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의 날'이 열린 리베라 코트에서 받은 감명

이순영 2025. 8. 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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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민 화가 디에고 리베라 작품에 담긴 사연들

[이순영 기자]

한국 전통 놀이와 한식 시식, 케이팝을 체험하는 '한국 문화의 날'(16일)이 열린 곳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미술관이다. 특히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리베라 코트에서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게임이 진행되고, 케이팝 댄스 무대가 펼쳐진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관련기사 : 디트로이트 미술 박물관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600여 명 몰렸다]
▲ 북쪽벽 포드의 1932년식 V8 엔진 제조 과정이 담겨 있다.
ⓒ 이순영
리베라 코트는 멕시코의 국민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의 작품이다. 리베라는 벽화 예술에 있어서 두각을 나타내며 멕시코 공공장소에 벽화를 통해 멕시코의 역사, 문화, 이념 등을 담아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운동을 펼쳤다.
그러면서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고 특히 미국의 예술가들과 관객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디트로이트 미술관장 빌헬름 발렌타인과 포드 자동차의 창시자이자인 헨리 포드의 아들 에드셀 포드가 1932년 리베라에게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을 한다.
▲ 리베라 코트 2014년 4월 23일 미국 국가 사적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 이순영
이 당시 미국은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자동차 업계가 고용을 반으로 줄일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 포드 자동차 역시 5천 여명의 노동자를 해고했고 이들은 포드 자동차 앞에서 행진 시위를 벌인다. 이때 무장한 포드사의 경비원들이 시위자들을 향해 총을 쏴 6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한다.
에드셀 포드는 리베라에게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을 해소시켜줄 만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을 넣는다. 리베라는 노사의 상호 협력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포드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을 고용해 박물관에서 일하게 했다.
▲ 동쪽벽 죄측엔 곡식을, 우측엔 과일을 들고 있는 풍요의 여신들 사이에 태아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이순영
사실 한국에서는 리베라보다 그의 아내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가 대중적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리베라와 칼로의 결혼생활은 리베라의 여성편력 때문에 순탄치 않았고 칼로는 리베라와의 만남을 자신이 겪었던 대형 교통사고와 준할 정도의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칼로는 한편으로 리베라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녀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은 수박을 그린 정물화였는데 리베라를 위한 선물이었다. 거기에는 "인생이여, 만세!(Viva la vida)"는 글을 남겼다.
▲ 남쪽벽 최첨단 기계를 이용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노동자들을 그려 놓았다.
ⓒ 이순영
리베라 코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웅장한 철제문을 거쳐 가야 하는데 그 너머에 서면 그보다 더 웅대한 27 패널로 이루어진 '디트로이트 산업 벽화'가 나온다. 리베라는 자동차 산업 도시인 디트로이트에 있는 공장들을 탐방하여 관찰하고 바로 작업에 돌입해 8개월이라는 말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작품을 완성한다. 이때 당시 리베라 본인도 살이 엄청나게 빠질 절도로 강도 높은 작업을 강행했고 그를 수행했던 보조 예술가들의 원성 또한 어마어마했다.
▲ 남쪽벽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 모습을 담은 리베라의 역작
ⓒ 이순영
같은 시기 프리다 칼로는 유산을 했는데 그 기록이 '헨리포드 병원'이란 작품이다. 이는 아이를 잃고 낙심한 아내의 회복을 바라는 리베라의 권유에서 탄생한 것이다. 내면의 상처가 외부로 표현이 되면서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고 치면 칼로는 그로부터 회복이 되었어야 했을 정도로 그녀의 그림은 잔혹하면서도 치명적인 구석이 있다. 피와 상처들로 범벅된 몸이 시뻘건 줄로 태아와 달팽이, 골반, 척추, 보라색 꽃, 기계에 연결된 채 담겨져 있다.
▲ 리베라 코트 멕시코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자신의 역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 이순영
리베라는 멕시코 화가였지만 세계가 그의 활동 무대였다. 공상주의자였던 리베라가 10월 혁명을 이끌고 소비에트 연방 건설에 공적을 세운 레온 트로츠키가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공산당에 제명되었을 때 멕시코 망명을 도운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또한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구토'의 저자 장폴 사르트르와도 친분이 있었다. 그는 예술가는 공동체에 봉사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그의 생각은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공공사업(WPA) 예술 프로젝트와 같은 정부 사업의 탄생에 기여했다.
▲ 리베라 코트 포드 자동차 리버 루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감독을 하고 있는 에드셀 포드를 묘사하고 있다.
ⓒ 이순영
리베라 코트에는 포드 V-8이 공장에서 제조되는 모습을 담았다. 북쪽 벽(어둠의 방향)에는 모터 조립과 관련된 공정을 담았고 남쪽 벽(빛의 방향)에는 차체 조립과 조립 라인 끝에 빨간색 자동차가 나온 모습을 그려놓았다. 스탬핑 프레스 오른쪽 끝에는 에드셀 포드의 얼굴을 담아 놓았다. 북쪽과 남쪽 벽 상단에는 노동력을 상징하는 노동자들을 그려 놓았는데, 다양한 인종을 섞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 디트로이트 산업 벽화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으로 총 27개의 패널로 구성되어 있다.
ⓒ 이순영
서쪽벽 그림의 우측 상단에는 아기 예수가 백신을 맞는 장면을 그려 놓았다. 예수가 의학의 힘을 빌리고 있다는 것이 불경스럽다는 이유로 이 벽화가 크게 논란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벽화를 철거해야 한다며 청원을 넣었다. 특히 종교계의 반발이 심했다. 그렇게 이 모든 그림들이 흰색 페인트로 덮여질 위기에 처했는데, 예술 위원회소집 결과 리베라 코트의 그림은 남겨두는 것으로 만장일치로 결정이 됐다.
