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인내'가 만드는 희망
[김하진 기자]
<지훈이의 캔버스>(2025년 7월 출간)은 소설집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책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아니면 르포인지 잘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아마도 소설같지만 현실 속 이야기이고, 현실같지만 소설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
| ▲ 지훈이의 캔버스 책 사진 |
| ⓒ 김하진 |
그때의 절망과 슬픔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 버린다. 마주하기 힘들었던 기억과 내밀한 고통을 오랜 시간 비밀 상자 속에 꽁꽁 숨겨 둔 채로 살아왔다. 그런데 '지훈이의 캔버스'를 읽는 순간 그 상자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교실 붕괴 담론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아이들 스스로 자기 문제나 가정 혹은 친구 간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경우 민 선생은 상담자이면서 중재자이자, 아이가 기댈 언덕이 되어 주고자 했다. 아이들에게만큼은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왔다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결과가 이런 거였나. 거울 속의 중년 교사는 무척이나 고단해 보였다. - '시발 롤 모델' 중에서
민 선생은 자신의 눈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욕설을 내뱉는 남학생 때문에 교사 생활에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평온한 인내'를 발휘하여 아이의 잘못을 그냥 덮어 주었다. 그리고 그 작은 사건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이는 민 선생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았고 민 선생이 지도하는 걷기 동아리에도 스스로 가입했다. 아이를 향한 크지도 작지도 않은 관심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배려가 아이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인 거였다. 결국, 아이는 민 선생에게 놀라운 고백을 했다.
"샘, 그거 몰랐죠? 샘은요, 내 롤 모델이에요. 아, 시발 말하고 보니 쪽팔리네."
아이가 졸업한 후, 연락은 끊겼다. 민 선생은 또다시 '평온한 인내'를 발휘하여 아이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그 후로도 비슷한 아이들을 몇 명 더 만나게 되었다.
교사를 하면서 가슴속에 가장 많이 품었던 말이 '진심은 통한다'였다. 어쩌면 지푸라기처럼 쥐고 있던 간절한 바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교사가 진심을 다해 노력하면 아이들도 학부모도 그 마음을 알아주리라는 기대를 품었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그 진심은 너무도 쉽게 외면당하거나 짓밟히곤 하는 게 현실이었다. 다루기 힘든 아이들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했었다. 교사 경험이 부족했기에 민 선생처럼 '평온한 인내'를 발휘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늘 아이들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멀리 도망쳐 버리는 것 중 하나의 방식만을 선택했다.이 책을 읽으며 '그때 조금만 더 평온하게 인내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랬다면 나도 아이도 덜 상처받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
|
| ▲ 지훈이의 캔버스 지훈이의 캔버스 책 사진 |
| ⓒ 김하진 |
칭찬을 받자 더 신나게 그림을 그렸고 학교에서 늘 소외당하기만 했던 지훈이는 점점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며 자기만의 꿈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지훈이가요. 어렸을 때 귓병을 앓았어요. 언젠가 갑자기 들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먹고사느라 바빠 치료 시기를 놓쳐 결국 한쪽 귀를 못 듣게 됐어요. 지금 나머지 한쪽도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하네요. 애가 아주 어려서부터 집 안의 온 벽과 바닥에 낙서를 하곤 했어요. 그게 재주가 될 줄 모르고 많이 혼내기도 했지요. 제가 선생님이 써 주신 글을 몇 번이나 읽어 보았어요. 그거 읽고 많이 울었습니다." - '지훈이의 캔버스' 중에서
지훈이의 엄마가 선생님에게 한 말이었다. 그러고 보면 교사란 참으로 부담스러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아이들 각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까지 일일이 들여다보고 교육적으로 배려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주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스승의 날 선생님을 찾아온 지훈이가 한 말 속에 그 해답이 숨어 있었다.
"선생님은 저를 최초로 인정해 주신 분입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인정해 준다는 것! 아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는 것이 어쩌면 가장 좋은 교육이고 교사와 아이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애나 약점을 꾸짖기보다 아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야말로 교사의 올바른 역할인 것이다.
그리고 '평온한 인내'를 지니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것은 학교 안에서 만나는 모든 구성원에게 반드시 필요한 태도이다. 교사는 아이에게, 학부모는 교사에게, 또 아이는 교사에게 평온한 인내를 가지고 대할 수만 있다면 학교라는 공간도 더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은 현재 학교에 있는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는 다정한 공감과 위로가 되어 줄 것이고, 이미 학교를 떠난 이들에게는 교사와 학생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석열 통화' 내용 묻자 쏘아붙인 나경원, '계엄 표결 불참' 질문엔 헛웃음
- [이충재 칼럼] 한덕수, 끝난 게 아니다
- 8년간 가족 간병하던 사람에게 차 트렁크 넘치게 받아온 것
- 특검 첫 현직 국회의원 구속영장, 주인공은 '윤핵관' 권성동
- 사형당한 아버지, 50년 만에 무죄...검찰의 사과는 없었다
- "빨리해주세요" "장난합니까"... 상담사와 라이더는 왜 다퉈야 했을까
- 나경원이 국회에 세운 '노란봉투법 반대 청년', 극우 유튜버였다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동생 금고 속의 '금거북이', 김건희의 또다른 매관매직?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인디아나 특검
- '조성현 대령 몰아가기' 여전히 포기 못한 윤석열 변호인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