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걸 10초도 지켜보지 못했다... 잔인한 진실

양민영 2025. 8. 2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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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떼라의 유튜브 생존기] 짧음을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 숏폼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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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수가 취미인 40대 평범한 여성이 일본에서 열린 아시안 챔피언십 주짓수 대회에 다소 무모하게 참가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여성의 몸과 운동을 텍스트로 전달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러한 경험을 다시 글로 전달한다. 그동안 출전한 두 번의 대회에서 이겨본 적이 없으니 1승에 도전하는 것이 관전 포인트. <편집자말>

[양민영 기자]

 촬영. 자료사진.
ⓒ 연합=OGQ
때때로 시간은 매우 상대적이다. 몸을 널빤지처럼 평평하게 만들어 엎드린 자세로 플랭크 운동을 해보라. 20초가 20분처럼 느껴질 것이다. 1분짜리 영상인 숏폼을 처음 만들 때도 그렇다. 1분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장면을 욱여넣을 수 있는 긴 시간이다. 또 어떤 1분은 숨쉬기보다 빈번하게 지루함이 밀려온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한동안 숏폼만 고집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긴 영상을 만들 자신이 없었다. 영상의 길이가 길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고 재미를 주자면 음악, 내레이션, 편집 효과를 더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스킬이 부족했다. 이럴 때 분량을 1분으로 제한하면 확실히 부담이 덜했다. 아무리 초보라도 1분은 어떻게든 채울 수 있으니까.

숏폼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나부터도 긴 영상을 보지 않는 것도 이유였다. 옛날엔 러닝 타임이 70분 남짓인 영화도 너무 짧다고 아쉬워했는데 지금은 영상의 길이가 5분만 돼도 길다는 생각부터 든다. 5분이 뭔가, 내가 원하는 정보, 내 뇌가 원하는 도파민을 얻을 수 있는 결정적인 장면 하나만 보고 싶다.

영상만이 아니라 시대가 짧음을 곧 미덕으로 여긴다. 짧음은 '간결하다', '압축적이다', '강렬하다' 등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매력적인 건 따로 있다. 시간을 들이는 데 인색한 현대인에게 시간을 덜 쓰게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매력이다. 영화도, 책도, 신문 기사도 요약본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반대로 긴 영상은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시간 낭비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그 시간에 짧은 영상을 여러 개 만들고 소비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다. 이렇게 보면 짧아서 좋은 점은 많아도 짧아서 나쁠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영상을 만들면서 소비하기도 하는 나 역시 숏폼에 빠져들었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영상을 조회한 게 시작이었다. 첫 영상을 업로드할 때 조회수에 대한 기대치는 극단적으로 낮았다.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며 서너 개의 영상을 올렸는데 그중 하나의 조회수가 1천 회를 넘겼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은 크리에이터가 만족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조회수, 시청 시간, 시청자를 분석한 통계가 이렇게 말한다. '1분도 길다, 더 분발하라!' 1분이 긴 건 틀림 없는 사실이다. 내가 올린 영상을 조회한 사람의 대부분은 9초쯤 머물다가 검지 하나로 스크린을 밀어버렸으니까.

숨돌릴 틈도 없다

그러니까 조회수가 생각보다 높았던 건 내 영상이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숏폼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겐 무한정이라고 해도 좋을, 막대한 양의 영상이 필요하다. 그 정도로 숏폼을 향한 수요는 폭발적이고 점점 더 커지는 추세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의 '2024 방송매체 이용 행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숏폼 이용률은 70.7%에 달한다. 유튜브, 틱톡 같은 대표적인 숏폼 앱의 1인당 월평균 사용 시간은 52시간.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등 주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앱 평균 시간(7시간 17분)과 비교하면 7배나 길다.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숏폼 중독자로서 숏폼이 블랙홀처럼 시간을 빨아들이는 걸 모를 리 없다. 효율을 따지며 짧은 영상이 좋다고 했던 게 무색하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숏폼과 함께 내버렸던가. 이름대로 이 영상들은 너무 짧아서 이제 시작인가 하면 어느샌가 끝난다. 무엇을 얻고 음미하기도 전에 지나가 버리고 곧장 새로운 영상이 시작된다. 숨돌릴 틈도 없다.

