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를 둔 영주들의 쟁투, 그저 '게임'이라 한 이유
[김성호 평론가]
세상 무엇도 당연하지 않다. 오늘 당연하게 여기는 시민의 권리 또한 돌아보면 분통터지고 눈물 나는 희생에 터 잡은 것이다. 민족자결주의는 먼저 들어가 깃발 꽂으면 살던 사람이 있든 없든 간에 내 땅이라는 제국주의 시대의 폐해를 겪어낸 결과다. 모든 이가 스스로의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주권사상 또한 왕정과 귀족정이 수많은 부조리를 양산한 뒤에야 자리 잡았다. 그 아래 자리한 피눈물나는 희생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비료와 품질개량으로 대표되는 농업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인간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을 것이다. 굶주림에서 비롯된 약탈과 전란이 2025년이라 해서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세계를 돌아보면 인간은 여전히 주변국과, 때로는 한 국가 안에서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기본적 욕구조차 충족되지 않은 게 아님에도! 하물며 굶주림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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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좌의 게임 스틸컷 |
| ⓒ HBO |
물론 국가 운영은 손이 많이 가는 것이니, 실제로 일을 분장할 필요가 발생했다. 그에 따라 영토를 책임지고 다스리는 이들이 영주가 되고 각 영주가 관료집단을 활용해 생산하는 백성을 다스리는 형태로 대부분의 국가가 운영됐다. 왕과 영주, 관료와 백성으로 이어지는 계층이 신분으로까지 정해진 경우도 흔했다. 이와 같은 체제를 가리켜 봉건주의라 한다.
인류 문명이 대체로 그렇듯이 봉건주의 또한 수많은 폐해를 발생시켰다. 가장 위인 왕으로부터 가장 아래의 농노며 노예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불평등한 관계란 게 근본적인 문제다. 철저한 나눔과 배제로써 봉건주의는 무질서 위에 질서를 쌓아올렸다. 그 체제가 맞지 않는 옷과 같아서 인간은 행동과 사상에 제약을 받았던 것이다.
봉건주의는 질서 꼭대기에 선 자들을 위한 체계다. 질서는 그 아래 깔린 이들을 지배할 뿐이지 위하지 않는다. 봉건주의의 피라미드는 피라미드가 거의 그러하듯 위가 뾰족하고 아래는 넓은 삼각형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아래 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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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좌의 게임 스틸컷 |
| ⓒ HBO |
시즌6는 로버트 바라테온이 사냥터에서 입은 상처로 숨진 뒤 일어난 이야기를 그린다. 대부분의 봉건국가가 그러하듯, 왕위는 적장자 상속이 기본이지만 로버트 바라테온의 아들인 조프리 바라테온이 그의 친자가 아니란 사실이 알려지며 왕실에 대한 저항이 일어난 게 그 시작이다. 이후 죽고 죽이는 싸움이 그치지 않으며 칠왕국은 분열과 몰락의 위험을 마주한다.
일련의 싸움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일을 겪은 건 역시 스타크 가문이겠다. 국무총리격인 왕의 수관으로 임명된 가주 네드 스타크가 왕비 세르세이 라니스터의 부정을 알게 되어 적통이 되는 왕을 세우려다 도리어 처형된 게 그 시작이다. 곧장 장자인 롭 스타크가 일으킨 반란이 끝내 좌절되고, 그 형제들이 겪는 수난이 참담하기 그지없다.
