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무질서 속에 열린 전국여류명창대회

조종안 2025. 8. 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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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군산 '기생조합'과 '권번' 기생들의 활동상③

일제강점기 기생(妓生)은 신여성이자 전통예술의 맥을 이어온 전문 예능인이었다. 그들은 사회적 시대적 아픔도 도전과 응전으로 이겨냈다. 국채보상운동, 삼일운동, 독립운동 등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했던 것. 그 외에 여성 인권문제, 토산품 애용(우리 물산 장려운동), 무산 아동 및 북간도 민족학교 지원 등 다양한 행사와 캠페인에 앞장서 참여하였다. <기자말>

[조종안 기자]

 군산극장에서 열린 의용소방대원 추도식(1950년대)
ⓒ 군산야구 100년사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이한 광복(1945). 군산은 그해 10월 5일 미군정이 시작되고, 11월 30일 '경천동지'할 사건이 터진다. 이름하여 '경마장폭발사건'이다. 미군 헌병들이 모닥불 피우다 일본군이 매설해 놓은 다량의 포탄이 폭발, 대형화재로 이어졌던 것. 피해도 엄청났다. 언론들은 미군 장교 입을 빌려 "태평양전쟁 이래 최대 폭발"이라 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미군 23명, 한국소방관 7명, 민간인 3명, 의용소방대원 9명 등 42명이 사망하고, 이재민 650명이 발생했다.

당시 군산의용소방대(대장 권영복) 대원은 120여 명으로 대부분 지역 유지들로 구성돼 있었으며, 운영은 순수 자원봉사로 이뤄졌다. 권영복 대장은 그해 경마장폭발사건 때 순직했으며, 대원들은 1946년 여름 콜레라 창궐로 수백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도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습에 나섰다. 시신들을 합장하고 넋을 위로하기 위해 위령비를 세웠다.

1947년 11월 15일 치 <群山新聞>은 경마장폭발사건 때 순직한 의용소방대원 추도식(追悼式) 열린다고 보도하였다. 아래는 기사(제목:<순난(殉難)의 군령(群靈) 앞에 삼가 전(奠: 제사) 드릴 2주제!(二周祭)-경마장폭파(競馬場 爆破)로 순직(職)한 17영주(十七靈柱)의 추도식(追悼式), 군산의용소방대주최(群山義勇消防隊主催)로>) 일부이다.
 전조선여류명창대회 기사-(1947년 11월 15일 자 <群山新聞>)
ⓒ 군산신문
"암흑(暗黑)의 일제철쇄(日帝鐵鎖)로부터 해방(解放)되어 감격(感激)과 흥분(興奮)이 아직 생생(生生)하고 ㅇㅇ의 종소리 우렁차게 삼천리 방방곡곡(三千里 坊坊曲曲)에 울렸던 재작년(再昨年) 가을 군산 7만 부민(群山 七萬 府民)의 신경(神經)을 놀랍게 한 폭탄 폭발사건(爆彈 爆發事件)의 2개년(二個年)을 오는 11월 30일(十一月 三十日) 맞이하게 되었다.(아래 줄임)"

18일 자 신문은 군산의용소방대가 주최하는 전국여류명창대회(全國女流名唱大會:아래 '명창대회') 예보 기사를 싣는다. 기사는 '명창대회는 공회당에서 3일간(27~29일) 진행되며, 참가 신청은 11월 20일까지 가까운 소방서나 부대 또는 예기권번(藝妓券番)을 통해 군산소방서로 신청해달라'고 안내하고 있다.

신청 접수처인 '예기권번'은 일제강점기 '군산소화권번' 후신으로 보인다. 군산소화권번은 광복 후 '군산예기권번(群山藝妓券番)'으로 개칭한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 군산예기권번과 군산권번은 군산소방서, 군산경찰서, 군산신문사 등과 나란히 후원처로 올라 있는데, 당시 두 권번은 주식회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기생들은 주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입상자 9명 중 군산 출신은 보이지 않아
 전조선여류명창대회 광고-(1947년 11월 28일 자 <群山新聞>)
ⓒ 군산신문
 무대에서 공연하는 군산 기생들
ⓒ 군산해어화 100년
명창대회에 참가를 신청한 외지 명창은 경상북도 김천: 김여란(金如蘭), 서울: 김연수(金硏洙) 조농옥(曺弄玉), 부산: 김소희(金笑姬), 광주: 조소옥(曺素玉) 이소희(李笑姬), 전주: 성근화(成근花) 성운선(成雲仙) 김계화(金桂花), 정읍: 공옥진(孔玉振), 이리(익산): 한애순(韓愛順) 등 11명. 신문은 대구, 진주, 순천 등 각지 명창 다수(20여 명)가 참가할 예정이라고 안내한다.

