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산불 등 잦은 기후재난, 대응 틀 바꿔야 산다 [소셜 코리아]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고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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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림재난 대응에서 헬기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헬기를 통한 사후 진화만으로는 한계가 역력하다. 필자가 산림항공본부장 시절 촬영됐다. |
| ⓒ 고기연 제공 |
기후위기로만 설명 안 되는 반복되는 재난
산불과 산림관리와 관련된 논쟁을 살펴보면, 임도, 헬기의 효용성, 간벌(숲가꾸기)의 효과 등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대부분 현장의 산불위험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 논쟁이다. 임도와 진화헬기가 오히려 불을 키운다는 일부 환경생태론자들의 주장도 있다.
이는 현장에서 피와 땀을 흘리는 진화대원들의 사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향은 현장에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진화대원, 임업인, 주민들 이야기를 끈기있게 들으면 생산적인 토론이 될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에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기후위기는 자명한데 대응 체계는 열악하다. 기후 재난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당국은 사후대응과 현황을 중계방송하기에 급급하다. 산청군의 산촌 주민들은 봄철 대형 산불에 이어 지난달 물난리에 따른 산사태까지 이중고를 겪었다.
제2의 영남산불로 인한 피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들리는 '기후가 문제다'라는 말은 너무나 손쉽고, 때로는 무책임하다. 우리가 겪는 재난은 단지 기후 변화로만 설명할 수 없다. 안전한 지역공동체와 책임 있는 자연환경 관리 체계의 부재로 인해 반복되는 피해가 커지고 있다. 대응 시스템에 대해 살펴보고 성찰할 때다.
한계에 부딪힌 사후 진화 중심 대응
우리나라의 산불 대응은 1996년 고성 산불 이후 30년 가까이 '장비·인력 확대' 방침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5년에도 봄철 미국 나사(NASA)의 인공위성 사진에도 선명하게 포착될 규모로 피해가 컸던 대형산불 이후, 국회에서는 진화헬기 6대 도입을 위한 예산이 추경에 반영되었다. 대당 수백억 원에 달하는 장비를 또 추가한 셈이다.
필자는 산림재난업무를 수행해 오면서, 산림청에서 마지막 보직으로 산림항공본부장을 맡았기에 헬기의 장점과 한계를 잘 안다. 산림재난 대응에서 헬기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헬기로 모든 산불을 충분히 끌 수는 없다. 산불은 '연료'(낙엽, 마른 가지 등 숲에 집중된 가연물) 때문에 발생하고 확산된다.
우리나라 산림은 1970년대 조림된 동일 연령대 침엽수로 빽빽하다. 이를 관리하지 않는 한 어떤 대응도 근본 대책이 되지 못한다.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진화 임무를 맡은 조종사의 말을 인용해 보자. 2023년 4월 충남 홍성 산불 때 지휘를 맡았던 영암산림항공관리소의 기장 이야기이다.
진화 임무를 마치고 일몰 후 착륙하면서 "연료들이 너무 많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헬기로 물을 뿌려도 진화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2021년 기준 우리 산림의 평균 임목 축적량은 168.7㎥이다. 이는 1ha 면적에 있는 나무의 양으로, 2011년의 130.4㎥에서 10년 만에 30% 증가한 셈이다. 산림관리 없이는 산림위험 감소가 어렵다.
특히 경사도 높은 산림 지역은 산불 확산 속도가 더욱 빠르며, 기후조건에 따라 예기치 않은 양상을 띠기도 한다. 지난 3월 경북 의성에서 발화한 영남권 산불은 강풍을 타고 산악 지형을 통과하면서, 진행 방향(동쪽) 쪽에 위치한 여러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2023년 4월 강릉 경포대 산불은 발화 후 6시간 동안 강풍으로 헬기가 날지 못하다가 비가 온 이후에야 진화되었다. 바람 속도가 초속 15미터 이상인 경우에는 헬기 임무 수행이 제한된다. 헬기의 안전 운항 차원에서다(오해 없기를 바란다). 매년 평균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이 500건이 넘는데 이중 70% 이상은 헬기에 의해 진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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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28일 오후 경북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 산불 피해 현장. |
| ⓒ 권우성 |
임도관리나 연료제거 같이 사전에 관리해야 할 일들은 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작 예산은 현장에 투입되어야 하지만, 필요한 사업들은 논쟁 속에서 발목이 묶인다. 산불진화는 계획과 의지만으로 되지 않고 사전에 현장 여건을 얼마나 갖추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재난관리법상 산불이 발생할 경우 현장의 지휘권자는 시장, 군수, 구청장이다. 지역현황 파악과 관내 자원 동원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산불주관기관(산림청), 참여기관(소방청 등) 등이현장 대책본부가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운용을 각자 행사하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는 상황 판단과 자원 배분이 지연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는 강원·경북 등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사례들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다. 사무실에 위치한 컨트롤타워는 현장을 통제하기보다는, 법적 지휘권자인 지자체장의 임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응 과정에서 일관성이 유지되고, 참여기관 간 역할 분담이 명확히 나뉘도록 중앙기관은 지원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위험 알고서도 공유하지 않은 이유
산사태 같은 자연재해 위험정보가 건축허가 기준이나 주민 안내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피해 위험에 노출되는 사례도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다. 위험정보가 기관간 공유되지 않고 시민에게 전달되는 체계가 제도화되지 않은 것이 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다.
