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으로 살아남기] 애들 사춘기부터 남편 갱년기까지 이 스킬 하나로 버텼다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송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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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심채 지인이 텃밭에서 잔뜩 따다 준 공심채 |
| ⓒ 송유정 |
"공심채도 조금 드릴까요?"
텃밭을 가꾸는 지인의 다급한 요청이 있었다. 지인의 '조금'은 내가 아는 그것과 달랐다.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자라나는 텃밭 작물은 이미 지인 혼자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인을 따라 텃밭에 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수확해 집으로 돌아왔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양푼 두 개를 가득 채운 고구마줄기와 공심채를 보면서 심호흡을 했다. 만만치 않은 양이었지만 내게는 이들을 해결할 오래된 취미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주부이자 아내, 엄마로 살면서 나를 더 단단하고 깊은 존재로 만들어준 취미는 바로, '담그기'다.
장, 장아찌, 김치 등 '담그다'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것들을 다 담그고 있다. 조폭 영화에나 나올 법한 끔찍한 표현이 아니라, 식탁, 인간관계, 삶 특히 나의 내면을 풍요롭게 해주는 취미이다. 담그기의 가장 큰 효용은 뭐니 뭐니 해도 풍성해지는 식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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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월에 담그는 된장 아파트지만 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서 된장은 잘 익어간다. |
| ⓒ 송유정 |
철마다 나오는 각종 채소는 김치, 장아찌 담그기를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두릅, 마늘, 양파, 고추, 오이, 대파, 쪽파, 매실, 배추, 무, 깻잎 등 대부분의 채소가 김치, 장아찌로 변신 가능하다. 김치 한두 종류와 장아찌 한두 개만 있으면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공기를 비울 수 있다. 과도한 나트륨 섭취를 막기 위해 염도를 낮춰 심심하게 담그는 게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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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추김치 배추 통김치를 담글 때면 노란 배춧잎에 속을 싸먹는 재미가 있다. |
| ⓒ 송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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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분한 된장 맛있게 익은 된장은 마음을 나누기에 좋은 선물이 된다. |
| ⓒ 송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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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마줄기김치 지인의 밭에서 따온 고구마줄기로 김치를 만들었다. |
| ⓒ 송유정 |
고독을 즐기기 좋은 시간
요즘 들어 느끼는 담그기의 또 다른 효용은 고독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장성한 자식들과 여전히 바쁜 남편 덕에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칫 고립감과 외로움에 울적해질 수도 있겠지만, 담그기를 하다 보면 혼자 있어도 분주해지고 에너지가 생긴다. 언제부터인가 점점 혼잣말이 늘어난 탓에 문밖에서 누군가 몰래 엿듣는다면 필시 서너 명은 모여 있나 보다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가만히 있어보자~~~ 고춧가루가 어디 있더라~~?"
"여기 있잖아~~ 꼭 이런다니까? 코앞에 두고도 못 찾아요~"
"으이구으이구 넌 왜 자꾸 이렇게 흘리냐~~? 그렇게 조심 좀 하면서 일하래도 참 말을 안 들어요."
"어머 어머 어머. 이번 김치 왜 이렇게 맛있어? 또 먹어 또 먹어. 맛있을 때 먹어야 돼."
"보자 보자 보자~ 이번에는 뭘 또 담가볼까나~~"
지친 나를 달래주고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는 다른 방법들도 많다. 책을 읽거나 따스한 볕을 쏘며 걷는 것, 지인들과 수다 떠는 것, 풍경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유명한 식당에서 남이 해준 밥을 먹는 것, 가족들과 여행을 가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며 추억을 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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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심채 장아찌 지인이 따다 준 공심채와 고추로 만든 장아찌 |
| ⓒ 송유정 |
결혼 25년 동안 계속되어 온 취미 덕분에 날 섰던 신혼 시기, 자식들의 사춘기, 남편의 갱년기를 무사히 지나왔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담그기 스킬 하나면 어떤 근심, 걱정, 고난, 시련도 다 담가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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