이나 과정이 따라올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나는 환자들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병에 관한 이야기 말고 가끔 그분들이 들려주는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파편같이 짧고 스치는 듯 지나가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잘 더듬어 생각해보면 인문학, 즉 사람의 이야기와 해부학을 연결하는 고리를 거기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 환자의 얼굴뼈를 복원하는 수술은 단순한 재건을 넘어 삶의 회복과 연결될 것 같습니다. 의료 현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10년쯤 전 아래턱뼈에 골육종이 생긴 환자가 있었습니다. 저와 동갑이었습니다. 당시 신혼이었는데 진료실에서 조직 검사 결과를 듣고 아내 분이 펑펑 우시던 기억이 납니다. 암 때문에 아래 턱뼈의 거의 반을 잘라내고 종아리 뼈로 복원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항암치료까지 힘들게 받으셨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임플란트로 치아까지 복원하고 완치되어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외래에 오실 때마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야기, 돌잔치를 했다는 이야기, 지금 하는 사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듣고 있으면 같은 나이의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에 깊이 들어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제 책도 해부학이라는 건조한 지식을 재료로 썼지만 결국 제가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해부학이 삶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양악수술부터 보톡스, 턱뼈와 치아, 해골의 역사적 상징까지 다룬 이 책은 단순한 의학 정보 전달을 넘어, 얼굴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 문명과 시대를 반영하는지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얼굴뼈를 올바로 이해하고 미에 대한 인류의 욕망,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이지호 서울아산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20여 년간 임상과 수술 현장에서 얼굴뼈와 삶의 흔적을 마주해왔다. 일상에서 얻은 영감과 관찰을 바탕으로 글과 일러스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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