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위기' 강릉 물 부족, 30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진재중 기자]
28일 기준 강릉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5.9%까지 떨어지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우려되고 있다. 저수율이 15% 이하로 내려갈 경우, 계량기 사용량을 75%로 제한하는 제한급수 2단계 조치가 시행될 예정인데, 비 소식도 들리지 않아 이번 주말 이후 시민들의 생활 불편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
|
| ▲ 오봉저수지 물이 가득해야 할 저류지가 메말라, 마치 폐광산에서 흘러내리는 폐수처럼 보인다.(2025/8/29) |
| ⓒ 진재중 |
|
|
| ▲ 강릉시내에서 본 오봉댐 저수율 15%대로 급감한 저수지, 제한급수 2단계 조치가 임박한 상황(2025/8/29) |
| ⓒ 진재중 |
강릉시민 손민수(71)씨와 최민숙(65) 씨는 요즘 일상에서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방송과 안내판을 통해 물 절약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매일 들려오고, 시민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언제 수돗물이 끊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
|
| ▲ “수돗꼭지에서 졸졸 흐르는 수돗물, 일상 속 물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
| ⓒ 진재중 |
|
|
| ▲ 강릉 시내에 내걸린 물절약 플랭카드 |
| ⓒ 진재중 |
물 부족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로 강릉은 1990년대부터 주기적인 가뭄과 단수 사태를 겪어왔고, 이에 따라 수자원 확보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02년 태풍 때 강릉은 나흘간 급수가 중단돼 전국 각지에서 긴급 식수를 공급받아야 했다. 이 사건은 자연재해가 불편을 넘어 도시 물 관리 체계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2009년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생활용수와 식수마저 고갈됐다. 당시에는 바닷물을 끌어와 산불을 끄는 극단적인 시도가 있었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다.
2014년에도 저수율이 급격히 낮아 제한급수 위기에 직면했으나, 집중호우 덕분에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비에 의존한 '운 좋은 탈출'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었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기록적인 겨울 가뭄이 찾아왔고, 바로 직전 해인 2024년 여름에도 저수율이 30% 이하로 떨어지면서 물 절약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이렇듯 강릉의 물 부족 문제는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태풍, 가뭄, 댐 저수율 위기, 기록적 강수 부족 등 수십 년간 되풀이된 역사는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준다. 물 부족은 하늘이 주는 재해가 아니라, 사람이 대비하지 않아 겪는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
|
| ▲ 강릉 남대천 “오봉댐에서 흘러나온 물이 남대천을 따라 동해안으로 흐른다.” |
| ⓒ 진재중 |
|
|
| ▲ 강릉 남대천 “오봉댐에서 흘러야 할 남대천, 극심한 가뭄으로 바짝 말라 있다”(2025/8/29) |
| ⓒ 진재중 |
그러나 책임은 지자체만의 몫이 아니다. 일부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는 방류의 부작용을 강조하며 강력히 반대했지만,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반대에만 머물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와 도암댐 운영의 직접적 당사자인 한국수력원자력㈜ 역시 근본적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한수원은 발전·수자원 관리와 환경 연구 자료를 제공했으나, 수질 오염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임시방편적 대응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결국 지자체, 시민단체, 정부, 한수원 모두가 각자의 책임을 회피한 채 근본적 대책 마련을 미뤄온 결과, 도암댐 방류 문제는 30년째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
|
| ▲ 도암댐 “발전을 위해 지어진 댐, 가동 중단 상태로 녹조가 가득하다.” |
| ⓒ 진재중 |
|
|
| ▲ 도암댐 “녹조로 뒤덮인 댐, 세월의 아픔과 심각한 수질 오염을 드러낸다.” |
| ⓒ 진재중 |
강릉 시민사회는 반복되는 물 위기 속에서 행정의 근시안적 대응에 분노하고 있다. 역대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실효성 있는 장기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사태 발생 후 임시 급수 대책 등 땜질식 대응에만 집중해 왔다. 기후위기와 가뭄은 외부 요인이지만, 문제를 심화시킨 것은 관리 부실이었다.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는 댐 관리의 중요성을 분명히 경고했지만, 강릉시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오봉댐과 도암댐 등 주요 상수원 관리의 허술함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면서 시민들은 매번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2009년, 강릉의 강수량은 평년의 14%에 불과했고 속초 역시 15%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두 도시는 다른 길을 걸었다. 속초는 지하댐과 급수 대책을 통해 위기를 대비했지만, 강릉은 여전히 뚜렷한 대응 체계를 마련하지 못해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강릉시민 조용원(69) 씨는 "여름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물 부족"이라며, "역대 시장들은 호텔이나 아파트 건축 등 개발에만 매달렸고, 시민에게 가장 필요한 물 문제는 외면했다. 표만 의식한 건설 위주의 행정이 지금의 사태를 불렀다"고 비판했다.
|
|
| ▲ 강릉 오봉댐 “28일 기준 저수율 15.9%, 이번 주말 2단계 제한급수 시행 위기에 처해있는 오봉댐.”2025/8/29) |
| ⓒ 진재중 |
|
|
| ▲ 오봉댐 “닭목령과 삽답령에서 합류하는 물줄기를 내려다보는 산허리 풍경, 계곡의 물길과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2025/8/29) |
| ⓒ 진재중 |
강릉이 기록적인 가뭄 속에서 제한급수를 시행하는 동안, 불과 60㎞ 떨어진 속초는 안정적인 급수를 유지하고 있다.
