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 사건 파헤친 무관, 그가 태어난 곳에 남은 길

이완우 2025. 8. 2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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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가림리 은천마을 역사 문화 탐방 여행

[이완우 기자]

 진안 가림리 은천마을 가림숲 작은도서관
ⓒ 이완우
지난 26일 이른 아침, 전북 진안 마이산을 동네 뒷산으로 둔 가림리 은천 마을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울창한 마을 숲이 개울을 보이지 않게 가리고 있었다. 마을 숲은 이 마을의 오래된 비보 숲이었다.

마을 숲 어귀에 아담한 팔작지붕 기와집(은림정) 한 채는 운치 있는 숲속의 작은도서관이다. 조선 시대의 품격 있는 어느 서실 같은 느낌이었다. 기와집 추녀에는 풍경이 비와 바람에 흔들리며 청아한 음향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 마을은 시냇물이 마을 아래 땅속으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숨을 은(隱)자를 써서 은천(隱川)이라고 했단다. 이후에 은천(銀川)이 되었다. 이 마을 지명이 풀어야 할 첫 번째 수수께끼였다.

마을 이름의 숨은 비밀

시냇물이 마을 땅속으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았다면, 땅속에 동공(洞空)이 있거나 견실하지 않은 지형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마을은 튼실한 기반에 터 잡기 마련이었다.

이 가림리 은천 마을은 1km 북쪽에 금남호남정맥을 넘어가는 분수령인 사루고개(363m)가 있다. 가림리는 섬진강 수계이고 고개 넘어 반월리는 금강 수계이다. 이곳 은천 마을 지명에는 금남호남정맥 분수령에 가까운 지형의 의미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18세기 말 문헌에 '가림천리(佳林川里)'라 표현된 이 마을 이름에 해답이 있겠다. 섬진강과 금강의 수계를 가르며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 우리말 '가른 내'가 원형이라고 본다. '가른 내'는 지역 방언으로 '가린 내'. '가림 내'로 발음되지 않았을까? 이 '가림 내'를 한자로 음차하면 가림천(佳林川)이 가능하다. 가림천은 은천(隱川)으로 바뀔 수 있다. 은천(隱川)을 미화하면 은천(銀川)이다.
 진안 가림리 은천마을 가림숲
ⓒ 이완우
줄사철나무는 사철나무와 닮았다. 줄사철나무와 사철나무는 노박덩굴과에 속한다. 사철나무는 홀로 서는 관목이고, 줄사철나무는 나무나 암벽에 잔뿌리를 내리며 붙어서 타고 올라가는 것을 즐겨한다. 줄사철나무는 사철나무보다 노박덩굴과의 특성을 간직한 원시 형태로 보인다. 이 줄사철나무의 자생 북방한계선이 이곳 금남호남정맥 아래의 은천마을과 마이산 지역이다.

마을 앞의 은천 삼거리에서 탄곡마을을 지나 백운면 방향의 도로에 '장화홍련로'라는 명예 도로명이 지난해 6월에 부여되었다. 이곳 가림리 탄곳마을은 조선 중기의 출중한 무인 관리인 전동흘(1610~1705)의 출생지이다. 그는 중년 시절에 평안도 철산 부사(1658년)로 부임하였는데, 어떤 자매의 억울한 살해 사건 전모를 현명하게 밝혀냈다.

조선 시대에 중대한 형사 사건이 발생하면, 무원록에 명시된 검시 법규와 시체의 상처 판별법을 활용하여 사인을 규명하였다. 억울함을 없게 하는 책이라는 이 무원록은 지방 수령이나 형리들이 형사 사건에 활용한 부검 전문서로 법의학서였다.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은 17세기 중엽에 평안도 철산부에서 발생한 자매 관련한 형사 사건을 소재로 신원 설화, 환생 설화 등 흥미로운 허구를 가미하여 창작되었다. 고전소설 속 인물인 철산 부사 정동우의 실제 모델이 이 마을 출신의 철산 부사 전동흘이라고 본다.

마을 뒤편에서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은 진안고원길이다. 탑재를 넘어 1.5km 산길을 걸으면 용마산, 투구봉과 나도산 등을 바라보며 탑사로 이어지는 마이산으로 가는 오롯한 옛길이었다. 마이산이 관광지로 개발되기 이전에는 이곳 은천마을 앞에서 버스를 내려, 탑재를 거쳐 마이산으로 갔다. 비가 내려서 어둑한 숲속의 마이산 옛길을 나 홀로 걷기는 포기하였다.
 진안 가림리 은천마을 사자골 마이산 전경
ⓒ 이완우
은천마을 옆 계곡이 사자골이다. 금남호남정맥이 숫마이봉으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나도산, 투구봉과 용마산으로 파생되는 산줄기가 아담한 골짜기를 이루었다. 사자골로 들어가는 농로에서 산줄기 너머에 솟은 마이산을 오래 바라보았다. 비가 내리다 개면, 안개가 흰 구름처럼 몽실몽실 숲에서 피어오른다.

