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 부탁으로 남긴 글씨, 손바닥 지장에 눈길이 갑니다

박수정 2025. 8. 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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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서울 강북구 수유동 언덕 끝 작은 벽돌집을 찾았다.

대문에는 '문익환 통일의 집'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집은 크지 않았지만 방마다 치열한 시대와 맞섰던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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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남긴 집, '문익환 통일의 집'을 찾아서

[박수정 기자]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서울 강북구 수유동 언덕 끝 작은 벽돌집을 찾았다. 대문에는 '문익환 통일의 집'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곳은 늦봄 문익환 목사와 부인 박용길 장로가 함께 살며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뜻을 키워온 삶의 터전이다.

집은 크지 않았지만 방마다 치열한 시대와 맞섰던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었다. 안방에는 손때 묻은 설교 원고와 신문 스크랩북, 강연 원고가 남아 있었고, 낡은 테이프 레코드와 함께 쌓인 자료들은 그가 단순한 목회자나 시인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가장 치열한 현장을 온몸으로 살아낸 인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벽에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국은 하나다"라는 문익환 목사의 붓글씨가 걸려 있었다. 꾹꾹 눌러 쓴 먹빛은 여전히 힘차게 살아 있었고, 그의 굳센 신념을 지금도 증언하는 듯했다. 이 글귀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평생 그가 몸으로 붙잡으려 했던 신념이자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유언 같은 말이었다.
▲ 늦봄 문익환 목사의 붓글씨 유묵 문익환 목사가 남긴 붓글씨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의 시 <서시>의 한 구절을 옮긴 것으로, 그의 삶과 신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옆에는 생전의 미소 짓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함께 놓여 있어, 민주와 통일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늦봄'의 정신을 지금도 전하고 있다.
ⓒ 박수정
유물이 들려주는 목소리

마루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문익환, 박용길 부부의 발바닥을 본떠 만든 부조작품이다. 1990년 시국강연 차 지방을 찾았을 때 인연을 맺은 이가 두 사람의 발을 본떠 작품으로 남긴 것이다. 세월의 주름이 고스란히 패인 발바닥은 거리와 광장을 끝없이 걸어 다니며 함께했던 민중과의 동행을 떠올리게 했다. 그 발자국은 여전히 이 집 안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며 묵묵히 말을 건넨다.

또 다른 방에는 윤동주의 시 <서시>를 문익환이 옥중에서 쓴 붓글씨로 만날 수 있다. 전주교도소 수감 시절, 교도관의 부탁으로 옮겨 적은 작품이었다. 감옥이라는 공간, 자유를 빼앗긴 몸, 그러나 시를 통해 더 깊어진 영혼의 울림이 붓끝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손바닥 지장을 찍어 남긴 글씨에는 억압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이 배어 있었다.

박용길 장로의 손재주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녀가 직접 떠서 조카에게 선물했던 초록빛 뜨개 원피스, 문익환 목사의 시를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붓글씨, 작은 생활 기념품들까지. "함께 싸우되 따뜻하게 돌보는 삶"을 일상에서 증언해 주고 있었다.
▲ 문익환 통일의 집 입구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자리한 '문익환 통일의 집' 입구 전경. 늦봄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가 1970년부터 살았던 작은 벽돌집으로,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다. 현재는 기념관으로 운영되며, 그의 삶과 정신을 기억하고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 박수정
기억은 오늘의 질문이 된다

문익환 목사는 전태일의 분신 소식을 접하며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사람답게 살 권리"를 외치며 불꽃이 되었다면, 문익환 목사는 분단의 장벽을 넘어 "하나의 조국"을 외치며 평생을 헌신했다. 한 사람은 청년 노동자의 자리에서, 또 한 사람은 목회자이자 지식인의 자리에서 시작했지만, 두 사람의 실천은 결국 "인간다운 세상"이라는 같은 지점에서 만났다.

빗방울에 젖은 정원과 낡은 마루, 작은 방마다 놓인 유물들은 단지 과거를 보여주는 전시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와 맞선 사람들의 온기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해지는 질문이었다. 민주주의와 통일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발바닥으로 걸어낸 길, 먹빛으로 남긴 문장, 그리고 일상에서 몸소 증명했던 삶의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통일의 집은 말해주고 있었다.

집을 나서며 다시금 느꼈다. 좁은 공간이지만, 이곳은 거대한 기록관이자 살아 있는 기억의 장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도 우리에게 속삭인다.

"희망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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