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는 매일 그 다리 주물렀다…‘빨간 발톱’ 토막 시신의 비극
■ The JoongAng Plus
「 사건 기사에는 결과만 나옵니다. 누가 범인이고, 왜 범행을 저질렀으며, 실형 몇 년을 받았는지. 하지만 그 몇 줄을 위해 형사들은 며칠, 때론 몇 달도 버팁니다. 그렇다면 형사들의 수사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강력계 25시’는 진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
2000년 3월 15일 오전 7시.
간석4파출소의 경관 두 명이 갓길에 순찰차를 세운 뒤 신고자인 고깃집 주인에게 다가갔다. 1호선 간석역 앞 남광장의 식당가다. 여기서 사건이라고 해봐야 야간에 주취자들끼리 치고받는 폭행 정도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신고라니 낯설었다.
주인은 고무 앞치마를 두른 채 말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는데, 누구 건지도 모를 쌀포대 두 개가 있어요. 사나흘 됐는데 파리가 꼬이고 영 이상해서.” 그러면서 건물 사이 좁은 틈새를 가리켰다. 경관이 포대를 열자마자 고개를 홱 돌리며 벽에다 구역질을 해댔다. 다른 경관이 바닥에다 침을 퉤 뱉고는 무전기를 잡았다. 관할인 남부경찰서(남동경찰서 전신) 강력반을 불러야 했다.
사람의 다리 두 개와 살점이 비닐과 기저귀 박스에 싸인 채 포대에 각각 담겨 있었다. 습기로 흐릿한 비닐 안에서도 발톱에 칠해진 붉은색 매니큐어가 선명히 보인다.

남부경찰서 강력반 전원이 비상소집됐다. 수사본부가 설치된 간석1파출소 회의실엔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피해자의 신원을 모르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밤벙용 CCTV가 보기 드문 시절로 발로 뛰는 탐문 수사와 형사의 육감이 당시로서는 수사의 전부였다. 감식 보고서와 초동수사 내용을 확인한 형사과장은 전부 나가라고 지시했다. “바닥 밑바닥부터 맨홀 뚜껑까지 뒤집어 까서라도 뭐든 좋으니 들고 와라.”
범인의 유기 장면을 본 목격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형사들은 남동구청으로 몰려가 식당가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의 신원을 파악했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 최소한 어느 시점에 쌀포대가 유기됐는지 특정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흘에 한 번꼴로 오전 4시쯤 식당가를 돈다는 대답 말고는 특기할 만한 게 없었다. 광장의 행인이나 가게 업주들도 찾아봤지만 쌀포대는커녕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사람을 봤다는 일말의 목격담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전국의 여성 미귀가자 신고 내역을 전수조사했다. 혹시 피해자 가족이 신고했을 수도 있으니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살인 사건이 났는데 시신을 보고 가족인지 아닌지 확인해 달라”는 식으로 확인 작업을 벌인 것이다. 동시에 범행에 연루될 공산이 큰 미귀가자는 직접 수소문하며 추적했지만 ‘바람난 여자’만 발견됐다. 서울 모처에서 찾아낸 한 유부녀는 5살 연하와 동거 중이었고, 5개월 전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긴 32살 여성은 연하와 혼인신고까지 해놓고 새살림을 차렸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여성 실종자는 모두 찾아보고 있지만 불륜 현장만 발견되니 죽을 맛이다.” 한 형사는 이렇게 토로했다.
거듭 되풀이되는 허탕 수사에 사기가 떨어져 가던 3월 말, 강력3반의 임상도 형사는 반장의 지시에 간석 장례식장 시체 안치실로 출근했다. 여기서 대기하며 다리를 관리하는 게 임무였다. 자신의 딸이나 부인의 신체가 맞는지 가족들이 오면 멀쩡한 다리를 보여줘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피가 빠져나가서 허벅지 속살이 굳고 거무스레하게 부패하기 시작했다. 본래의 형체를 되살리기 위해 그는 비닐장갑을 끼고 몇 시간씩 마사지해야만 했다.
아무리 형사라지만 시체 안치실에 줄곧 머무르는 것은 꺼림칙하다. 장례 때 입은 옷을 불태우는 풍습이 괜히 있겠나. 시신에 손을 대는 것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감촉이 서늘한 건 둘째치고 귀 뒤쪽부터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열흘 넘도록 덩그러니 남은 다리만 보고 있으니 피해자의 원통함이 느껴져 어느새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름은 뭐고, 무슨 일 하다가 사고를 당한 거예요. 오늘은 꼭 가족을 만납시다.”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60363
■ ‘강력계 25시’ 또 다른 기사가 궁금하다면?
「 〈유영철, 경찰서 탈출했었다〉
형사 12명 있는데 걸어나갔다…한손 수갑 찬 유영철 도주극 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4469
“계란 문대는 놈, 유영철이야” 형사는 영등포 사창가 찍었다 ②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6250
형사 물먹인 유영철 폭주했다, 성매매촌서 삼킨 ‘땅콩 10알’ ③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8501
〈정남규, 꼭 얼굴 보며 죽인 이유〉
“시X, 백개는 땄어야 했는데” 2호선 막차 살인마의 정체 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7159
“기분 더럽게 왜 지가 했대?” 정남규 욱하게한 ‘유영철 사건’ ②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8792
〈또 다른 이야기〉
여자들 몸까지 닦고 튀었다…술집사장 136명 겁탈한 그놈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62083
택시 기사 17번 찌른 그놈들, 16년뒤 ‘휴지 1장’이 까발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5482
고시원에 가스통 7개 숨겼다…“尹정부 출범 전 폭파범 잡아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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