속초는 과거 여름철마다 물 부족을 겪으며 1990년대 이후 8차례나 제한급수를 경험했다. '물 부족 도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던 속초는, 반복된 위기 속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선택했다.
설악산 쌍천 계곡에 지하댐을 건설해, 모래층 속에 숨어 있던 물을 저장하는 방식이다. 1998년 첫 지하댐이 건설된 데 이어 2021년 제2지하댐까지 세워지면서, 속초는 극심한 가뭄에도 최소 3개월 이상 버틸 수 있는 비상 식수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속초시는 지하댐 건설 외에도 지하수 개발, 관로 확충, 노후 수도관 교체 등 종합적인 수자원 관리를 병행했다. 세심한 관리를 통해 하루 2000톤에 달하는 누수를 줄이고 유수율을 크게 높였다. 덕분에 올여름 가뭄 속에서도 제한급수는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오히려 '물 축제'를 개최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속초 사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물 문제는 단순히 강수량에만 좌우되지 않는다. 같은 동해안, 비슷한 기후 조건에서도 어떤 도시는 갈증에 시달리고, 다른 도시는 여유를 보이는지는 결국 준비와 투자에 달려 있다. 즉, "가뭄은 하늘이 주는 재난이지만, 물 부족은 사람이 만드는 재난"이라는 말처럼, 속초는 재난을 막는 힘이 사람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물 문제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충분히 예측 가능한 위기라는 점에서 강릉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윤중경 전 한국국민안전산업협회 회장은 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해안 도시는 30여 년 전부터 물 부족 문제를 반복적으로 겪어왔지만, 대응은 늘 임시방편에 그쳤다. 해마다 위기를 겪고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문제로 치부해 왔다"며 "이제는 종합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물 부족은 동해안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며, 기후 변화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속초는 과거 위기를 계기로 대응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강릉은 여전히 논의만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유종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강릉뿐 아니라 동해안 지자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물 정책을 준비했어야 했다"며 지형적 특수성을 지적했다. 그는 "백두대간을 축으로 동해로 흐르는 물은 급경사를 이루어 저장 기능이 떨어진다. 따라서 지하댐이나 저수지를 조기에 확보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
| ▲ 속초시 “설악산과 청초호가 어우러진 속초 전경, 도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다.” |
| ⓒ 진재중 |
|
|
| ▲ 설악산 속초는 설악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쌍천에 지하댐을 건설 물부족을 해결하고 있다 |
| ⓒ 진재중 |
시는 하루 1만8000t의 생활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연곡 지하수저류댐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공사는 총사업비 250억 원을 들여 오는 2027년까지 준공할 예정이다. 시는 또 사업비 497억 원을 들여 노후된 연곡정수장 현대화 사업도 추진한다.
|
|
| ▲ 강릉 연곡천 강릉시는 물부족 대체방안으로 연곡천에 연곡 지하수저류댐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
| ⓒ 진재중 |
|
|
| ▲ 연곡천 오대산과 소금강에서 흐르는 수량이 풍부해 강릉시에서 지하댐을 건설을 추진 중에 있다 |
| ⓒ 진재중 |
강릉의 물 부족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행정의 책임뿐 아니라 시민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순히 시정을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지속 가능한 수자원 정책과 인프라 확충에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민과 정부가 함께 절약 정신을 실천하고 친환경적인 대체 수자원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윤중경 회장은 "물은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공급에는 한계가 있고 시민들의 물 사용 의식은 여전히 미약하다"며, 시민들이 물을 '우리의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인식 전환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임승달 박사는 물 부족을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만든 재난이라고 규정하며, 강릉시는 더 이상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행정은 책임을 인정하고 근본적인 변화에 나서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물 부족 도시'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
| ▲ 강릉시와 경포호수 “호수와 바다, 산과 문화가 어우러진 강릉, 풍부한 자연과 관광 매력으로 찾는 이들을 사로잡는 동해안 명소다.” |
| ⓒ 진재중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무것도 아니라던 김건희, 구속 기소...역대 영부인 중 처음
- 임은정 "참담한 심정"... 정성호 장관 검찰개혁안 작심 비판
- 이재명 첫 예산안 728조, '진짜 성장' 시험대 올랐다
- 일당 못 받은 일용직 노동자의 먹먹한 자수
- "오늘 시멘트 5포 푼다" 모녀의 집수리 한번 보실래요?
- 애들 사춘기부터 남편 갱년기까지 이 스킬 하나로 버텼다
- 특검,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한덕수 기소... "헌법 책무 다하지 않아"
- 김건희와 같은 날, '집사' 김예성 기소... 윤석열·명태균도 예고
- 이배용, 결재 안 받고 휴가... 이 대통령 "발언 기회 주려 했는데"
- 이 대통령, 검찰개혁 논란에 "내가 토론회 주재할 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