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예술의 ‘테스트베드’ 자처한 서울 극장들…상생의 무대를 열다

박정선 2025. 8. 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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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역의 우수 공연들이 잇따라 서울 관객들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서울의 주요 공연장들이 단순한 대관을 넘어, 지역 예술인들의 ‘테스트베드’(Test Bed·시험대)를 자처하며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식이다. 이는 국내 공연 시장의 고질적인 수도권 집중 현상에 대한 의미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며, 지역과 중앙이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공연 생태계 구축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9월 개막을 앞둔 국립정동극장의 지역 시립예술단체 협업 공연 '춤 스케치' ⓒ국립정동극장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2025 리:바운드 축제’(RE:BOUND FESTIVAL)는 지역의 검증된 작품들을 서울 무대에 올려 전국 유통의 발판을 마련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10월 16일부터 11월 16일까지 한 달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을 비롯해 강동아트센터, 구로아트홀 등 서울 9개 공연장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진다.

올해 축제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25년 지역대표 예술단체’ 13개 지역 15개 공연단체의 작품 15편이 오른다. 연극, 뮤지컬, 무용, 클래식, 전통예술 등 다채로운 장르의 공연이 서울 곳곳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세계를 오케스트라 선율로 풀어낸 경기 군포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헤르만 헤세의 음악세계’, 제주 해녀의 강인한 삶을 담은 제주오페라연구소의 창작오페라 ‘해녀수덕’,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을 거머쥔 경남 거제 극단 예도의 코미디 연극 ‘0.75 청년시대’, 광주 무등산 호랑이 전래동화를 재구성한 전통연희놀이연구소의 어린이 가족극 ‘개똥이와 무등산 호랑이’ 등 지역의 고유한 색채와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이 기대를 모은다.

국립정동극장 역시 지역과의 상생에 팔을 걷어붙였다. 내달 개막하는 ‘춤 스케치’는 부산, 목포, 익산, 울산 등 지역 시립예술단체와 협업해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춤을 수도권 관객에게 소개하는 한편, 전통 공연예술 생태계 활성화와 관객층 확장에도 기여하겠다는 의도다.

부산시립무용단은 판소리 ‘적벽가’를 춤극으로 재해석한 ‘용호상박’을 선보이고, 목포시립무용단은 근현대사 속에서 목소리를 잃었던 이들을 위로하는 ‘어게인 2025 목포 : 우리는 아직 여기에 있다’로 깊은 울림을 안긴다. 이어 익산시립무용단은 백제 사택왕후의 이야기를 담은 ‘환생-시크릿 외전’을, 울산시립무용단은 영남 지역의 춤 ‘덧배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덧배기 블루스’를 무대에 올리며 각 지역 춤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할 예정이다.

지역 예술인과 예술단의 무대를 서울로 옮겨오는 이들의 시도에 의미를 두는 건, 국내 공연 시장이 처한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의 ‘2023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공연 티켓 판매액 약 1조2697억원 중 서울, 경기,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울이 전체 판매액의 69.1%에 달하는 약 8773억 원을 기록하며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경기도가 8.6%(약 1091억원)를 기록하며 수도권의 비중을 더욱 높였다. 두 지역의 판매액을 합치면 무려 77.7%에 달하며, 사실상 국내 공연 시장은 수도권이 이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비수도권 지역의 상황은 심각하다. 부산이 5.1%(약 648억원), 대구가 3.8%(약 487억원)로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지만,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1% 안팎의 미미한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는 공연의 창작과 유통, 소비가 모두 수도권에 극심하게 편중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러한 불균형은 지역 예술인과 단체의 창작 기반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도 지역 내 한정된 관객만으로는 시장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이는 재투자의 어려움으로 이어져 창작 활동의 위축을 낳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사실상 수많은 지역의 우수 공연들이 제대로 된 평가나 검증도 받지 못한 채 사장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의 공연장들이 지역 예술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지역에서 1차로 검증된 우수 공연을 국내 최대 시장인 서울 무대에 선보이는 것은 단순한 교류를 넘어, 작품의 시장성과 경쟁력을 본격적으로 시험하는 기회가 된다. 서울 관객의 냉정한 평가를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으며, 언론과 평단의 주목을 받아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시도들이 정례화되고 시스템으로 구축될 경우, 전국 단위의 공연 유통 시스템을 마련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 서울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작품이 다시 다른 지역으로 유통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지역과 중앙이 동반 성장하는 건강한 공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지역 예술인들에게 서울 무대는 여전히 꿈의 무대이자 가장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며 “‘리바운드 축제’나 ‘춤 스케치’와 같은 시도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확산되면서 더 많은 통로가 마련되길 바란다. 나아가서 이런 통로가 확산되면서 숨어 있던 예술인과 그들의 작품 자체가 주목을 받게 된다면, 역으로 지역으로 관객이 흡수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추후엔 서울에 집중되어 있던 쏠림 현상도 조금은 완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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