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마리 소 도축... 금기까지 뒤엎은 연산군의 '소고기 사랑'
[김종성 기자]
|
|
| ▲ tvN <폭군의 셰프>의 한 장면. |
| ⓒ tvN |
프랑스에서 열린 요리 경연에서 우승하고 귀국하던 연지영은 비행기 내에서 타임 슬립을 경험한다. 조선시대로 뚝 떨어진 그는 임금 곁에 둘 여성들을 구하는 채홍사들이 방문한 지방 관청에서 갑자기 음식을 만들게 된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당시 사람들이 처음 구경하는 스테이크 요리다. 그런데 채홍사들은 속으로는 그 맛에 감탄하면서도, 겉으로는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도리어 음식 투정을 하고 시비를 건다. 이 때문에 그는 채홍사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인다.
바로 그때, 인근에 있던 임금인 연희군(이채민 분)이 갑자기 등장해 스테이크 맛을 보고 제대로 평가해준다. 이 미식가 덕분에 연지영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폭군의 혀는 이 순간만큼은 '성군의 혀'였다.
|
|
| ▲ tvN <폭군의 셰프>의 한 장면. |
| ⓒ tvN |
당시 29세인 연산군이 비서실인 승정원에 보낸 지시를 통해 "종래의 연회 때 소고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농사 때문이었다"고 한 뒤 "(앞으로는) 모든 연회에 항상 소고기를 쓰라"고 명령한다. 승지들은 '백성들의 소고기 섭취를 제한하는 것은 그들이 농사를 짓게끔 하기 위한 것이므로 군주에게는 그런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연산군을 거들었다.
그 후로 그는 채홍사가 모집해온 기녀인 흥청들에게도 소고기를 제공했다. 위 실록은 "이때부터 흥청들에게 음식을 줄 때는 항상 소고기를 썼다"고 알려준다. 이런 연회에 사용된 소고기의 양은 상당했다. "날마다 10여 두를 도축해 수레에 실어 들였다"고 <연산군일기>는 말한다.
연산군은 소고기 부위 중에서도 특히 태(胎)를 좋아했다. "왕은 소의 태를 잘 먹었다"고 위 일기는 말한다. 그래서 배가 부른 소는 무조건 잡아들여 도축했다. 그렇게 도축한 소들 중에는 태가 없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왕의 입맛을 맞추느라 무분별하게 도축했던 것이다.
그 같은 임금의 식성으로 인한 대중의 피해와 원성은 대단했다. 매일 같이 열 마리 이상이 궁에 들어가야 하다 보니, 수요를 맞추기 위한 궁궐 사람들의 소 약탈도 심각했다. 수레를 끌고 가거나 짐 싣고 가던 소들이 길가에서 관헌들에 의해 강탈되는 일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부르짖으며 통곡했다"고 위 실록은 말한다.
임금의 식성은 지방 관청들에게도 부담이 됐다. 도성과 가까운 지역에서는 날고기를 헌납했지만, 먼 곳에서는 육포를 떠서 수송했다. 연산군 한 사람 때문에 그 시대의 인간과 소가 모두 고생했던 것이다.
연산군이 불시에 소고기를 찾는 경우도 많았다. 연산군 12년 3월 14일자(1506.4.7.) <연산군일기>는 연회 도중에도 소고기를 새로 구해야 할 때가 많았다고 알려준다. 이런 경우, 궐내에 소고기가 없으면 관리들이 길거리로 나가 아무 소나 잡아들였다. 권력을 탐해 폭군이 된 측면뿐 아니라 소고기를 탐해 폭군이 된 측면도 있었던 것이다.
|
|
| ▲ tvN <폭군의 셰프>의 한 장면. |
| ⓒ tvN |
위 기록을 남긴 사관(史官)은 연산군이 왕실 기물을 다루는 관청인 내수사에 흰 말을 충원하도록 한 이유를 별도로 설명한다. 사관은 "백마 고기는 양기를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연산군이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말한다.
연산군이 왕명을 내리면서 양기를 운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산군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신하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쳐졌던 것이다. 신하들 앞에서 과도한 욕망을 무절제하게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
연산군은 곤충도 많이 찾았다. 연산군 12년 5월 23일자(1506.6.14.) <연산군일기>는 그가 중앙관청들의 어린 노비들에게 귀뚜라미·베짱이·잠자리 같은 곤충을 잡아오라는 왕명을 내렸다고 알려준다.
같은 해 8월 7일자(1506.8.25.) 일기는 어린 노비들에게 두꺼비를 잡아오라고 명령하는 연산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날의 기록은 광주리를 든 남자 노비들이 거리 곳곳에 퍼졌다고 당시의 풍경을 묘사한다. 동물원이나 곤충 박물관을 만들려고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므로, 곤충이나 두꺼비 등이 식용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쫓겨난 폭군이라 더 잘 부각된 측면도 있지만, 연산군은 욕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정치권력뿐 아니라 식욕도 무절제하게 표출했다. 궁궐에 먹을 게 넘쳐나는데도, 대궐 밖의 소와 말까지 탐냈다. 그로 인해 대중에게 피해를 주고 세상의 원성을 자초했다.
소년 노비들에게 두꺼비를 잡아올 것을 지시한 다음달인 1506년 9월 17일(음력 9.1), 그는 중종반정으로 불리게 될 쿠데타를 당하고 다음날 폐위됐다. 욕망을 충족하는 데 집중하느라 신하들의 쿠데타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베니스 무대에 선 박찬욱 감독... 그가 강조한 '유머'의 정체는 이랬다
- 베니스영화제 '어쩔수가없다' 9분간 기립박수... 이병헌-손예진 "울컥했다"
- '트라이' 오합지졸 럭비부의 무모한 도전, 우승으로 이룬 해피엔딩
- 도쿄 마지막 슬럼가, '35년' 국밥집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이유
- 네, 저는 살인자의 딸입니다
- '어쩔수가없다' 9분 간 박수 세례, 처절한 유머에 관객들 박장대소
- '어쩔수가없다' 간담회에 몰린 외신 기자들, 반응이 심상찮다
- "팝 스타와 케이팝 스타의 만남, 제가 만들고도 믿기지 않았죠"
- 남다른 완성도에도... 넷플릭스 '애마'는 왜 이지경이 됐나
- 평범한 중년 가장의 액션 변신,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