그런데도 이동하는 시간, 일하는 틈틈이,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이 블랙홀에 빠져들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알 수 없다, 죄책감 때문에 재보지 않았는데 어쩌면 월평균인 52시간보다 더 길지도 모른다.

관련 보도의 마지막 문장에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짧은 콘텐츠가 오히려 시청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있다.' '체류'라는 단어의 쓰임이 너무나 적절해서 할 말을 잃었다. 감상이나 시청이 아니라 체류. 국어사전의 풀이대로라면 객지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잠들기 전, 밑도 끝도 없는 공허가 몰려오는 시간. 달리 처리할 방도가 없는 낮 동안 쌓인 억울함과 보상 욕구에 떠밀려 이 플랫폼에서 저 플랫폼으로 객지를 떠돈다. '자기 전에 10분은 괜찮잖아?'하며 열어젖힌 블랙홀에는 최신 밈, 패션, 주짓수 기술, 요리, 먹방, 커버송, 댄스 챌린지, 뉴스, 옛날 영화의 명장면, 심리 상담 등 법구경에서 말하는 삼라만상이 펼쳐진다.

한 뼘 크기의 스마트폰은 끝없는 영상의 만화경이다. 그 많은 영상 중에 내가 만든 영상도 섞여 있다. 사람들은 그걸 10초도 지켜보지 못했지만 그것도 조회수로 기록된 것이다.

통계는 이 잔인한 진실을 알리며 해결책도 제시했다. '영상이 시작되고 10초 안에 강한 후킹을 시도하라!' 하지만 후킹에도 선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후킹은 상식을 살짝만 비켜설 정도로 섹시하거나(음식도 여기에 포함된다) 귀엽거나 멍청한 것이다.

두려움이 앞섰다
 유튜브 채널 '민영 IN THE GI'
ⓒ 유튜브
삼라만상에 오묘한 질서가 있듯 숏폼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기발하고 독창적이라면 매달 52시간이나 지켜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비슷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반응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면 쉬기라도 했을 텐데. 시간 낭비보다 더 해로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불안을 잊었다는 얄팍한 위안 말고는 남는 것이 없다.

반대로 크리에이터로서의 가장 큰 문제는 내 영상에는 후킹 요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해외에서 열리는 주짓수 대회에 나가 1승에 도전하는 영상에서 후킹이라니. 그래도 크리에이터를 자처했으니 시도는 했다.

일단 시작부터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 사물, 풍경, 나만 아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건 금물이다(이보다 더 선행되는 후킹은 영상의 대표 이미지, 섬네일인데 이는 다음에 다루겠다). 여기에 다이어트나 비건 같은 키워드가 있으면 전체 분량과 상관없이 무조건 그것을 전면에 배치한다. 결국 영상을 다 만든 뒤 후킹이 될 만한 장면을 골라 맨 앞에 갖다 붙였다. 그때마다 자극, 조회수 같은 단어만 떠올렸다.

숏폼 중독을 논할 때 보는 사람들은 '크리에이터들이 자극만 좇는다'라고 말한다. 크리에이터는 '시청자가 자극에만 반응한다'라고 한다. 원인과 결과가 맞물려 있어서 누구의 잘못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

그 사이 숏폼은 10개쯤 늘어났고 평균 조회수도 조금씩 올랐다. 하지만 구독자는 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숏폼의 형식을 따를수록 채널의 정체성은 옅어진다. 수많은 숏폼 중 하나일 뿐이어서 굳이 구독할 이유도 없다.

결국 채널에 정체성을 입히고 장기적으로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롱폼이 필요했다. 마침 일본 주짓수 여행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행이라면 일단 볼거리는 충분하다. 새로운 시도를 해볼 기회였다.

한편으론 걱정이 태산인 게 해외 대회에 참가하는 것도 처음, 도쿄 여행도 처음, 롱폼 제작도 처음이었다. 그동안 세로로 찍던 영상을 가로로 찍는 것부터 적응해야 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이 앞섰다.

'과연 나는 제대로 된 롱폼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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