드라마는 이들 각각을 주인공 삼아 그 여정을 돌아가며 살핀다. 서자인 존 스노우는 북방 장벽을 지키는 밤의 경비대 대장까지 올랐다가 반란으로 죽을 뻔하고, 장녀 산사 스타크는 수도에 볼모로 잡혀 목숨을 위협받다가 원치 않는 이에게 시집을 갔다 겨우 탈출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신세가 된다. 둘째 딸 아리아 스타크도 가족들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목숨 건 여정을 지속하고, 삼남 브렌 스타크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며 사남 릭콘 스타크는 끝내 목숨조차 건사하지 못한다. 가문의 영지인 윈터펠은 배신으로 함락되고, 충복들은 저항하다 죽음을 맞은 상황. 시즌6는 뿔뿔이 흩어진 이들 스타크 가문 구성원들의 고난, 그리고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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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좌의 게임 스틸컷 |
| ⓒ HBO |
램지 볼턴의 학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는 존 스노우가 그렇듯, 볼턴가 가주 루스의 사생아인 탓으로 본래 램지 스노우였으나 왕의 허락을 구해 적장자가 없는 볼턴가의 장자가 되었다. 타고나길 성향이 괴팍한 그는 광포한 사냥개들을 늘 굶주리게 키우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를 짐승처럼 사냥하고는 한다. 드라마가 그가 아내인 산사와 포로로 잡은 스타크 가문에서 길러진 테온 그레이조이를 학대하는 장면을 수차례 묘사할 정도다.
그의 성향이 오로지 그 하나만의 것은 아니다. 기실 볼턴가의 내림이라 할 만한 것이,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부터가 사람의 가죽을 벗겨 거꾸로 박아둔 모양인 것이다. 이 가문은 실제로 전쟁에서 죽거나 사로잡은 포로들의 가죽을 벗겨 처형해 공포심을 주는 것을 상징처럼 여기는데, 실제 중세시대 유럽에서 자주 사용됐던 처형과 고문법이기도 하다. 원작을 쓴 조지 R. R. 마틴이 중세 유럽사 애호가이기도 한 탓으로 이 같은 설정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즌6는 북부의 패권을 찾으려는 스타크 가문의 존 스노우와 산사가 램지 볼턴에 대항해 군을 일으켜 소위 서자들의 전쟁을 벌이는 걸 그 클라이맥스로 삼는다. 이 전쟁까지 램지는 학정과 공포정치를 이어가고, 약하고 없이 사는 이들은 늘 그 발 아래 짓밟힌다. 원치 않았어도 서자로 태어난 탓으로 권력과 애정에 굶주려야 했던 이들의 상황이 짙게 드러나고, 이들에게 가문의 성조차 주지 않았던 당대의 습속 또한 고스란히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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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좌의 게임 포스터 |
| ⓒ HBO |
시즌6는 이밖에도 봉건주의의 특징을 그대로 내보인다. 적통과 적통 아닌 것을 오로지 혈연으로 구분 지어 능력이 없거나 자격이 없는 이들이 다른 이를 지배하는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방치하는 체제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이로부터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이 고통받고 심지어 죽음을 당하는 상황이 거듭된다. 오늘날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이라 여기는 많은 것을 드라마 속 인간들은 감히 넘보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건주의엔 의미가 없지 않다. 태초의 무질서로부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스스로의 기본권을 어느 때보다 넓게 확장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필연적으로 거쳐야 했던 체제란 점에서 그러하다. 늘 그러하듯 인간은 실패로부터 배운다. 봉건주의의 실패는 인간을 가볍게, 또 수단으로 대했다는 점이다. 때로는 서자들이, 때로는 노예와 농노가, 또 때로는 여성들이 그 희생양이 됐다. 장애인과 소수자야 말해 무엇할까.
<왕좌의 게임>은 영주가, 또 패권을 잡아 국왕이 되려는 이들의 활약을 그려 갈채받았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왕좌' 뒤에 진지함이라고는 없는 '게임'을 단 이유, 그 까닭에 대해선 얼마 조명 받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책에선 1부의 제목일 뿐인 '왕좌의 게임'을 아예 드라마 전편의 제목으로 옮긴 데는 왕좌를 차지하려는 소위 가진 자들의 전쟁과 모략이 실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겐 전혀 와 닿지도, 의미 있지도 않은 소모적 싸움이자 분란처럼 다가오는 때문은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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