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마다 시간이 되돌아간다면? 일본영화의 기발한 도전
[김성호 평론가]
영화와 문학, 예술작품에 있어서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논할 때면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논어> '안연'편에 이와 관련한 매력적인 이야기가 한 토막 등장하는 때문이다. 전국시대 위나라 대부 극자성과 공자의 손꼽는 제자인 자공이 나눈 대화로, 자공이 "무늬도 바탕만큼 중요하고, 바탕도 무늬만큼 중요한 법"이라 말한 대목이다.
앞서 자공에게 극자성이 말하기를, "자고로 군자란 질박하기만 하면 된다"며 "문채(文彩)가 있으면 무얼하겠는가"한 것에 대한 답이었다. 군자란 내실만 갖추면 되는 것이니 보여지는 것 따윈 중요치 않다는 이야기겠다. 얼핏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 말에 대한 자공의 답은 유가의 핵심 되는 가르침, 곧 중용의 도를 되짚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를 일생 놓쳐서는 안 될 삶의 지침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는 것이다.
|
|
| ▲ 2분마다 타임루프 스틸컷 |
| ⓒ 얼리버드픽쳐스 |
일본영화 < 2분마다 타임루프 >를 보며 무늬와 형식의 관계를 또 한 번 떠올린 건 자연스런 귀결이다. 일본형 SF 판타지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그 기발한 설정으로 지난해 제33회 일본영화비평가대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현직 영화평론가들이 직접 선정하는 일본영화비평가대상은 한국과는 달리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는 유력한 영화계 시상식이다. 여기서 각본상을 탔다는 건 작품의 완성도가 남다르다는 보증이나 다름없다. 한국에서 인지도를 가진 배우가 출연하지 않음에도 이 작품이 정식 수입돼 개봉에 이른 데는 이 같은 평가가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원제는 'リバー、流れないでよ', 직역하자면 '강, 흐르지 말아줘' 쯤이 될 테다. 다분히 직접적인 문장을 수입사는 '2분마다 타임루프'로 고쳐달았다. 앞의 원제는 영화 내용의 핵과 관련돼 있고, 뒤 바꿔단 제목은 설정을 강조한 것이다. 말하자면 수입배급사가 주목한 승부의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
| ▲ 2분마다 타임루프 스틸컷 |
| ⓒ 얼리버드픽쳐스 |
소위 시간여행을 다룬 SF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타임슬립, 또 하나가 타임루프다. 타임슬립이란 인물이 시간을 건너 과거나 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여행을 말한다. 때로 휩쓸리듯 한 차례 건너가는 류가 있고, 아예 타임머신을 갖고 과거든 미래든 자유롭게 오가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씨네만세'에서 십여 차례에 걸쳐 다루었던 BBC의 명작 <닥터 후> 시리즈가 있고, 영화로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나 <어바웃 타임> <백 투 더 퓨쳐> <나비효과> 시리즈 등을 들 수 있겠다. 과거의 작은 일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는 설정은 타임슬립으로 분류되는 작품군의 가장 주요한 관심이다.
타임루프는 조금 다르다. 타임루프는 일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는 공간이 생겨나며 빚어진다. 특정한 시간이 계속 반복되며 인물들이 시간의 고리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그려진다. 대표적으로 <사랑의 블랙홀>이 타임루프물 가운데 가장 걸출한 작품으로 꼽힌다. 유명세 면에선 톰 크루즈 주연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타임루프물의 관심은 어떻게 시간의 연쇄고리를 깨고 인물이 탈출하느냐, 어떻게 하면 다시 시간이 흐르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가 되겠다.
|
|
| ▲ 2분마다 타임루프 스틸컷 |
| ⓒ 얼리버드픽쳐스 |
< 2분마다 타임루프 >는 이처럼 시간여행물을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일본영화계에서도 특별한 작품이다. 내로라하는 비평가들이 그 창의성에 격찬을 내놓을 만큼 기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타임슬립과 타임루프 모두에서 이미 새로움은 존재할 수 없다는 자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새로운 영토를 발굴했다고 보는 이도 있을 정도다. 앞서 언급했듯 타임슬립은 과거를 바꿔 미래에 미치는 영향에, 타임루프는 탈출에 중점을 둔다는 건 변치 않는 승부수다. 과연 어떤 차별점을 더할 수 있다는 말인가.
