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드라마 속 PPL 논란 …‘과잉 노출’에서 ‘맥락 중심’으로 [정교해진 PPL①]
비록 만년 꼴찌 팀이지만 믿고 따르던 감독이 다른 학교로 스카우트 되어 떠나버려 혼란에 빠진 한양고 럭비부 학생들. 새로 부임한 감독은 약물 복용 논란으로 오명을 안은 전직 스타 주가람. 선수들은 옛 감독을 찾아가지만, 돌아온 건 문전박대뿐. 결국 갈 곳 없는 마음으로 서성이던 이들은 주가람의 설득에 마지못해 학교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뒤편 광고판에 보이는 브랜드는 ‘트립닷컴’.
SBS 금토드라마 '트라이:우리는 기적이 된다'의 한 장면이다. 평범한 정류장의 배경처럼 흘러가지만, 이는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간접광고(PPL, product placement)다. 중요한 점은 이 광고 노출이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버스정류장에 흔히 붙어 있는 광고처럼 보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나갔고, 장면의 리얼리티를 높이는 효과까지 주며 목적을 달성했다.

주가람의 친구가 부상으로 럭비를 그만둔 뒤 운영하는 치킨집 역시 극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보편적 음식인 치킨은 퇴근 후 주가람과 배이지가 만나 속내를 나누는 아지트가 되기도 하고, 럭비부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한 음식으로 등장한다. 또봉이 통닭이 지원 제작에 나선 까닭이다. 특정 브랜드를 과도하게 드러내기보다 인물의 관계와 상황을 매개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며, 시청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출됐다. 이는 최근 드라마들이 즐겨 활용하는 맥락 기반 PPL 방식의 사례다.
한때 드라마 속 PPL은 작품을 망친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노골적이고 불편한 장치였다. 2021년 방영된 '지리산'은 3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하고도 초반부터 아웃도어 브랜드 의상이 도드라지게 등장했다. 하이라이트는 대피소에서 프랜차이즈 샌드위치와 콜라겐 음료를 소비하는 억지스러운 장면이었다. 당시 네티즌들은 해당 샌드위치 가게가 70km 떨어져 있다는 것을 찾아내며 조롱했다.

그럼에도 PPL은 제작 현장에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카드다. 제품의 이미지를 단숨에 끌어올리는 데 이만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입고 드나드는 옷과 가방, 손목의 시계,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곧장 화제가 되고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기업은 매출 상승을 얻고, 제작사는 수백억 원대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어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다만 이제 과거처럼 억지로 끼워 넣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OTT 플랫폼의 확산으로 광고 없는 몰입형 콘텐츠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방송사와 제작사도 단순 노출이 아닌 인물의 성격·직업·서사 전개와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PPL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직장인 캐릭터가 출근길에 찾는 커피 브랜드, 형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청춘 드라마 속 배달 음식처럼 맥락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시청자 반응도 변했다. 과거에는 "극을 망친다"는 불만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현실감을 살렸다"거나 "재치 있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OTT의 PPL 배제 기조가 국내 드라마 전반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는 브랜드 삽입이 배제되다 보니, 방송 드라마도 과거처럼 노골적인 노출을 꺼리게 됐다.
여기에 수십억 원대까지 치솟은 제작비와 광고주의 인식 변화도 맞물리면서, 단순히 화면에 제품을 비추는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결국 드라마 속 PPL은 과잉 노출에서 맥락 중심으로, 이야기의 설득력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한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PPL의 진화는 제작비 수급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풀어내는 동시에, 드라마의 완성도와 시청자 몰입도를 지켜내려는 산업의 자구책이다. 단순한 광고 삽입을 넘어, 맥락을 살린 노출이야말로 앞으로 한국 드라마 콘텐츠의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 중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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