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오면 '멍청이다리'로 불리는 사정
[이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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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실 오수천, 조선 시대의 원수평보 위치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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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실 오수천 왼쪽, 한거리보 수리 시설 들녘 |
| ⓒ 이완우 |
하천 강변의 모래와 자갈 더미에는 봄에는 할미꽃이 무성하게 피었고, 습지에는 여름에 여뀌꽃 등 다양한 야생화가 지천이었다. 하천의 자연 생태계가 살아 있는 청정한 환경이었다. 습지와 저수지(하천 연못)에는 온갖 수생 곤충, 물고기, 양서류와 파충류가 서식하였다.
조선 시대의 보는 현대 하천에 설치된 보(洑)와 상당히 개념이 다르다. 현대는 토목 재료나 공법이 발달하여 하천을 상당한 높이로 가로질러 튼실한 보를 설치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런 토목 구조물 설치가 기술적으로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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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실 오수천과 둔남천 합류 두물머리, (위 사진 두 장)오수천 둔남천 합류, (아래 왼쪽) 오수천, (아래 오른쪽) 둔남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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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수 신포정, 둔남천 천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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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 시장터 가까이에 수령 500년 은행나무와 역참지 표지석이 천년 역사의 역촌 흔적으로 남아 있다. 둔남천을 따라 오수 시가지 천변 도로를 걸었다. 저라산 기슭의 소나무 숲속에 신포정 정자는 둔남천의 절경이다. 이 산 아래 관월리에는 고려 시대의 미륵 석불 등 문화유산이 천년 세월의 비바람을 견뎌냈다.
오수천과 둔남천이 합쳐지는 지점에서 900m 위쪽에 둔남천을 건너는 두 개의 다리가 보인다. 오래된 시멘트 교량과 새로운 철제 트러스트 교량이 나란히 있다. 이 두 다리의 50m 앞에는 오래전에 세월교(洗越橋)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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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수 한거리보 부근 현재 교량, 교량 앞 50m 지점이 한거리 세월교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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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남천 한거리보 들녘 사람들이 한거리보를 복구하려 했다. 그런데 한참 아래의 오수천 원수평보 들녘 사람들이 원수평보의 수량이 적어진다며 한거리보 복구를 방해했다. 한거리보 들녘 사람들이 남원부(南原府)와 의정부(議政府)에 차례로 호소하여, 한거리보를 복구해도 된다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원수평보 들녘 사람들은 여전히 승복하지 않았고, 한거리보를 여전히 복구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사정을 증명하는 한지 60cm×93cm 크기의 소지(所志)를 이 지역 김진영 향토역사탐구가가 소장하고 있다. 소지는 조선 시대에 백성이 관청에 올렸던 진정서 양식이다. 남원부(南原府) 오수(獒樹)에 사는 이승우(李承宇, ?~?)가 전라도 순찰사(巡察使, 도지사)에게 소지를 올렸다. 소지에는 '계사년(癸巳年) 6월' 표기만 있어서, 정확한 년대는 알기가 힘들었다.
소지에는 이제까지의 경과를 밝히고, 한거리보를 다시 쌓을 수 있게 처분해 주기를 바라는 내용이 해서체로 정성껏 씌었다. 이에 전라도 순찰사가 초서로 판결을 써서 이승우에게 돌려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정부의 판결과 남원부의 판결은 엄중한 것이다. 원수평보의 백성이 제방 쌓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참으로 근거가 없는 짓이다. 남원 부사는 한거리보의 제방을 속히 쌓을 수 있도록 조치하라.
이 소지에, 전라도 순찰사가 쓴 판결문을 제사(題辭) 또는 뎨김(題音)이라고 한다. '일(一)' 자와 '심(心)' 자를 결합한 순찰사의 서압(署押, 사인)이 선명하다.
원수평보가 있는 오수천은 둔남천이 합쳐서 수량이 많았다. 한거리보는 원수평보에서 1.7km 위쪽의 둔남천에 있었다. 둔남천은 수량도 적은 하천이었다. 한거리보를 복구해도 원수평보의 수량에는 영향이 없었다. 원수평보 들녘 사람들의 주장은 상식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았다. 이승우의 소지에는 한거리보 들녘 사람들의 억울함과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엄한 왕명을 대리하는 의정부와 남원 부사의 판결은 엄중하였다. 그런데 원수평보 들녘 사람들이 이러한 공식적인 판결을 계속 무시하고 있었다. 조선 시대 후기, 사회의 기강이 흐려진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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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우 소지, 1 소지 2 서압 3 제사(뎨김), 임실 오수 김진영 향토역사탐구가 소장 고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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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후기, 역참 제도 운용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된다. 역리와 역졸들은 역참의 일이 힘들어 도망자가 발생했다. 역마나 역둔토 등 역참의 국가 재산이 지역 토호나 역참의 찰방에게 잠식되어 갔다. 어느 역참에는 찰방이 권세를 부려 유서 깊은 사찰 옆에 명당을 차지하여 선산으로 쓰면서 사찰이 없어진 사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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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수 옛날 한거리 부근. (위) 향토수호공적비, 둔남천 교량 (아래) 호국영웅 박준규 준장 흉상, 둔남천 트러스트 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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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터넷 블로그, 흘러가는(김진영) 티 스토리, '남원 이승우 소지' 내용을 기사 작성에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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