산불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연료지도를 통해 고위험 지역을 사전 식별하고 관리하는 것인데, 미국이나 호주처럼 연료 정보를 기반으로 정책을 설계하면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국도 위성기반 정보와 현장 DB를 통합한 재난위험예측시스템을 한층 정교하게 개발해야 한다.
대외적으로 개방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성 있는 정보를 구축하고, 그 이후에는 위험예측 정보를 지역사회와 적극 공유해야 한다. 또한, 위험 정보를 활용한 마을 단위 대피 계획이나 지역 맞춤형 훈련도 정례화되어야 한다. 실질적인 생존 역량은 정보의 정확성과 전달 구조에서 출발한다. 공동체 단위의 재난 대응력이 강화될수록 생명과 재산의 피해는 줄어든다.
산림재난도 결국 지역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행정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올해 4월 발생한 대구산불과 같은 도시형 산불(Wildland-Urban Interface Fire)은 미국과 호주에서 오래전부터 민감하게 다뤄지는 산불 유형이다.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계획안에는 주요 재난 대응과 관련해 산림 재난 위험을 사전에 평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산불위험을 줄이기 위해 생활권 수목을 적시에 벌채하겠다는 계획과 더불어 관심을 가지고 추진해야 할 부분이다.
주민 참여를 통한 예방
진화만으로는 산불 확산을 막을 수 없다. 벌기령(나무를 벌채할 수 있는 적정나이)에 다다른 목재, 고사목, 덤불은 다 연료가 된다. 숲 주변 주택이나 시설도 탈 수 있는 연료이다. 이중 목재는 가치 있는 자원이다. 산업용재로 활용하고, 지역경제와 연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필자가 2014~15년 산불방지과장으로 재직할 당시 '소각 산불없는 녹색마을' 사업을 기획했다. 주민이 직접 불법 소각을 줄이고 위험지대를 정비하고자 한 구상으로 예방의 주체를 주민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미국의 주민 중심의 산불 예방 프로그램(Firewise), 프랑스의 연료제거의무부과(OLD, Obligation Légale de Débroussaillement) 제도처럼, 주민의 역할을 제도화한 해외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연료지도를 활용해 위험지역을 구체화하고, 사전제거 지역을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정보 기반 예방체계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 정교해질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주민이 주체가 되는 예방활동 모델을 지역별로 구축하는 것이다. 농·산·촌 공동체를 중심으로 연료제거 활동, 감시체계, 조기경보망을 자발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교육 지원을 해야 한다. '주민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재난 대응의 핵심 주체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재난관리 정책의 출발점이다. 주민은 산불의 발화자가 될 수 있지만, 조기 신고 및 진화의 해결자로 역할 역할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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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3월 11일 경북 울진 지역 산불이 일어났을 때 산림 당국이 야간 산불 대응에 들어간 모습 [산림항공본부 제공] |
| ⓒ 연합뉴스 |
재난 위험은 오히려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드론, AI, 무인기, 위성정보 등 다양한 기술의 활용 가능성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실증하고 재난관리에 적용할 수 있는 실행 시스템만 갖추면 된다. 재난 대응 분야는 기술혁신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있다. 관료시스템이 기술도입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혁신은 멈춘다. 드론의 경우 그동안 항공교통당국에서 안전을 이유로 높은 장벽을 세워서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실현을 제한했다. 미국과 중국에서 활용하는 기술도 국내에서는 개발이 어렵다. 이제는 재난관리분야에서 공공성과 민간 기술력을 접목할 수 있는 운영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바꿔야 할 것은 장비가 아니라 패러다임
반복되는 재난, 그러나 반복되어선 안 되는 피해. 그 차이는 '패러다임'에서 비롯된다. 지난 추경과 국정운영 계획안을 보면, 주요 재난대응에서 여전히 장비와 인력 투자가 앞자리를 차지한다. 이는 낡은 패러다임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성장 전략 역시 저성장과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구조적 전환을 추진하는데 미흡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정책 수단에 자원을 쏟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 혁신과 지역 주도, 민간과 기술의 결합하는 유능한 패러다임으로 과감하게 전환하는 것이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말했듯, 변화는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혁신과 실행의 연결에서 시작된다.
산불 대응도 마찬가지다. 사전 예방을 강화하고, 대형화하기 전에 평소에 할 수 있는 조치를 현장에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 핵심은 연료물 관리로 산불발생과 확산 메커니즘에서 사람이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기상과 기후는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인공림과 생활권 주변 숲의 밀도 조절은 목재 자원화라는 부가가치도 있어 산주의 자발적 참여가 가능하다. AI와 무인기술을 활용한 감시·진화 체계의 혁신으로 산불 조기발견과 신속 대응의 빈틈을 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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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기연 |
| ⓒ 본인 제공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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