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과 도피 중 태어난 ‘프랑켄슈타인’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사랑은 불처럼 덮쳐오는 법. 이를 막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10대 소녀 가슴 속 자그마한 화톳불은 감성을 먹이 삼아 큰불로 커졌다. 다섯 살의 나이 차이도, 상대가 유부남이어도 상관없었다. 집안 반대는 외려 불쏘시개였다. 그와 함께할 수 있다면, 사회적 비난은 너무나 사소한 것이었다.
10대 소녀는 그길로 유부남 손을 잡고 달음질쳤다. 두 사람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피길에는 두 사람의 사랑을 지지해주는 동료들이 함께했다.
도피 일행은 저택 마당에 모였다.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스산한 여름에 걸맞은 내기를 했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게임. 우승자는 유부남과 불륜에 빠진 소녀, 18살의 메리 고드윈(혼전 성)이었다. 이야기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대(大)시인 바이런, 영국 작가 존 폴리도리, 유부남 애인이자 작가였던 퍼시 비시 셸리 이야기도 소녀의 스토리와 비교하면 밋밋했다. 금지된 사랑의 도피가 문학사 한 페이지를 새로 연 셈이었다.

혁명가의 딸, ‘젊은 혁명가’에게 빠지다
메리 고드윈의 자유분방함은 타고난 것이었다. 그녀의 부모부터가 자유의 최전선에 섰던 사람들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 자유와 인권에 누구보다 관심이 있는 영국 철학자였다. 혼외자를 낳고 미혼모로 살아갈 정도로 겁 없는 여성이기도 했다. 1792년 발간한 ‘여성의 권리 옹호’는 페미니즘의 초기 경전이었다. 메리는 무정부주의 운동가인 영국인 윌리엄 고드윈과 결혼했다.
혁명가와 혁명가의 만남, 호랑이는 호랑이를 낳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고드윈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엄마 메리는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딸 메리를 낳다 11일 만에 산욕열로 죽었지만, 아버지 윌리엄은 혁명가의 사고방식으로 딸을 양육했다. 윌리엄은 딸 메리가 15세 되던 해 그녀를 스코틀랜드 급진주의자 윌리엄 백스터의 집으로 보냈다.
인도네시아 화산 폭발로 생긴 ‘어둠’
칠흑 속에서 사랑의 도피…‘프랑켄’ 탄생
영국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집에 낯선 손님이 있었다. 젊은 청년 퍼시 비시 셸리. 그는 윌리엄 고드윈의 지적·정치적 추종자였다. 퍼시는 귀족 집안 자제였지만 집안 재산을 불우한 이웃에게 기부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피가 끓었다. 집안이 퍼시 셸리에게 금전적 지원을 끊으려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퍼시는 혁명가였고, 혁명가라는 사람들은 귀족의 밑동까지 도끼로 끊어낼 위인이었으니까. 먹고사는 걱정은 퍼시와 부인의 관계를 무너뜨렸고, 그는 존경하는 스승에게로 도망쳤다.
세상이 비웃어도, 한 소녀만큼은 퍼시에게서 ‘광휘’를 봤다. 윌리엄 고드윈의 딸 메리였다. 젊고 생기 넘치는 퍼시는 외모도 수려했던 데다, 메리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혁명가 그대로였다. 벼락처럼 다가온 이상형과의 만남. 두 사람은 혁명과 자유를 논하면서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사랑은 금방 들통이 났다.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은 ‘대노’했다. 금처럼 옥처럼 키운 딸이 유부남과 금지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니. 자신이 믿었던 제자와, 그것도 자신의 집에서. 퍼시는 더 이상 윌리엄의 집에 머무를 수 없었다. 1814년 6월 그는 런던을 떠나 프랑스로 또 한 번 떠났다.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손을 잡은 한 소녀, 메리 고드윈이 옆에 있었다. 메리의 의붓언니 클레어도 그들과 뜻을 같이했다. 그 길 위에서 메리는 퍼시의 아이를 가졌다. 그녀의 나이 고작 16살이었다.
메리는 아이를 품었지만, 퍼시는 갖지 못했다. 그는 정치적 혁명가였을 뿐만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급진적이었다. 하체가 누구보다 자유로운 인물이라는 의미다. 육체적 쾌락은 만인으로부터 얻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질투하고, 울분을 토하고, 분노에 몸을 떨면서도, 메리는 퍼시를 사랑했다.
불안정한 사랑이 아슬아슬 줄을 타던, 1816년. 그해에는 여름이 오지 않았다(year without a summer). 이상 기후였다. 인도네시아에서 폭발한 탐보라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와 가스가 햇빛을 차단해서다.
스산한 여름밤, 모닥불, 글재주로 가득한 문인들. 이야기가 잉태되기에 가장 완벽한 환경이었다. 퍼시, 메리, 클레어, 바이런, 폴리도리가 기괴한 이야기를 짓는 내기를 벌였다. 가장 괴상하고, 가장 흉측하며, 가장 괴기스러운 이야기에 상을 주자는 것. ‘프랑켄슈타인’을 지은 메리가 내기의 승자가 됐다. 창백한 얼굴의 젊은 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실험실에서 누더기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자 힘없이 꿈틀대며 되살아나는 광경이었다.

뱃놀이 나갔다 시신으로 돌아온 불륜남
‘프랑켄슈타인’은 이성을 통한 진보(계몽주의)가 낭만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메리의 회의가 녹아든 작품이었다. 괴짜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메리가 바라보는 퍼시의 모습이었다. 이성을 맹신하다 괴물을 만들어버린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자유와 이성만을 지고의 가치로 삼으면서 소중한 모든 것에 상처를 주는 퍼시는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성은 인간의 물질과 정신세계를 한층 더 고양해주는 촉매지만, 감정이 배제된 우상화된 이성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게 메리의 생각이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은 외친다. “나의 악행은 그토록 혐오스러운 고독을 내게 강요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오.” 어쩌면 이건 메리가 퍼시에게 그토록 전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지.
메리와 퍼시의 삶은 ‘프랑켄슈타인’처럼 기껍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1816년 퍼시의 아내 해리엇이 자살했다. 메리는 그해 퍼시와 결혼하고 아이를 연달아 낳았지만, 아이들은 오래 살지 못했다. 참척(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남)의 슬픔 앞에서 이성이니, 계몽주의니 하는 그 모든 사상은 공허하고 헛헛한 것이었다. 1819년 6월 메리는 일기장에 적었다.
“퍼시와 함께 산 5년 동안의 모든 일이 잊힌다면, 나는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1822년 7월, 퍼시는 메리 곁에 있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뱃놀이를 즐기러 나갔다. 폭풍우가 배를 덮쳤다. 며칠 후 해변가에서 퍼시의 시신이 발견됐다. 메리는 부들부들 떨면서 그의 죽음을 온몸으로 맞았다. 그리고 고향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던 퍼시의 부재로 그녀의 삶은 쓸쓸했지만 평화로웠다.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글을 썼고, 가벼운 연애를 했다. 1851년 2월, 아들과 며느리 손을 잡은 채, 그녀가 53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사인은 뇌종양. 그녀 방에는 죽은 아이들의 머리카락, 퍼시의 명저 ‘아도나이스’, 퍼시와 함께 쓴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아들은 관 속에 유품을 껴묻거리로 넣어주었다. 너무 사랑해서, 가장 상처를 준 것들과 함께한 마지막 평화였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5호 (2025.09.03~09.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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