< 2분마다 타임루프 >의 승부수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순환의 주기에 있다. 통상 하루, 적어도 몇 시간쯤의 시간이 주어지는 게 타임루프 물의 흔한 설정이었다.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인 것이, 시간을 되돌리면 이야기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쉬이 지루해지기 십상인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타임루프 영화는 그 주기를 하루쯤으로 두고, 지루함을 방지하는 극적인 사건을 그 시간 안에 충분히 배치하는 게 보통이다. 비슷한 일이 반복될지라도 집중할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약간의 다른 대처로 극적 재미를 주겠단 심산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기는 짧아도 너무 짧다. 겨우 2분 만에 자꾸 상황이 반복된다. 2분은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뭔가를 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구하고 특정한 장소로 이동하기만도 상당한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심지어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면 더욱 곤란하다. 그 결과 그렇고 그런 비슷한 일이 반복될 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다른 작품이 2분마다 타임루프를 하는 시도를 감행하지 않은 터다.
|
|
| ▲ 2분마다 타임루프 포스터 |
| ⓒ 얼리버드픽쳐스 |
일본 영화평론가들이 < 2분마다 타임루프 >에 각본상을 선사한 이유가 바로 이 지점 때문이겠다. 통상 1시간 30분짜리 영화를 2분으로 나누면 45개의 토막이 나온다. 적어도 수십 차례를 거듭하여 대동소이한 상황으로 펼쳐내야 하는 자발적 제약을 이 영화가 스스로 택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로부터 나타나는 소동극적 재미, 또 다른 곳에선 본 적 없는 참신함을 영화는 얻어냈다. 마치 한신이 배수진을 통하여 지형상의 불리함을 딛고서 병사들의 젖먹던 힘까지 끌어낼 수 있었듯이.
아쉬운 점은 모두가 택하지 않는 선택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일 테다. 공들여 준비하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함에도 2분마다 되풀이되는 이야기는 연출적 한계가 분명하다. 그를 감당키 위해 영화는 구조적 결함을 해소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즉 형식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내실, 즉 서사와 드라마를 깊이 있게 풀어갈 자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되고 만다. 자꾸만 돌아가는 이야기, 부족한 캐릭터 간의 접점으로 인하여 줄거리는 러닝타임에 비해 얼마 전개되지 못하고, 감정도 깊어지지 못한다. 86분짜리 장편을 보고 났는데, 단편영화 하나의 이야기도 안 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이 때문이겠다.
< 2분마다 타임루프 >는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작품이다. 형식적 참신함을 얻기 위해 내용을 뭉텅이로 포기해버린 영화다. 그 선택을 두고 누군가는 본 적 없는 기발한 선택이라 할 수도 있겠다. 용감하다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균형을 잃었다고 말한대도 누구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포기해선 안 될 것을 포기하고 얻기 힘든 것을 얻은 선택, 나는 그것이 실패한 거래였다고 여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극우세력의 한미 이간질에 안이했다
- 트럼프 만난 이 대통령의 '묻고 더블로'...인상 깊었던 장면 다섯 가지
- 한덕수의 거짓말...김용현 헌재 증언이 결정타였다
- "월수입은?" "학력은?" 요즘 세상에 이런 질문 아무렇지 않게 하는 곳
- 3년 전엔 한국 대통령이 성조기에 경례했다
- "한-미 지도자 공통점 찾았다" 외신이 주목한 정상회담 성과
- "도태 지름길 될 수도" 조중동, 국힘 새 대표 '장동혁' 일제히 비판... 왜?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권성동, 차명폰으로 통일교-건진법사와 통화
- 북한, 방미 이 대통령 '비핵화' 발언 비난... "너무도 허망한 망상"
- 이 대통령 "마스가 프로젝트, 한미 함께 항해할 바다의 새 이름"



