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서 자결한 조성만 열사

김삼웅 2025. 9. 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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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만 열사는 전북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 열사는 명동성당 청년단체연합회 산하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장으로 이날 하오 2시부터 명동성당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계승 5월축제'에 참석하여 민속연구회 회원 10여 명과 풍류놀이를 한 뒤 혼자 교육관 4층 옥상으로 올라가 핸드마이크로 "남북 공동올림픽개최", "양심수 석방", "주한미군철수" 등을 외치며 할복 투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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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민주열사열전 36] "무수한 형제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은 더 이상 자책만을 계속할 수 없게 한다."

[김삼웅 기자]

▲ 조성만 열사의 마지막 여행 구로구청 사건을 겪은 뒤 변산으로 여행을 떠난 조성만. 죽음 직전 마지막 여행이었다.
ⓒ 오마이북
조성만 열사는 전북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전주해성고등학교를 나와 1년 재수하여 1984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과에 입학하였다. 집안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여서 어린 시절 그는 신부가 되길 꿈꾸었다.

대학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 군복무를 마친 후 2학기에 복학했으며 1987년부터 명동성당 가톨릭 민속연구회장직을 맡았다. 영세명은 요셉이다.

친구 김병원 군(24, 서울대의대 본과3)에 의하면 조군은 고교 때 신부가 되려 했으나 집에서 반대해 포기했으며 성격이 쾌활하고 정의감이 강했다는 것.

해성고 생활기록부에는 '옳은 일에 앞장서고 정의감이 강한 모범생'으로 기록돼 있다. 성적은 1학년 때 학급에서 58명 중 3등, 2학년 때 57명 중 3등으로 졸업할 때 우등상과 3개년 정근상을 받았다. (주석 1)
▲ 조성만의 투신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투신하는 조성만.(사진/최순호)
ⓒ 오마이북
조성만 열사는 1987년 12월 구로구청 농성사건 때 가담하여 경찰에 연행되는 등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88년 5월 15일 하오 3시 40분께 서울 중구 명동성당 구내 교육관 건물 4층 옥상에서 "남북한 올림픽 공동개최" 등을 주장하며 과도로 자신의 배를 찌른 뒤 투신, 15m 아래 콘크리트 계단에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날 하오 7시 20분께 숨졌다.

조 열사는 명동성당 청년단체연합회 산하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장으로 이날 하오 2시부터 명동성당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계승 5월축제'에 참석하여 민속연구회 회원 10여 명과 풍류놀이를 한 뒤 혼자 교육관 4층 옥상으로 올라가 핸드마이크로 "남북 공동올림픽개최", "양심수 석방", "주한미군철수" 등을 외치며 할복 투신하였다.

그는 16절지 크기의 대학 리포트 용지 5장에 빽빽이 쓴 유서를 20여 부 복사, 투신 직전 뿌렸다. 유서에는 "무수한 형제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은 더 이상 자책만을 계속할 수 없게 한다."며 △ 조국의 통일 △ 한반도에서 미군 축출 △ 군사정부의 퇴진 △ 남북한 올림픽 공동개최 등이 담겼다.

조 열사가 투신할 때 명동성당에는 300여 명의 학생·청년들이 모여 이날 마지막 행사인 광주항쟁계승 마라톤대회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가 구호를 외치자 5~6명이 "뛰어내리지 말라"고 소리치며 현장으로 갔으나 미처 제지하지 못했다.

조 열사는 학생들에 의해 인근 백병원으로 옮겨졌다가 곧 숨졌다. 나이 24세였다. 그의 시신은 명동성당 문화관 영안실에 마련되고, 재야단체와 유족들은 장례를 '민주국민장'으로 하며, 19일 하오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빈소가 차려진 백병원 영안실에는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영삼 민주당 총재, 문익환 목사 등이 찾아와 분향하였다.

문익환 목사의 '꿈을 비는 마음'이다.

꿈을 비는 마음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소?
155마일 휴전선을
해 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 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 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들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 외다….

주석
1> <한국일보>, 1988년 5월17일.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민주열사 열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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