▲ 리베라코트 벽화를 감상중인 관람객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자랑이자 멕시코 국민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가 남긴 역작, 리베라 코트
ⓒ 이순영
리베라에게 있어 의료 기술은 인류의 새로운 구세주와 같은 것이었다. 죽을 사람도 살리고 생명 연장의 지평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예술가의 독특한 해석과 표현을 억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백신을 놓는 의사는 디트로이트 박물관장 빌헬름 발렌타인의 얼굴을 본 땄다. 그 옆에 그려진 세 명의 과학자는 성서에 나오는 동방박사 삼인을 의미하는데, 그림 속에는 각각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인으로 정해 놓았다. 종교를 넘어 통합적 사고로 이들을 한 데 묶어 놓은 것은 그가 가진 철학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동쪽벽은 일출이 시작되는 곳으로 '태초'를 상징한다. 두 개의 쟁기로 감싸 있는 식물의 구근 속에 태아가 있고 그 위쪽으로는 곡식과 과일을 들고 있는 두 여인이 있는데 이들은 풍성한 수확과 풍요를 나타내고 있다. 서쪽벽은 일몰로 최후의 심판과 여객기와 폭격기 그리고 자본가의 표독한 얼굴이 그려져 있다. 자본가의 지원으로 예술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리베라가 자본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사회계약론을 쓴 장 자크 루소나 시민불복종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 경험 기계로 유명한 미국의 하버드 대학 철학 교수였던 로버트 노직의 경우 학자들이 후원을 받는 순간 예속된다며 이를 경계했는데, 리베라는 후원을 받고도 예속되지 않는 호기를 보여준 것이다. 실제로 리베라는 "예술가가 마법의 붓을 내려 놓고 압제자에 맞서 싸우는데 앞장서지 않는다면 그는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다. "며 자신의 마르크스주의적 정치 성향을 거부하는 부유한 자본가들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 포드 공장 노동자 리베라는 노동자들 중 일본인 노동자의 모습도 벽화에 담아 놓았다.
ⓒ 이순영
이렇듯 리베라 코트는 신성모독, 마르크주의 선전, 저속함, 미국적이지 않다는 항의들로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들은 오히려 좋았다.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내어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박물관에 몰려들게 했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는 이로 인해 시 예산을 늘릴 수 있었고 이 작품은 논란을 뛰어 넘어 위대한 역사가 되어 남았다. 그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디트로이트 미술관은 세계 최고 수준의 벽화를 보물처럼 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리베라코트 신성모독, 사회주의 등의 이유로 논란이 되었던 리베라 코트
ⓒ 이순영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리베라가 그린 록펠러 센터의 로비에 그린 벽화 '교차로에 선 남자'는 완공후에 철거를 당했다. 록펠러 가문의 며느리 애비 앨드리치 록펠러는 뉴욕 현대 미술관 창립자로 이곳에서 열렸던 회고전에 참가했던 디에고 리베라에게 제안을 한다.
리베라는 2만 1천 달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애비 앨드리치 록펠러의 아들이자 뉴욕주지사와 미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넬슨 록펠러가 록펠러 센터의 디렉터였는데 리베라에게 '희망과 높은 비전으로 새롭고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하는 교차로에 선 인간'이라는 주제를 부탁했다.
▲ 디트로이트 미술관 심장부 디트로이트 미술관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리베라 코트
ⓒ 이순영
그런데 리베라는 방탕한 자본가들을 모습을 그려 넣었고 레닌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담아 냈다. 특히 레닌의 모습이 벽화에 포함된 것은 넬슨 록펠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결국 이들의 분쟁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리베라가 해고가 되면서 결국 작품은 파괴됐다. 이 때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 훼손에 항의를 했다. 그렇게 전세계에서 시위가 촉발되며 예술가에 대한 개입과 억압에 반대하며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줄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 중 <샬롯의 거미줄>을 쓴 작가 E. B 화이트는 이 사건을 예술의 진정성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고 참여시 '나는 내가 보는 것을 그린다'를 썼다. 이 시는 넬슨 록펠러가 리베라에게 "당신의 예술을 방해하고 싶지 않지만"이라고 말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에 참견하다가 "그건 내 벽이야"라고 말하며 마무리하는 대화를 담아 놓고 있다. 리베라의 창조 활동에 대한 외부 간섭에 있어 예술적 주권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록펠러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결국 리베라가 그렸던 록펠러 센터의 벽화는 사라지고 없어졌다. 하지만 리베라는 이 그림을 사진으로 남겨뒀다가 훗날 멕시코시의 미술궁전에 다시 그려 놓는다. 그런데 이 작품이 원작과 다른 점은 그 안에 넬슨 록펠러의 초상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머리 위에 매독균을 덤으로 그려 놓았다. 예술가의 복수란 이런 것이다.
▲ 리베라 코트에서 펼처진 케이팝 댄스 케이팝 댄스를 선보이고 있는 댄서들
ⓒ 이순영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치하며 정치 성향이 예술의 사활을 결정하던 시대에 살아남은 리베라 코트, 이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리베라가 살아 생전 "내 최고 작품의 비결은 그것이 멕시코적이라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바로 그가 자신의 최고 역작으로 꼽는 리베라 코트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는 것을 보여주며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선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장이 되었다.

이는 디트로이트에서 꼭 봐야할 곳을 딱 한 군데 꼽으라면 주저 없이 '리베라 코트'를 꼽는 나로서,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인으로서 최고의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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