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무질서 속에 열린 전국여류명창대회
일제강점기 기생(妓生)은 신여성이자 전통예술의 맥을 이어온 전문 예능인이었다. 그들은 사회적 시대적 아픔도 도전과 응전으로 이겨냈다. 국채보상운동, 삼일운동, 독립운동 등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했던 것. 그 외에 여성 인권문제, 토산품 애용(우리 물산 장려운동), 무산 아동 및 북간도 민족학교 지원 등 다양한 행사와 캠페인에 앞장서 참여하였다. <기자말>
[조종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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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극장에서 열린 의용소방대원 추도식(1950년대) |
| ⓒ 군산야구 100년사 |
당시 군산의용소방대(대장 권영복) 대원은 120여 명으로 대부분 지역 유지들로 구성돼 있었으며, 운영은 순수 자원봉사로 이뤄졌다. 권영복 대장은 그해 경마장폭발사건 때 순직했으며, 대원들은 1946년 여름 콜레라 창궐로 수백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도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습에 나섰다. 시신들을 합장하고 넋을 위로하기 위해 위령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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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조선여류명창대회 기사-(1947년 11월 15일 자 <群山新聞>) |
| ⓒ 군산신문 |
18일 자 신문은 군산의용소방대가 주최하는 전국여류명창대회(全國女流名唱大會:아래 '명창대회') 예보 기사를 싣는다. 기사는 '명창대회는 공회당에서 3일간(27~29일) 진행되며, 참가 신청은 11월 20일까지 가까운 소방서나 부대 또는 예기권번(藝妓券番)을 통해 군산소방서로 신청해달라'고 안내하고 있다.
신청 접수처인 '예기권번'은 일제강점기 '군산소화권번' 후신으로 보인다. 군산소화권번은 광복 후 '군산예기권번(群山藝妓券番)'으로 개칭한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 군산예기권번과 군산권번은 군산소방서, 군산경찰서, 군산신문사 등과 나란히 후원처로 올라 있는데, 당시 두 권번은 주식회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기생들은 주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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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조선여류명창대회 광고-(1947년 11월 28일 자 <群山新聞>) |
| ⓒ 군산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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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대에서 공연하는 군산 기생들 |
| ⓒ 군산해어화 100년 |
군산에서는 '군산권번'과 '군산예기권번'에서 선발된 도금선(都琴仙), 박농월(朴弄月), 김현숙(金賢淑), 서산홍(徐山紅), 박화수(朴和樹), 박명옥(朴明玉) 등 여섯 명창이 참가하였다. 신문은 특별찬조 공연을 위해 여류국창 원로(女流國唱 元老) 박초월(朴初月) 씨와 남자명창 신진(男子名唱 新進) 공기남(孔基南) 씨가 출연하게 된다고 덧붙인다.
명창대회는 공회당과 군산극장에서 공전(空前)의 대성황을 이룬 가운데 3일(27~29일) 동안 진행됐다. 영예의 입상자는 특등: 김여란(김천) 우등: 조농옥(서울), 조소옥(광주), 1등: 성근화(전주), 한애순(이리), 공옥진(정읍), 2등: 성운선(전주), 김계화(전주), 김농선(정읍) 명창 등.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입상자(9명) 중 군산 참가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수상자 출신지는 광고문 따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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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국악연구회 방문한 군산 기생들(맨 오른쪽이 장금도 명인) |
| ⓒ 군산 해어화 100년 |
대회에 참가한 기생들이 무대에서 무슨 노래(唱)를 부르고 어떤 춤을 췄는지 모르겠지만, 진혼(鎭魂)을 위한 가무악(歌舞樂)은 빠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후원처인 두 권번과 기생들 공연은 한국 전통문화 예술의 맥을 잇는 몸짓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기생들의 형제애와 명확한 의식은 변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해(1947) 12월(25일~27일)에는 4개 창극단('동일·東一', '조선·朝鮮', '화랑·花郞', '남선·南鮮' 등)이 합동으로 공연하는 대창극제전(大唱劇祭典)이 군산극장에서 펼쳐졌다. 군산정악회(群山正樂會)는 1949년 5월 개복동 희소관에서 전국의 남녀 명창 20여 명이 출연하고, 임방울, 박초월 명창이 특별출연하는 고전음악대회(古典音樂大會)를 사흘간(10~12일) 개최하였다.
군산권번은 1948년 8월(10~13일) 연극부를 조직, 공회당에서 '권번연극공연(券番演劇公演)'을 개최했다. 이 공연은 다음 달 앙코르공연(<춘향전>, <흥보전(흥부전)>, <심청전> 등)을 진행할 정도로 성황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그해 9월 기생 김농주는 '국악여성동호회' 출범 때 간부로 참여했고, 10월 서울 시공관에서 열린 창립기념공연(<옥중화·獄中花>)에 출연하였다.
그즈음(1948) 명산동에 '군산국악연구회(군산국악원 전신)'가 설립되고, 노련한 양 권번 기생들이 오가며 신진(아마추어)들에게 가무악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가난과 좌우익이 대립하던 혼란기임에도 크고 작은 대회와 공연 무대에 올라 전통 가무의 참모습을 보여줬던 군산 기생들, 그들 역시 천년을 이어온 '교방 문화', 즉 전통예술을 사랑하는 시민계층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음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2018년 <군산해어화 100년>(E-book)을 군산문화원을 통해 출간하였고,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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