군산에서는 '군산권번'과 '군산예기권번'에서 선발된 도금선(都琴仙), 박농월(朴弄月), 김현숙(金賢淑), 서산홍(徐山紅), 박화수(朴和樹), 박명옥(朴明玉) 등 여섯 명창이 참가하였다. 신문은 특별찬조 공연을 위해 여류국창 원로(女流國唱 元老) 박초월(朴初月) 씨와 남자명창 신진(男子名唱 新進) 공기남(孔基南) 씨가 출연하게 된다고 덧붙인다.

명창대회는 공회당과 군산극장에서 공전(空前)의 대성황을 이룬 가운데 3일(27~29일) 동안 진행됐다. 영예의 입상자는 특등: 김여란(김천) 우등: 조농옥(서울), 조소옥(광주), 1등: 성근화(전주), 한애순(이리), 공옥진(정읍), 2등: 성운선(전주), 김계화(전주), 김농선(정읍) 명창 등.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입상자(9명) 중 군산 참가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수상자 출신지는 광고문 따랐음)

권번과 기생들, 격변기에도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
 군산국악연구회 방문한 군산 기생들(맨 오른쪽이 장금도 명인)
ⓒ 군산 해어화 100년
격변기였던 해방정국(1945~1950), 당시 군산은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했고, 주민들은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민심은 흉흉했고, 인플레이션에 '쌀파동'까지 겹쳐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품귀현상까지 보여 '쌀 한 가마 사려면 돈을 한 가마 가져가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처럼 가난과 무질서 속에 전국여류명창대회가 열리다니 놀랍다.

대회에 참가한 기생들이 무대에서 무슨 노래(唱)를 부르고 어떤 춤을 췄는지 모르겠지만, 진혼(鎭魂)을 위한 가무악(歌舞樂)은 빠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후원처인 두 권번과 기생들 공연은 한국 전통문화 예술의 맥을 잇는 몸짓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기생들의 형제애와 명확한 의식은 변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해(1947) 12월(25일~27일)에는 4개 창극단('동일·東一', '조선·朝鮮', '화랑·花郞', '남선·南鮮' 등)이 합동으로 공연하는 대창극제전(大唱劇祭典)이 군산극장에서 펼쳐졌다. 군산정악회(群山正樂會)는 1949년 5월 개복동 희소관에서 전국의 남녀 명창 20여 명이 출연하고, 임방울, 박초월 명창이 특별출연하는 고전음악대회(古典音樂大會)를 사흘간(10~12일) 개최하였다.

군산권번은 1948년 8월(10~13일) 연극부를 조직, 공회당에서 '권번연극공연(券番演劇公演)'을 개최했다. 이 공연은 다음 달 앙코르공연(<춘향전>, <흥보전(흥부전)>, <심청전> 등)을 진행할 정도로 성황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그해 9월 기생 김농주는 '국악여성동호회' 출범 때 간부로 참여했고, 10월 서울 시공관에서 열린 창립기념공연(<옥중화·獄中花>)에 출연하였다.

그즈음(1948) 명산동에 '군산국악연구회(군산국악원 전신)'가 설립되고, 노련한 양 권번 기생들이 오가며 신진(아마추어)들에게 가무악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가난과 좌우익이 대립하던 혼란기임에도 크고 작은 대회와 공연 무대에 올라 전통 가무의 참모습을 보여줬던 군산 기생들, 그들 역시 천년을 이어온 '교방 문화', 즉 전통예술을 사랑하는 시민계층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음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2018년 <군산해어화 100년>(E-book)을 군산문화원을 통해 출간하였고,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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