우산을 받고 서서 마이산이 비, 안개, 구름과 함께 변화하는 풍경 바라보았다. 비가 멈추자, 암마이봉 상부 남쪽 비탈면에 타포니 지형과 색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구름 사이에 햇빛도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뚜렷한 목적지와 여행 시정표가 없이 여유롭게 빗속에 오래 머무는 시간도 운치가 있었다.

진안 창작공예공방을 찾았다. 이곳은 옛 은천초등학교 교실과 운동장이었다. 학교 교문과 현관 뒷문에서 마이산 두 봉우리가 사자골 산줄기 너머로 가깝게 보였다. 이곳 폐교된 부지에 진안 창작공예공방이 자리했다.
 진안 가림리 옛 은천초등학교, 진안 창작공예공방 전경
ⓒ 이완우
진안 창작 공예공방에서 만난 작가들

진안 창작공예공방에는 비즈공예, 도예, 옹기, 원예공예, 가죽공예, 민화, 금니금박, 서각, 한지와 목공예 등 여러 예술 장르의 작가들이 작업실을 열고 입주하여 있었다. 지역민과 방문객들이 공예 강습과 체험 등에 참여할 수 있다. 전시실에는 입촌 작가들의 작품이 상시 전시되었다.

은천초등학교 교실이었던 본관 건물에 목공예실이 있었다. 무형유산 소목장 이수자인 윤호상 작가가 현재 작업 중인 판재 조각 작품을 보여주며 설명하였다. 작업 중인 작품의 사진을 기자가 찍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작가가 조각 중인 작품은 불교의 심우도였다. 사찰의 벽화로 그려지는데,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소를 찾아가는 10단계로 비유하며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작가는 이 심우도의 열 단계 과정에 미륵이 참여하는 한 단계를 더하여 작품을 완성하려 한다는 구상이었다.

윤호상 작가는 불교 미술품에 전승되면서, 변하지 않은 전통의 원형과 상징을 찾고 있다. 그 원형과 상징이 표현된 불교 예술품을 고찰하여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새롭게 창작으로 채우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먹감나무를 작품의 목재로 즐겨 쓴다. 벼락 맞은 200년 수령 먹감나무의 두툼한 판재 원목 여러 점이 작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섬세하게 여러 장 꽃잎이 겹쳐서 피어 있는 연꽃 형상을 투박한 목재로 조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작업실에 커다란 연꽃 두 송이 목재 작품이 향기롭게 한들한들 피어 있었다. 밤나무가 바닥에 출렁이는 수면처럼 놓여있었다. 고전소설 심청전의 한 장면으로, 바다에 피어나는 연꽃으로 심청이 환생하는 이미지라고 한다. 작가의 열정적인 예술 창조의 인상적인 현장을 견학하였다.
 파도와 일출, 임채순 작가의 서각 작품
ⓒ 이완우
옛 학교 건물 현관이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었다. 세찬 파도를 배경으로 태양이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일출 장면, 역동적이다. 힘찬 파도가 새로운 태양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하다. 서예와 조각이 결합한 전통 예술 서각(書刻), 임채순 작가의 작품이었다.

임채순 작가의 일월오봉도 서각도 강렬하였다. 마이산이 바라 보이는 옛 은천초등학교에서 마이산의 정기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작품이었다.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등 단단한 목재에 조각칼, 망치와 정을 다루며, 글자와 그림을 한 획 한 점 정성껏 새기는 과정은 수많은 시간이 담겨가는 수행처럼 의미와 뜻까지 새겨진다고 한다. 이 두 점의 대형 서각 작품은 작가와 서각회 회원이 함께 제작했다니 의미가 더 크게 느껴졌다.

1억 년의 비바람을 견디는 마이산은 그 기상과 문화가 의연하다. 수수께끼 같은 마이산의 여운을 찾아서 마이산에서 가장 가까운 은천마을을 찾아 여행하였다. 은천마을 옆 사자골 계곡과 옛 은천초등학교에서 바라보이는 마이산. 비, 안개와 구름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마이산 풍경은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를 간직한 듯 여전히 신비로웠다.
 마이산 일월오봉도, 임채순 작가의 서각 작품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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